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원가 절감은 대부분 기업의 지상 과제가 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획기적인 비용 감축 없이는 기업의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위해 기업들이 시도하는 방법은 물품 절약과 인건비 삭감에 국한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무용품이나 원자재 등을 아껴쓰는 「절약 운동」이나 임금 동결이라든가 정리해고 등을 통한 인건비 삭감이 비용 절감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그러나 A.T.커니의 이영호 컨설턴트는 『비품 절약이나 인건비 삭감은 단기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아껴쓰는데는 한계가 있고 인건비 삭감은 회사 전체의 생산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미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방법이 또 어느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다 주는지도 의문이다.그렇다면 원가 절감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원가를 구성하는 원가구조를 파악, 최대한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되는 부문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즉 원가구조의 핵심을 찾아내 그 부문을 개선함으로써 비용 절감의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가의 50%를 차지하는 비용요소를 10% 줄이는 것이 원가의 10%를 차지하는 비용 요소를 10%줄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고려하는 인건비 삭감은 생각만큼의 큰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인건비의 경우 회사의 전체 현금 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많아야 20%를 넘지 않는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가구조의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용 요소는 구매비라고 할수 있다. 산업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구매 비용은 전체 현금 흐름의50∼80%를 차지하고 있다.A.T.커니에 따르면 산업별로 구매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석유산업이 50∼60%, 소비재 산업이 55∼65%, 자동차산업이 60∼70%, 소매업이 75∼8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구매 비용이야말로 전체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의 비용 요소이자 원가 절감의 핵심인 셈이다.물론 국내 기업들도 이런 사실을 인식, 나름대로 구매비를 줄이기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기업들이 구매비 감축을 위해 시도해온 방법은 「최저 입찰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필요한 물품이 생길 때마다 가장 싸게 공급하겠다고 제안하는 업체로부터 조달받는 것이다. 「가장 싸게 사는 것」이 구매비용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이다.「싸게 사는 것」이 구매의 최고 목표가 되다보니 기업들이 구매에대해 가지는 태도 역시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구매팀은 생산 현장에서 요구하는 품목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구입, 제공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공급사가 제시한 가격에서 얼마만큼의할인 혜택을 얻어내느냐가 중요하지 더 이상의 효율적인 구매 방법이 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A.T.커니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미국의 자동차회사인GM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경제가 극도로 악화됐던 1987년 무렵에 GM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을 자인하고 11개의 미국내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GM은 일본 자동차 업계의 1/3 수준에 불과한 생산성을 일본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다양한 경영 개선 노력을 시도했다. 물론 정리해고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했지만 GM은 이런 단기적인해결책보다는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치유책에 무게 중심을 뒀다.구매 활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GM은 구매 활동이 비용 절감 뿐만이아니라 품질 향상과 서비스 개선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인식, 구매 활동에 「전략」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GM은 구매 활동을 개선한 결과 5년간 구매 부문에서만 11%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있었다. 미국내에서 이른바 「전략구매」라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전략구매는 말 그대로 구매를 전략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전략적으로 구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매 활동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중요한 기업 프로세스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가격적인 면에서나 비가격적인 면에서나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구매 활동을 펼친다는 것이다.엄밀하게 말해 전략구매 프로세스가 기존의 구매 과정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전략 구매가 과학화되고 체계화된 반면 기존구매는 경험과 감에 의존한다는 것이 프로세스상에서의 차이점이라고 할수 있다.전략구매는 7단계를 거쳐 시행되며 이 7단계를 모두 거치기 위해서는 보통 6개월이 소요된다. 전략구매의 7단계란 요약하자면 다음과같다. 구매 품목을 검토, 품목별로 구체적인 구매 전략을 수립하고그 전략에 따라 공급자 시장을 조사한다. 어떤 공급사를 통해, 어떤 경로로 물품을 조달받을지 선택한 후 최종적인 공급사를 선정한다. 