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면 직장인들의 바쁜 발길이 북적대고 밤이면 하루를 마감한 직장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곳. 오피스타운이다. 마천루로 표현되는 스카이라인이 초행자들의 눈길을 잡고, 오가는 차량과 인파의번잡함에 눈과 귀가 잠시도 쉬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피스타운임을 드러내는 고층건물마다 임대·분양중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거리마다 넘치던 활기와 분주함은 간데 없다.바로 IMF시대를 맞은 오피스타운의 「풍경화」다.서울의 대표적인 오피스타운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증권사 종금사 은행 들이 몰린 금융가라 싸늘한 경기를 유난히 타고 있다. 『가격만 맞으면 임대가 될텐데 내놓은지 한달이 넘었지만 아직 임대가 안되고 있습니다.』 건물의 1개층 5백20평을 평당5백75만원에 내놓은 동양종금 총무부 남상식씨의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내놓자마자 나갔을 물건이지만 을지로입구를 주름잡던 증권·금융업의 침체로 임대가 되지 않아 1개층을 2개로 나누어 다시 내놓았다. 『건물입지가 좋고 새 건물이어서 곧 임대가 될 것』이라는게 남씨의 기대다. 불경기 탓에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줄어들었다. 을지로입구역 내외빌딩 주차장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주차비 지원이 끊기면서 월 정기주차와 낮의시간제 주차가 각각 약 40% 정도씩 줄었다』고 말했다. 비는 사무실들이 늘어나면서 대형빌딩 지하상가에 감초처럼 자리잡고 있는문구점도 울상이다. 『하루매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팔려고 해도 권리금이 떨어져 팔수도 없다』는 것이 체육회관근처 D빌딩 지하상가에서 문구점을 하는 박정심씨(45)의 말이다.소득이 줄어들면서 가벼워진 직장인들의 지갑은 밥 한끼, 술 한잔이라도 「저렴한 값에 푸짐한 양」을 기준으로 삼게 만들었다. 『싸고 양이 많아야 장사가 된다』는 것이 무교동포장마차 윤모씨의말이다. 그래서 요즘 무교동과 을지로입구에는 길에 파라솔과 의자를 놓고 저렴하게 술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성업중이다. 반면『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은 장사가 안돼 매물로 나온 것이 많다』는것이 우신부동산 강재준사장의 말이다. 무교동의 T룸살롱에서 일한다는 한 여성도 『요즘 손님이 뚝 끊어졌으며 어쩌다 손님이 있더라도 국산양주를 찾거나 맥주를 주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먹고마시는 업종만이 아니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구두닦이점을 운영하는 송모씨의 『구두를 닦는 사람들은 절반으로 줄었으나 수선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는 말처럼 씀씀이에 있어 알뜰파들이 늘어났다.그러나 무교동일대에 술손님이 줄면서 늦은 밤이면 취객들의 실랑이에 진땀을 뺐던 경찰은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무교동을 관할하는 남대문경찰서관할 을지로1가 파출소의 부소장은 『취객들 실랑이나 싸움이 한달에 한건이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남대문경찰서 관할 파출소중 가장 조용하다』고 말했다.『지금 40% 정도가 빈사무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좋아질 것입니다. 인근에 서울파이낸스센터, 조흥·동화은행 본점등의 입주가 시작되고 경기가 살아나면 최고의 오피스타운으로 곧다시 제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 을지로·무교동지역은 『희망이 있다』는 한일부동산 최교영사장의 말이다.지하철2호선 선릉역주변. 테헤란로와 그 이면도로까지 신축건물들이 급증한데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강남역 근처를 능가하는 최고의 오피스타운으로 떠오른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맥을 못추고 있다. 신세대 직장인들을 겨냥해 인기가 높았던 원룸주택을 분양한 업자들이 모두 망했다는 부동산업자의 말이 나올 정도다. 『선릉역인근의 공실률이 30% 정도입니다. 임대료도 평당 3백50만원정도였으나 2백30만원대로 떨어졌어요. 그래도 거래가 전혀 없어요.』 삼익부동산 김만진사장의 말이다. 빈 사무실이 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상가가격은 30%정도 떨어졌으며 평당 최고 1천만원에 육박했던 권리금은 아예 형성이 안되는 곳도 허다하다는 것이 김사장의 설명이다.