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행정고시를 패스해 지금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연수중인 김종영씨(35). 34세 고시합격에서 볼수 있듯이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다. 특히 그는 고시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졸이 최종학력이다.지난 88년 이후 행정고시에서 고졸자가 합격한 사례는 단 한건도없었고 공고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다.전북 부안이 고향인 김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했다. 사정상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그곳에 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고는 그의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 어렵사리 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갔다. 적으나마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다5년만 근무하면 병역문제가 해결됐다. 물론 입사 후 일을 하면서도내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유를 부릴 입장이 아니었다.5년간의 의무근무를 무사히 마친 김씨는 88년 10월 마침내 서울행열차를 탔다. 조선공사를 나와 약 4개월간 동국제강에 들어가 일을했지만 역시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맡기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 첫발을 내디딘 김씨는 일단 영어학원에 등록했다.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배워 놓으면 나중에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학원을 다니면서는 막연하게나마 적당한 때가 되면 무역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키웠다.그러다가 어느 날 원장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영어강사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대신 해보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학원생에서 학원강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강사노릇을 약 2년간 했다.◆ 영어공부하며 미래 꿈 키워고시공부를 시작한 동기도 강사를 했던 것 만큼이나 우연이었다.강사로 일할 때 생활비를 아끼려고 건국대 부근 고시원에 들어갔다가 거기에 붙어있는 외무고시 공고를 보고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역시 높았다. 92년과 93년 외무고시 1차에서 연이어 떨어졌다. 이어 94년에는 어렵사리 1차를 통과했지만 다음해인 95년에치른 2차에서 또 낙방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벌어졌다. 나이제한에 걸려 더 이상 외무고시에 도전할 수 없다는사실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나이는 이미30살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일단 고시를 포기한 김씨는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이가 자꾸 걸렸다. 취업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행정고시에 국제통상직이 신설됐는데 과목이외무고시와 2과목만 다르고 똑같았다. 순간 김씨는 하늘이 나에게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다시 책 속에 파묻혔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다보니 돈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았다. 낮에는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근처 아파트건설 현장의 경비로 나갔다. 주경야독이 아닌 주독야경을 했던 셈이다. 이런 생활은 행정고시를준비하던 기간 내내 되풀이됐다. 다행히 행정고시는 순탄하게 풀렸다. 준비를 시작한지 만 2년여만에 1, 2차에 합격했다. 여기에는외무고시 준비로 다진 밑천이 큰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준비 기간 동안에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김씨는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한번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밀어붙였다. 특히 공고를 나온데다 독학을 하다보니 모르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인내를 바탕으로 이를 극복했다. 김씨는 인터뷰를 마치며『가능성이 1%만이라도 있으면 한번 해볼만하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느냐 못이루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