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8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내 벨로드롬. 11시가 가까워지면서 사이클복장의 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금∼일요일에 펼쳐지는 경기에 참가하러 모인 경륜선수들이다. 모두 건장하고 단단해보이는 체구로 유난히 하체가 단련된 몸들이었다. 그중 다른 선수들과 달리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가늘어 보이는 몸으로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이종수(28)선수다.『태어날 때부터 왼손과 왼발을 전혀 못쓰다시피 한 우측전신 소아마비였습니다. 거의 누워지내다시피 했으니까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어요.』「천형」처럼 안고 태어난 소아마비로 어려서는 집밖을 나간 적이거의 없었다. 초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불편한 몸으로 친구들에게 이유 없이 매를 맞는가 하면 여자에게도 놀림을 받으면서 「충격을받고」 한가지 결심을 한다. 「비록 소아마비로 움직이지 못하지만운동으로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는. 그후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방과후에 2백m 운동장을 70∼80바퀴씩 뛰었다. 매일 산에 오르기를 수십번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뜀박질과 산에 오르는 일을 멈춘 날이 없을 정도다.달리거나 산에 오르는 운동을 유일한 낙으로 삼던 이선수는 중학교3학년 때 인생의 동반자가 된 자전거와 인연을 맺는다. 초등학생때처럼 운동시간이 나지 않자 보다 쉽게 운동하기 위해 자전거를사달라고 아버지를 조른 것이다. 그후 자전거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발」이 됐다. 틈만 나면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중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하고싶어도 할수 없는 환경이었어요.오른손이 불편해 노트 필기를 할수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운동 독서 등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다시피 했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던 중 지난92년 우연히 사이클동호회의 운동모습을 보고 『타보고 싶다』는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날렵한 사이클을 타고 바람을 가르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당시 이선수가 살던 경기도 안산시는 차량소통이 적은 대신 도로가 널찍해 사이클을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다행히 사이클동호회와 선수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사이클주행법을 배우고 체력을 단련시킬 수 있었다. 자전거도 사이클로바꿨다.◆ 운동이라는 담금질로 소아마비 극복그후 사이클 타는 것이 하루일과의 전부가 됐다. 그러던 중 지난93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경륜선수를 양성하기 위해사이클선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한 것이다. 산악달리기 사이클타기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꾸준히 단련해왔기에 경륜선수모집에지원, 당당히 합격했다. 『(합격했을 때)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는 이선수는 그후 1년간의 훈련을 마치고 테스트를 받아 선수자격을 획득했다. 그게 지난 94년. 그후 길이 3백33m의 벨로드롬은곧 「삶」이 됐다. 운동이라는 담금질로 소아마비로 절룩이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경륜선수 이종수」로 완벽히 탈바꿈, 「평범한 사람처럼 되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소아마비를 이겨낸 불굴의 집념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1, 2위를 연거푸 차지하다시피 했다. 상금수입이 전부인 경륜선수로서 같은 나이의 대졸 샐러리맨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했다. 겨우 체면이 섰다는 생각에 주변 동료선수들과 지금 결혼을앞둔 애인에게도 자신이 소아마비출신임을 털어놓았다. 모두 놀랐음은 불문가지다. 『경기를 할수록 자신이 생긴다』는 이선수는 올시즌에 들어서도 6개 레이스에 출전해 1위 1회, 2위 2회 등의 성적을 올리며 성가를 높였다.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자전거를 맘껐 탈수있기에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선수.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하루만 운동을 게을리 해도 바로 몸이 이상해져요. 그래서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훈련으로 일과를 짜놓았어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바라서라기보다는 사이클을 탈 때가 기분이 가장 좋아서죠. 자전거로 결국 그토록 바랐던 「보통사람」처럼 됐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