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발표한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글락소웰컴과 스미스클라인비첨간의 합병계약은 증권시장을 들뜨게 했다.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의 탄생이라는 호재 때문이다. 그러나 글락소웰컴과 스미스클라인비첨간에 맺은 계약은 이제 「없던 일」이 됐다. 두 회사의CEO(최고경영자) 글락소웰컴의 리처드 사이크회장과 스미스클라인비첨의 얀 레쉴리회장 어느 누구도 CEO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럼에도 CEO자리는 서로 양보할 수 없어 합병계약마저 파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파혼」 사례는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지몰라도 합병계약이 깨지는 전형적인 예다. 합병계약은 성격상 극비리에 매우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합병할 때 고려해야 할문제들이 종종 간과되기 쉽다. 특히 CEO간 권력분배 등 문제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계약서에 날인한 다음에야 문제가 되기 일쑤다.합병의 걸림돌은 CEO간 권력투쟁 뿐이 아니다. 기업간 문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기업합병이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실패한 사례로 꼽히는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소니와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간의 결합이다. 89년 소니는 부푼 기대를 안고 34억달러를 들여 컬럼비아를 사들였다. 소니의 하드웨어에서 컬럼비아의 소프트웨어가돌아가면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할리우드에서는 자발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가 필요한데 소니의 기업문화는 위계적인 질서를 존중했다. 또한 기업내에서 합의를 이루는데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소니는 95년 27억달러의 손해를 감수하며 컬럼비아를포기했고 그해 적자규모는 33억달러나 됐다.반독점 규제도 합병성사의 주된 장애물중 하나다. 미국 장거리 통신업체인 월드콤과 MCI의 합병이 그 예다. 월드콤-MCI의 경쟁사인GTE는 MCI와 월드콤의 합병을 독점혐의로 미 연방통신위원회에 제소했고 미 법무부도 이미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위반 여부에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GTE는 『양사간 합병은 장거리 통신시장을 독점해 이 분야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소지가 크다』 고주장했다. 만일 GTE의 주장대로 독점이 인정되면 MCI와 월드콤의합병 역시 「없던 일」이 된다. 독점금지법에 위반된다면 기업간계약은 합병이건 인수건 당장 원인무효가 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회계프로그램 전문업체인 인튜이트를 인수했다 독점금지법위반으로 원상복귀한 사례도 있다.◆ 근로자간 임금 조정도 쉽지 않아국가간 제도적인 차이도 걸림돌로 작용할수 있다. 제조업사상 최대규모이자 환상의 결합이라는 독일 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 경우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가장 풀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합병에 따른 회계처리 문제다. 미국과 독일은 합병과 관련해 서로 다른 회계처리방식을 적용하고있다. 미국은 자산 합병(pooling)과 매수합병(purchase)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독일은 사실상 매수 합병방식만 허용하고 있다.자산합병은 양사의 자산과 부채를 합산 처리하는 것으로 합병절차가 끝난다. 그러나 매수방식은 장부가를 초과하는 자산가치에 대해서는 이를 영업권으로 보고 일정기간 상각처리하도록 하고 있다.현재 크라이슬러의 장부가는 1백20억달러, 자산총액은 3백95억달러다. 때문에 매수합병 회계를 택할 경우 자산 초과분 2백75억달러는상각처리해야 한다. 이 경우 크라이슬러는 매년 6억9천만 달러를상각처리해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독일법이다. 독일은 합병하는 두기업의 주식시가총액이 꼭같은 경우에만 자산합병을허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매수합병만 인정하고있다. 벤츠의 주식시가총액은 5백50억달러, 크라이슬러는 3백50억달러로 자산합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근로자들간의 임금 수준조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벤츠의1인당 생산성이 크라이슬러보다 높지만 양사의 임금을 생산성에 따라 얼마나 차등화할 수 있겠느냐는 것은 의문이다. 이미 크라이슬러의 노조는 『양사간 합병으로 크라이슬러의 노조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며 『만약 합병후 근로자의 강제해고 등이진행된다면 합병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