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떨고 있니.』 몇년전 모방송국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모래시계 designtimesp=8180>의 마지막 장면 대사 한대목이다. 이 대사는 모래시계의 인기를반영하듯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다. 미래 불확실성에 자신을 잃은 샐러리맨들의 심리를 이 대사처럼 상징적으로 대변한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지금 이 대사는 은행원들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화이트칼라 직업의 대표격이었던 은행원들은 「퇴출공포증」으로 벌벌 떨고 있다. 공무원 다음으로 안정된 직업에서「실직 0순위」 직업으로 전락한 셈이다.은행원의 이같은 위상추락은 우리 경제가 IMF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빚어졌다. 물론 IMF라는 「태풍」은 다른 직업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은행원들에게 미친 강도는 다른 직업군에 미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퇴출이 됐든 안 됐든 상관없이 지금 은행원들은 모두 「실직태풍」에 휩싸여 있다. 이미 올해초 명예퇴직형식으로 상당수 은행원들이떠난데 이어 지난달말 5개은행의 퇴출이 단행되면서 수천명의 은행원들이 정리해고됐거나 정리해고될 운명에 놓여 있다.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조만간 조건부 승인을 받은 은행들의 대대적인 정리해고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들 은행들은 퇴출을 피하기 위해서 인원감축 등 자구계획을 강도높게 실천해야 한다. 이 계획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동화은행 등 5개은행과 마찬가지로 퇴출명령을 받고 다른 우량은행에 합병될 수밖에없다. 이 과정에서 은행원들의 정리해고는 살벌하게 진행될 것이분명하다.◆ 안정된 직업 자부심 사라져정리해고태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도은행으로 선정돼 부실은행을 인수합병한 은행들 역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면 인원조정 등 경영자구계획을 강도높게 추진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통해 하반기에 정리해고될 은행원들은 약 2만~3만명에 달할 것으로금융계는 보고 있다. 조건부 승인판정을 받은 모은행 본점영업부에근무하는 한 직원은 『은행권의 정리해고태풍은 연말까지 계속될것』이라며 『은행원이 가장 안정된 직업이라는 자부심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직업으로서 은행원에 대한 매력상실포인트는 또 있다.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누렸던 「특혜」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은행원들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저금리 대출특혜를 받아왔다.주택자금 2천만원을 연리 1%로 쓸수 있을뿐더러 일반자금 2천만원은 우대금리(현재 연리 11.5%)로 대출받을 수 있다. 무주택자의 경우는 혜택이 더 많다. 무주택자는 4천5백만원을 무이자로 대출받을수 있다.그러나 앞으로 이같은 특혜는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IMF 고통분담 및 부실은행의 경영개선을 위해서 저리특혜대출을 차츰 회수하거나 줄여나갈 계획이다. 올해로 입사 21년차인 J은행경기도 안산지점 S과장(42)은 『은행원들은 IMF사태가 터진 뒤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나름대로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남몰래부업을 하고 있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실직은행원들의 재취업이 여의치 않은 점도 은행원이라는 직업을우울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7월이후 올 6월말까지 경총 고급인력정보센터에 재취업신청을 한 금융계 종사자들은 약 5백여명.이들 퇴직자들은 월급이 낮아도 좋으니 일할 자리만 달라며 재취업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으나 재취업자는 30여명에 불과하다.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는 경력자 모집도 영업직이 대부분이고 경리직은찾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화이트 칼라 대표직업으로서의은행원의 영화는 「아, 옛날이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