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능률협회 관계자들은 방일 보따리무역 연수단을 모집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광고가 나가자 전국에서 행사내용을 문의하는 전화가 3천여통이나 쇄도,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연수에 참가한 사람들도 예상인원보다 50%나 많은1백50여명에 달했다.최근 한국생산성본부가 마련한 ‘소자본 중국진출 프로그램’에도신청자가 크게 몰렸다. 생산성본부측은 당초 한번에 30여명씩 모두두 차례에 걸쳐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신청이 밀려들어 60명씩 5차례로 행사 횟수를 늘렸다. 그나마 일부 신청자는 중국행 티켓을 확보하지 못한채 다음 기회를 이용해야 할 형편이다.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일명 보따리무역으로 불리는 소규모무역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대량해고가 이어지면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둘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국산품을 해외에 내다파는 무역의 경우 통상적으로 달러로 결제를 해주기 때문에 한국인들 입장에서 최근의 달러화 강세는 무역업을 하기에 호재가 되는셈이다.여기에다 국산 재고품을 해외시장에 내다팔려는 개인무역업자들의활발한 움직임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한다. 땡처리업자들로 불리는이들은 부도난 회사나 내수부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체의 상품을 대거 사들인 다음 이를 일본이나 중국에 덤핑으로 파는 일을 한다.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거래 물량이 크기 때문에 보따리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보따리무역은 원래 물건을 직접 들고다니며 판다는 데서 유래했다.외국을 드나들며 사업을 하는 영세한 무역업자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요즘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소규모무역상을 뭉뚱그려그냥 보따리무역상으로 부른다. 또 최근 들어서는 한국과 중국을오가는 배를 통해 남의 물건을 옮겨다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명 ‘따이공’(운송업자)도 보따리무역상 대열에 포함시키는 실정이다. 요즘 보따리무역상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를 하는 곳은 역시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중국, 러시아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시장 자체가 워낙 큰데다 아직 미개척지가 많아 잠재적인 폭발력이 대단한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중국은 보따리무역의 보고로꼽힐만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중국을 오가는여객선의 승객수는 전체적으로 30% 가량 줄었다. 관광객과 출장객수가 크게 감소한 까닭이다. 그러나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무역상만큼은 오히려 30% 가량 증가했다. 특히 실직자들과 여성들의 증가가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중근 위동항운 여객담당 차장은 『국내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생계를 위해 중국을 상대로 소규모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거래처 확실하면 수입보장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중국행 배에 몸을 싣는 무역상 가운데는 고생만 하고 돈은 별로 못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무역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데다 세관규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져간 물건을세관에 압수당하거나 헐값에 처분하는 바람에 오히려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본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물론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거래처만 확실하게 확보하면 적잖은 돈을 벌수 있다. 보통 20% 안팎의 마진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덩치가 큰 기계 등 중공업 관련 제품은 그 이상의 이윤도 가능하다. 다만 최근 들어 외국의 바이어들이 자꾸 단가를 깎으려 들어 무역업자들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무역에서 보따리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다. 전체 액수 가운데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대기업 못지않게 중소기업이 중요하듯 이들의 역할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국내 무역분야에 얼마든지 실핏줄 역할을 할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은 소비가 있는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기동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개척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뚫을 첨병으로서의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인터뷰 / 한일문산 김미경씨올해로 무역업을 시작한지 10년째를 맞는 베테랑 무역업자 김미경씨(34).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무역회사에 취직해 무역 일을 시작한이래 줄곧 한우물을 팠다. 현재는 중장비 부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고, 주로 중동지역의 바이어들과 거래한다. 특히 1년에 혼자 처리하는 물량이 30만달러 어치를 넘을 정도로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큰손이다.▶ 성공비결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한가지 품목만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역에도 전공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다 하다보면 나중에는 남는 것이 없고, 단골고객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 특히 중장비 부품은국내에서 취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시장성도 아주 좋은 편이다.▶ 거래를 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역시 물건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태를 직접 확인한 다음 바이어에게 보낸다. 그렇지 않고 남의 말만 듣고 대충 보냈다가는 낭패를당할 수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없나.특별히 힘든 것은 없다. 만약 곤란한 일이 많았다면 어떻게 10년동안 이 일을 할수 있겠는가. 보통 접대의 어려움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규모라서 그런지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무역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무역업이라는 것이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거래를 성사시키려면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 따라서 1~2년은 고생한다는 각오를 하고뛰어들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소규모 무역업에 대한 전망은.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밝다고 본다. 국산품 가운데는 외국제품에 비해 손색없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단지 우리가 그런 것들을 제대로발굴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