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보석이 전문인 H기업 입사 3년차인 이모씨(28). 대구에서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상경해 지난 96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는 보석사업부의 영업관리로 백화점의 직영매장과 각 지역의 전문매장을 관리한다. 다행히 하는 일이 외향적인 자신의 성격에 맞아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별로 없다. 이따금씩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의견충돌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정작 큰 문제는 사내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매출이 IMF 전과 비교해 70% 가까이 떨어졌다. 거의 파리를 날리는 수준이다. 매장수도마찬가지다. 지난해만 해도 전국적으로 15개였던 것이 지난 1월부터 하나둘씩 문을 닫아 이제는 5개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남아있는 매장도 언제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중단할지 아무도 모른다.회사측에서도 거의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IMF사태 이후 줄이기에만급급한 인상을 준다. 지난 2월초 실시됐던 1차 정리해고는 이런 회사측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보석사업부의 사원을 절반 가까이줄이겠다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명예퇴직금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지원부서를 중심으로 전체 직원 50명 가운데 거의30여명이 사표를 쓰고 보따리를 쌌다.급여도 크게 깎았다. 월급은 지난해 수준에서 그대로 주었지만 연5백50%인 보너스는 한푼도 줄수 없다고 밝혔다. 회사가 어려운만큼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였다. 일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이씨의 연봉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90여만원의 월급에 보너스를 합쳐 약 1천6백만원의 연봉을 받았으나 올해는 보너스가 전혀 없어 1천만원 정도 밖에 안될 것으로 보인다. 전년에 비해줄잡아 35%가 깎인 셈이다.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또 한차례의 태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측은 지난 6월초 다시 2차 정리해고를 전격 실시했다. 정리폭은 1차 정리해고에서 살아 남아있는 직원의 50%였다. 결국 두차례의 정리해고를 통해 전체 직원 50여명 가운데 11명만이 자리를유지했다. 보석사업부 역시 초미니 부서로 전락하며 명맥만을 유지하는 정도가 됐다. 아직 부서 전체를 없앤다는 얘기는 없지만 이씨를 포함한 부서원들은 올해 말쯤 아예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게 아니냐며 불안해 하고 있다.회사만 변한 것은 아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이씨의 개인적인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먼저 씀씀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월급에서 적금(월 45만원)과 생활비(얹혀사는 형님댁에 월 20만~30만원씩 줌)를 떼고 남은 약 30만원의 돈으로 용돈을 충당했다. 특히두달에 한번 꼴로 보너스가 나와 총각인 이씨로서는 전혀 부족함이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월급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까닭에 경제적인 부담이 무척크다. 궁여지책으로 형님댁에 주던 생활비를 딱 잘랐고, 개인적인용돈도 예전의 반으로 크게 줄였다. 또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달에한번 꼴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내려 갔으나 올해 들어서는돈이 겁나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한번 갔다오면 보통20만~30만원쯤 드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가 전혀 없는 까닭이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다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그러나 이런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맨데서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생각하기에 정작 심각한 것은 부서원들의 사기문제다. 정리해고라는 태풍을 맞으면서 일에 대한 의욕이 땅에 떨어졌다. 회사를 위해 내 한몸 바쳐 일하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적당주의가 팽배해있는 것이다. 이씨 역시 때가 오면 독립해 자기 사업을 해볼 작정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회사에 걸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