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제공(IP)과 생활용품 제조 및 판매가 주력인 제이드림 지은택사장(30)은 한때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대한모방에서 입사 3년여만에 정보기획실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회사내에서 촉망을 받았다. 더욱이 영어에 능해 국제통으로서도 능력을인정받고 있었다.하지만 회사의 융숭한 대접도 지사장의 「끼」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웠던 지사장은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기 위해 96년 입사 4년여만에 사표를 내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당연히 주위에서는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너무 성급한 것이아니냐는 충고도 뒤따랐다. 그러나 지사장은 「지금이 적기」라며주위의 만류를 뿌리쳤다.물론 지사장이 독립을 감행한데는 평소 꿈꿔온 사업가로서의 입신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지사장은 정보기획실장으로서 전산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국내에 섬유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너무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여기저기 정보는 많았지만 그 누구도이를 한 군데에 모아놓지 않아 이용자들 입장에서 크게 애를 먹고있었다.예를 들어 섬유업체 관계자가 바이어를 만나러 미국에 출장을 가려면 관련 서류를 담은 서너개의 가방을 들고 나가야 했다. 만약 섬유에 대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으면 컴퓨터디스켓 등에 담아 아주간편하게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 사업을 해봐야겠다는마음을 품고 있던 지사장이 놓칠리 없었다. 결국 지사장은 당시만해도 생소하기 그지 없었던 정보제공업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생활용품 제조·판매도 병행일단 지사장은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개인사업자로 등록했다. 정보제공업 자체가 자본금이 거의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규모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굳이 법인사업자로 등록할 필요가 없었다.사무실은 따로 내지 않고 집의 빈방을 이용했고 자신을 도와줄 직원으로는 잘 아는 후배 한명을 고용했다. 가정생활과 일을 혼동할우려가 있었지만 일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극복했다. 특히지사장은 보통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양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로 꾸민 방에 들어가 식사와 휴식시간 이외에는 나오지않는 방법으로 나태함을 막으려고 노력했다.하지만 처음에는 사업이 신통치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첫번째 아이템으로 「경제아카데미」란 사이트를 개설해 경제정보를 올렸는데 한달 수입이 고작 40만~5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매달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에굴하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계속해서 올린 결과 이용자가 꾸준히늘어났다. 또 평소 준비해놓았던 할인매장정보 등 새로운 아이템도연이어 띄웠다.정보제공업을 시작한지 1년여만에 자리를 잡은 지사장은 지난해 12월 회사형태를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바꾸었다. 정보제공사업을 하는 틈틈이 준비했던 쓰레기통 등 생활용품 제조와 판매사업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는데는 문제가있었다. 다름아닌 자금이었다. 특히 제조업인만큼 억대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판단됐다.고민 끝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자금문제를 풀었다. 생산공장은 안산공단의 한 곳을 임대형식으로 빌렸고, 기술적인 문제는 미국의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매직켄(Magiken)사가 로열티로 수익금의 일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흔쾌히 응해줘해결했다. 평소 익혀둔 영어실력이 큰 밑천이 됐음은 물론이다. 우여곡절 끝에 제조업에도 뛰어든 지사장은 지난 7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30만달러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지사장의 사업은 이제 안정궤도에 들어선 느낌이다. 정보제공 사업으로 월평균 7백만~8백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고, 생활용품 제조업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6백80만달러 어치를수출한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지사장은 이게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보제공업은 적어도 6개월은 준비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1년 정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또하나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기분좋게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일을 하다보면 직간접적으로 회사와 연결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02)679-9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