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선발시중은행으로는 안된다. 후발은행을 키워 6대시은을 고사시켜야 금융이 달라진다.』 80년대 후반 재무부 금융정책관계자가한 말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엔 후발은행이 6대시은을 따라잡기란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던 시절이었다. 이 관계자가 지나가는 말로했을법한 이 다짐은 그대로 적중할지 모른다. 「10년뒤를 내다본무시무시한 예언」이라고나 할까.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접어든지 반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이 말은 부분적으로나마 그 어느때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아졌다.은행퇴출발표를 30여시간 남겨둔 6월27일 토요일 저녁. 후발은행이면서도 최정상의 우량은행으로 인정받는 하나은행의 김승유행장은80년대 후반에 정해진 이런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충청은행을인수해 달라」. 김 행장은 다음날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집요한종용에 손을 들었다. 후발은행이 어느새 다른 은행을 삼킬 정도로큰 것이다.국민은행 송달호행장과 주택은행 신명호행장은 그 시각 집에서 작전개시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은행에서 비상대기상태로 남아 있던직원들에게 「내일 출동」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튿날 서울에서 먼 대구(대동은행) 부산(동남은행)으로 떠나는 두 은행의 「점령군」이 옷가지를 챙겨 떠나는 장면은 곳곳에서 목격됐다.사실 두 은행은 모두 부실은행 인수요청에 저항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이 잘못되면 먼훗날 은행부실화의 「원흉」이 될수 있는데도 말이다. 두 은행장의 대답은같았다. 『선도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선도은행(리딩뱅크). 말그대로 상품개발, 서비스, 국제경쟁력에서 다른 은행을 앞서가는 은행이다. 한사코 독자노선을 고집하던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도 이 선도은행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퇴출은행 인수대열에 가세했다. 퇴출결정과 함께 「짝짓기」가 끝난직후 주택 국민 신한 한미 하나 등 5개인수은행은 정부가 인정한우량은행으로 불리는 「영예」를 누렸다.이들 은행의 다음 목표는 초대형은행. 민영화를 추진중인 제일 서울, 그리고 조건부승인을 받고 아직 불투명한 운명에 처한 조흥 상업 한일 외환 등 6대시중은행을 누르고 명실상부한 초대형은행이되는 것이다. 이런 목표는 결코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우선 이들은 자산규모에서 기존의 선발은행들에 필적하는 대형은행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5개인수은행은 퇴출은행들을 인수함으로써우선 자산규모가 5조∼12조원 정도 불어나는 대형은행으로 변신할수 있다. 물론 퇴출은행으로부터 우량자산만을 인수하기 때문에 인수후 자산규모를 정확하게 산출하기는 어려우나 작년말 현재의 자산규모를 단순 합산하면 은행권의 자산규모 기준 서열은 큰 변화가생긴다. 이들을 금감위가 인수은행으로 선정한 것도 이들이 각자영업영역을 강화해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있었다.국민은행은 작년말 현재 자산규모가 54조3천9백98억원. 대동은행(7조7천1백52억원)을 인수하면 자산규모가 62조1천억원대로 불어난다. 시중은행 가운데 외환은행(62조3천1백88억원)에 이어 3위에서 2위로 올라선다는 얘기다. 점포수도 기존 5백11개에서 대동은행점포 1백7개를 인수, 6백18개가 된다. 외형면에서 초대형은행(슈퍼은행)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이 은행은 앞으로 기존 영업전략(산매금융특화)을 고수하면서 대동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노하우를 발빠르게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외자유치나 또다른 퇴출은행의 인수나 합병을 통해 덩치를 더 키울 계획이다. 주택은행은46조9천5백29억원의 기존 자산에 동남은행의 자산 10조5백55억원을인수하면 57조원으로 3위로 뛴다. 점포수도 4백99개에서 동남은행의 1백19개 점포를 인수, 역시 6백18개가 된다. 국민 주택 두 은행모두 상업(5백13개), 조흥(4백85개), 한일(4백78개) 등을 크게 능가하는 초대형 은행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신한은행은 43조5천8백47억원의 자산에 동화은행의 12조9천6백82억원을 더하면 56조5천억원으로 4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자산규모55조6천2억원인 조흥은행, 53조8천5백36억원인 한일은행,48조5천5백24억원인 상업은행은 각각 5위, 6위, 7위로 밀려난다.기존의 2백23개 점포도 동화은행의 1백38개 점포를 합쳐 3백60여개로 늘어난다. 수도권 점포망의 확대를 통해 영업기반도 크게 확충될 전망이다.하나은행은 자산규모가 기존 22조9천4백41억원에 충청은행의4조8천2백91억원을 더해 27조원을 넘어선다. 최근 추진해온 보람은행과의 합병까지 마무리되면 자산규모는 53조원대로 껑충 뛴다.한미은행은 자신보다 손발이 더 많은 경기은행을 낚았다. 자체 점포수가 1백28개에 불과한데 비해 경기은행은 1백94개에 달하기때문이다. 양쪽의 3백20여개 점포는 대부분 수도권에 포진하고 있다.이번 인수는 수도권에서의 영업기반을 대폭 확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산규모도 16조4천3백41억원의 기존 자산에 경기은행의 8조8천9백35억원을 더해 25조3천억원에 이른다.그렇다고 이들에게 장미빛 미래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반부실화. 인수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결과다. 실제로 그나마 괜찮던 은행이 부실은행을 떠안아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인수은행이 6대시은을 제압하기도 전에 퇴출은행이란 「부실폭탄」에 인수은행의 손발과 머리가파편을 맞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제일 먼저 발견된 「폭탄」은 퇴출은행의 신탁. 정부가 손실분만큼자금을 지원해 「뇌관」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인수은행은 상처를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인수은행이 만족할만큼 충분한 지원을해줄지 의문이다. 인수은행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약속을 액면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다음으로 등장하는 게 퇴출은행 직원과 기존직원간의 인화 문제.이 문제는 일종의 시간을 축으로 늘어선 「지뢰밭」이다. 시간이흐르면서 하나둘 불거질 양측간 갈등과 반목은 조직의 생기를 빼앗고 끝내는 공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이 합병한 서울신탁은행이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융화시키는데 실패한 것은 좋은 본보기다. 많은 은행원들은 20여년간의 치열한 권력투쟁끝에 서울은행출신이 신탁은행출신을 누른뒤 그 「기념」으로 은행이름을 「서울은행」으로 바꾼 직후 퇴출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식의 얘기를 우스갯소리로만 여기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인수든 합병이든 최종성공여부는 기업문화의 결합에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한다.여기에 완전히 새로운 금융환경은 이들 은행이 극복해야 할 도전이다. 사실 밀려드는 외국계금융기관의 공세, 금융기관간 치열한 경쟁은 이들 뿐 아니라 한국금융산업앞에 가로놓인 장애물이다. 이장애물을 넘는데 커진 덩치 자체가 멍에가 될수도 있다.6대시은의 반격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독일코메르츠은행과 합작에 성공했다. 조흥 상업 한일은행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은행은 자본금확충을 계기로 후발은행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상호합병 가능성도 있다. 과거의 경쟁관계도 「생존」이라는 명분 앞에선 맥을 못출 것이라는게 대다수 금융전문가들의 얘기다.「은행도 망할 수 있다」. 97년초 이석채 전청와대경제수석의 말이다.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연초 공표된 미국 모건 스탠리의한국은행산업 분석리포트 제목이다. 은행불패신화는 깨졌다. 처절한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5개인수은행은 과연 최후의 생존자명단에끼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