코닥사가 내놓은 한 자동카메라는 용산전자상가에서 11만원에 거래된다. 집요하게 가격흥정을 하면 1만원 깎아 10만원에 살수 있다.그러나 똑같은 모델을 미국의 월마트에서 4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굳이 미국의 대형할인점과 한국의 전자상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상품가격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상품의 가격정보를 충분하게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구매할 수 있는시간과 장소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불만은 소비자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기업들도 제품가격에 원자재가격 임금 환율 등의 변화를 즉시 반영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못하다.반대로 한번 오른 상품가격은 인상요인이 없어졌다고 내려오는게아니다. 기업들이 인상된 가격을 은근슬쩍 유지하기 때문이겠지만실제로 상품원가를 고려해 가격인하폭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상품을 팔고 결산해봐야 손익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개별상품의 원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현실은 손익을 계산하는 방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상품 하나 하나의 원가와 팔린 수량을 계산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하나 하나 따질 수는 있지만 이렇게 되면 시간과 인력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업종마다차이가 있지만 제약업의 경우 이윤폭에 따라 상품을 4개 그룹으로나눠 관리한다. 정확한 이익규모는 알수는 없어도 그때 그때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기업들이 애용하는 방법이다. 상황이 이러니 상품의 수요에 맞춰 원가를 계산해 개별상품의 가격을 유동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일이다.상품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는 유통망에있다. 본사에서 상품가격을 내렸다 해도 도매상이나 소매상 혹은판매원에게까지 가격인하정보가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판매원이 인하된 가격은 3주일후에 알았을 시점에는 다시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도매상이나소매상이 본사의 가격인하정책을 무시할수 있는 여지도 많다.이 모든게 시장이 불완전한데서 오는 결과다. 그런데 앞으로는 바뀔 전망이다. 디지털혁명의 결과다. 소비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 저것 비교한 다음 가장 좋은 가격조건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되고 기업은 상품의 수요에 맞춰 상품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가격도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완전한 시장경제의 이상이 서서히실현돼가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보급으로 가격흥정도 쉬워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인터넷이나 기업간 네트워크 혹은 무선통신망 등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과 가계 기업 등이 하나로 묶여야 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묶이게 되면 독과점이 사라지게 된다. 소비자가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가격과 질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보급으로가격흥정도 쉽게 할수 있게 된다. 거래가격도 상품에 표시된 가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결정된다.사실 정찰가격제는 최근에서야 정착된 제도다. 한세기전만 해도 상품을 구입하려면 가격을 흥정해야 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체제와 철도와 운하 등 대량 운반수단이 갖춰지면서 정찰제가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다시 가격결정을 1대1로 흥정하는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인터넷이 다수대 다수가 가격을 흥정하는데드는 비용을 크게 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경매가전형적이다.경매를 통한 거래는 이미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증권시장이 전형적이다. 딜러나 브로커 등은 증권시장의 시스템을 통해 거래한다. 전자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매수주문과 매도주문을 낸다.주식에는 액면가라는 고정된 가격이 있지만 실제로 거래될 때는 기업의 가치와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수시로 변한다. 또한 매수자가 내건 가격과 매도자가 희망하는 가격조건이 맞아야 거래가 성사된다. 앞으로는 증권 뿐 아니라 식료품부터 반도체까지 모든 상품이 이런 식으로 거래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과 기업들간구매와 판매과정에서 경합을 벌여 상품의 가격이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게 된다.(28~30쪽 참조)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가 거대한 시장역할을 하면서 얻는 이익은소비자만의 몫이 아니다. 기업도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상품재고를 창고에 쌓아 두어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은 항상 일정정도의 재고를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보통재고는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최소한 2~3개월분은 안고 있어야 한다. 특히 원자재나 핵심부품은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재고가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기초재료가 아니라 완제품이나 반제품의 재고다. 구매주문이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정확하게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완제품이나 반제품의 재고를 항상 일정량 떠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상품의 유행이나 사이클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점에서 대량의 재고는 기업경영에커다란 짐이 되기 마련이다.채찍효과도 기업에 재고부담을 안기는 요인이다. 