공급사와 함께 공동 발전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구매 역량을 확대해간다.이 7단계의 전략구매 프로세스는 기존의 구매팀에서도 모두 하던일이다. 단지 기존 구매 업무에서는 경험상 몸에 익은 대로 시행하고 이 7단계를 모두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그렇다면 전략구매는 무엇이 다른가. 전략구매가 기존의 구매 방법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상 프로세스라기 보다는 구매에대한 인식이라고 할수 있다. 전략구매는 구매에 대한패러다임(Paradigm:사고의 틀)의 변화를 요구한다. 다음의 6가지특징을 통해 전략구매가 무엇인지 접근해 들어가 보자.◆ 전략구매의 6가지 특징첫째, 전략구매는 물량 집중을 특징으로 한다. 한 공급사에 대한구매 물량을 늘림으로써 기업의 협상 능력을 확대시켜 결과적으로더 나은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즉 구매 물량을 몇몇 공급사에 집중시켜 물량을 확대함으로써공급사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둘째, 전략구매는 물품 가격이 아니라 최적의 총체적 비용을 고려한다. 기존의 구매 활동은 물품의 「가격」을 중심으로 이뤄졌다.어느 공급사로부터 가장 싸게 물품을 제공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전략구매에서는 물품을 공급받는 가격 뿐만 아니라납기 준수나 서비스, 품질 등의 비가격적인 요소까지도 고려한다.한 마디로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구매의 부가가치가 문제다. 전사적으로 봤을 때 어떤 방법으로 구매 활동을 펼쳤을 때 총체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느냐에 관심의 초점을 둔다. 한 물품, 한 물품을모두 최저의 가격으로 구매했다고 해서 회사내의 구매 활동을 모두더한 합이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셋째, 전략구매는 글로벌 소싱을 기반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노린다. 글로벌 소싱이란 전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공급사를 선정,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전세계를 대상으로상품을 판매하듯 원자재나 부품 구매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개념이다. 글로벌 소싱을 도입하면 구매 가격을 한푼이라도 더 깎기 위해 기존의 공급사들과 힘겹게 흥정할 필요가 없어진다.구매팀 스스로 전세계 공급사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품질도 좋고가격도 싼 최적의 공급사를 찾아내면 된다. 글로벌 소싱은 구매팀의 시야를 한 지역 또는 한 국가에서 전세계로 넓히도록 유도한다.그러나 글로벌 소싱이 단순히 새로운 공급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각각의 공급업체들이 제시하는 가격 및 원가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공급업체들의 원가구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넷째, 전략구매는 구매자와 공급자의 관계를 개선시킨다. 전략구매에서 구매자와 공급자는 한 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쪽이 손해를보는 제로섬 경쟁을 벌이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플러스섬 관계를 맺게 된다. 구매자와 공급자는 서로의 물류를 공유하고재고를 함께 관리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A.T.커니가 전략구매를 컨설팅한 26개의 선진 기업을 조사한 결과 재고가평균 4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다섯째, 전략구매를 통해 구매자와 공급자는 공동으로 프로세스 개선을 도모한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은 공급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할 생각만 하지 그 업체가 가진 기술을 활용할 생각은 거의 하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구매할 품목이 부품이라고 가정할 때 그 부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누구겠는가. 바로 그 부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공급업체다. 부품 공급업체의 기술과 노하우를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그 기업은 상품 개발이나 기술 연구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항공회사인 보잉이나 에어버스는비행기 날개 등을 설계할 때 부품 공급업체의 기술을 전수받아 활용하고 있다.일본의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경쟁 우위를 확보, 유지할 수 있는것도 부품 공급업체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특히 도요타는 자동차 제작에서 판매까지 단 8일만에 끝내는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데 이런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부품 공급업체들의 협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A.T.커니에 따르면전략구매를 도입하면 제품 개발 시간을 평균 62% 가량 단축할 수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마지막으로 전략구매는 제품 디자인 개선에도 기여한다.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해 잘 알고있어야 한다. 제품 설계 당시부터 부품 공급업체의 엔지니어까지동원, 기능적으로나 외관상으로나 최선의 디자인을 도출해낼 수 있다.이런 전략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는 평균적으로12%라는게 A.T.커니의 설명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까지 고려한다면 전략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훨씬 더 크다고 할수 있다.마케팅이나 회계학 인사관리 재무관리 노무관리 등 대부분의 경영활동은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구매만은 뚜렷하게정립된 학문이 없다. 그만큼 구매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인정받아온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매를 기업 가치 사슬상의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순간 원가 절감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