빈사무실이 늘고 직장인들이 줄어들면서 「장사가 안된다」는 말은선릉역 인근의 상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됐다. 지난해말3억원을 들여 선릉역 이면도로쪽에 횟집을 열었다는 송모씨는 『하루매상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직원월급을 주기 위해 적금과보험을 해약했다』고 말했다. 오피스타운인 선릉역 주변의 쇠퇴는병원마저 「감염」시키고 있다. 일반외과나 정형외과와 같이 반드시 병원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환자가 끊겨 문을 닫은 병원들도 생겼다. 『직장인들이 환자의 대부분』이라는 선릉필내과의원의한규희원장은 『자신 또는 가족의 실직에 대한 불안과 답답증을 호소하는 신경증환자나 스트레스성 질환인 과민성대장·위염·위궤양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특히 『위염환자의경우 재발환자가 많아 직장인들이 받는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알수있다』는 것이 한원장의 설명이다.◆ 학원·식당도 매출 찬바람뉴욕에 맨해턴이 있다면 한국에는 여의도가 있다. 증권사 투신사들이 몰려있어 한국의 월스트리트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IMF한파에서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여의도광장을 중심으로 나누었을 때 서여의도쪽이 「바람」을 심하게 타고 있다는게 부동산업자들의 말이다. 창일부동산의 박용순씨는 『여의도 전체를 보면 공실률이 20∼30% 정도며 임대료도 지난해말의 평당 보증금 30만원-월세 3만원선에서 20만원-2만원으로 25∼30%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상가는다소 예외다. 노총회관 지하에 있는 열린공인중개사사무소의 백형안사장은 『상가의 경우 임대료는 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권리금이 조금 떨어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점포와 달리 유흥업소들은 된서리를 맞아 『건물내 상가중 유흥업소가 매물의 대부분』이라는게 백사장의 덧붙인 말이다. 여의도내 유흥업소들의 불황은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 한달째 직원월급을 주지못하고 있다』는 서울안마사우나 오형존전무의 말로도 드러난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한명이라도 손님을 더 끌기위해 점심과 저녁에 각각 30%,20%씩 음식값을 할인해준다는 식당들의 선전지와 현수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IMF로 학원가도 몸살을 앓고 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단체수강이 없어지면서 수강생이 20% 정도인 1백여명이 줄었다』는 것이 예일외국어전문학원 상담부 김승진씨의 말이다. 수강과목도 변화가 생겼다. 『전에 토익수강생이 많았으나 지금 토익수강생은 현저히 줄고 회화수강생들이 늘어났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IMF한파는 한강을 넘어 마포대교에서 아현동에 이르는 귀빈로지역에도 매서운 칼바람을 날리고 있다. 마포의 경우 20∼30평대의 사무실들은 그런 대로 수요가 유지되지만 1백평이상의 대형 사무실들은 수요가 없어 타격이 더 크다는 것이 중개업자들의 말이다. 현대공인중개사무소의 강정균사장은 『고려아카데미텔Ⅱ의 공실률이지금 매물로 내놓은 것을 포함하면 15%나 되며 임대료도 전세의 경우 3천1백만원에서 2천2백만원으로, 월세의 경우 20%인 7만원 정도떨어졌다』고 말했다.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부모들과 떨어져 살던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 유흥업소종사자들이었으나 싼 곳으로 옮기거나 부모들과 살림을 합치면서 매물이 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오피스타운이 모두 찬바람을 타는 것은 아니다. KBS별관 뒤엘리트식당 민미홍씨는 『오히려 매출이 IMF전에 비해 2배 정도 올랐으며 요즘 점심식사시간에만 2백여명이 몰리고 있다』며 희색이다. IMF가 터지면서 팔기 시작한 2천원짜리 얼큰우거지탕으로 인근직장인들로부터 인기가 한창이라는 것이다. 무교동에 있는 맥주집인 대성골뱅이호프도 푸짐한 골뱅이안주를 9천원에 내놓으며 인근직장인들로부터 퇴근후 가장 인기있는 술집으로 자리잡았다. 결국알뜰·실속파를 겨냥한 곳들만이 오피스타운에서 IMF를 이겨나가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