채찍효과란 채찍의 한쪽끝을 조금만 흔들어도 다른 한쪽 끝이 심하게 흔들린다는현상을 두고 설명한 것으로 소비자의 구매량이 조금만 변해도 생산자에게는 대량의 수요변화로 전달된다는 이론이다. 즉 A상품의 수요는 단지 1%만 늘었는데 소매상은 도매상에 2%늘려 주문하고 도매상은 제조업체에 3% 늘려 주문한다. 주문을 접수한 제조업체는 생산계획을 세울때 4%늘려 잡는다. 결국 수요변화는 1%에 불과한데실제 기업의 공장가동률은 4%나 변하게 된다.그나마 수요의 변화를 생산에 반영하는 시차도 크다. 생산계획을경험적인 자료에 근거해 유지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재고는 재고대로 쌓이고 정작 필요한 상품은 제때 공급하지못하는 경우가 빈발하는 것이다.기업이 재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조건이 해결돼야한다. 우선 소비자들의 구매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으로 집적돼야 한다. 다음으로 집적된 소비자의 구매정보를 생산자와 생산자의 협력업체가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한다. 즉 주문이 들어오는시점에서 재고상황 및 생산능력부터 운송여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도 본사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생산기지와 협력업체의 상황까지 동시에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가격과납기 수량 등의 계획을 정교하게 세울 수 있다.이미 상당수의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구매정보를 분석해 데이터베이스에 집적하는 단계에 올라 있다. 구매물량이나 상품의 종류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세세한 구매행동까지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기업도 있다. 특정 소비자의 구매습관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집적해놓고 파악할 정도다.구매정보 분석의 경우 POS(Point of Sale,판매시점관리)를 도입했다면 이미 기반은 갖춰진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는다면굳이 POS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더라도 구매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집적할 수 있다. 집적된 구매정보를 바탕으로 소비자별 혹은 제품별로 정교한 마케팅계획을 세우는 게 가능해 진다. 그러나 문제는상품생산 및 공급계획이다. 아무리 구매정보가 풍부해도 이에 대응해 상품생산 및 공급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별효과가 없기때문이다.(32-34쪽 참조)소비자의 구매주문과 생산 및 공급계획을 통합관리함으로써 성공한대표적인 기업이 델컴퓨터다. 지난 3년간 주가가 26배나 오르는 등포화상태라는 PC시장에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흔히델컴퓨터의 성공요인으로 인터넷을 통한 직접주문 판매를 예로 든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원하는 스타일의 컴퓨터를 주문하면 중간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의 한쪽면에 불과하다. 인터넷직판만이 성공요인이라고 하기엔 이미 적지 않은 회사들이 델컴퓨터처럼 인터넷을 통한 직판에 의존하고 있다.델컴퓨터는 인터넷을 통한 주문판매에 주문생산능력과 결합한게 성공요인이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즉시 계약할 수 있고 약속한 납기도 정확하게 지킬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들어오는 주문에 대응해 정교한 생산계획을 짤수 있는 능력 때문에가능한 것이다. 델은 지난해 가을 월마트로부터 크리스마스특수를앞두고 갑자기 PC 2천대와 서버 4천대에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를설치해 공급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델은 6주만에 납품을 완료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양대 증권시장인 나스닥에 8대의 컴퓨터를 36시간만에 납품하기도 했다. 그것도 포장을 뜯자마자 사용할수 있게 서버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완전하게 셋업해 놓은 상태로 공급했다. 나스닥은 아시아금융위기로 거래량이 폭증해 시스템용량을 급히 확장해야 했던 것이다.◆ “이상적 시스템도 활용 없으면 소용없다”델의 이런 능력은 주문에 대해 정교한 생산 및 공급계획을 세울 수있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주문받는 시점에서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협력업체들의 생산능력 및 재고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을 뿐아니라 메모리나 하드디스크 모니터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수십가지나 되는 컴퓨터조립의 옵션을 고려해 생산라인을 유연하게 조정할수 있기 때문이다.기업이 재고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이뿐 아니다. 이미 발생한 재고를 처리하는 시장도 형성됐기 때문이다. 국내외에 성업중인 온라인경매사이트의 상당수가 중고품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중에는 개인이 갖고 있던 물품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재고를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곳도 있다. 미국의 잉여전자부품을 사고 팔수 있는 패스트파츠(www.fastparts.com)가 대표적이다.그러나 아무리 이상적인 시스템일지라도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런소용없다.(34쪽 상자기사 참조) 국내기업들에 경영자문을 많이하는한 경영학 교수는 『ERP(Enterprize Resources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나 SCM(Supply Chain Management 총공급망 관리)에 대해 설명하면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세금걱정부터 한다』며 『작은 것에연연해 큰 것을 못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 경영이 투명해져 세금을 20% 더 내더라도 수익을 50% 늘리는게 낫다는 것이다.국내 유명기업의 재무시스템구축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어느재무컨설턴트는 『국내 기업들은 최신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도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꽁수를 부린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편법은멸망의 지름길일 뿐이다. 조작된 데이터나 이중장부는 남의 눈뿐아니라 자신의 눈까지 속이기 때문이다. 부도나기 일주일 전에야비로소 기업실상을 깨닫는 것도 경리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