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은 지금 총체적 위기국면에 처해 있다. 세계 자동차 생산 5위 위업달성을 가능하게 했던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어있고 수출전선 또한 먹구름이 가득하다.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초래의 주범이라 할수 있는 기아사태는 좀처럼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다. 1차 입찰이 유찰된데이어 9월말 실시되는 2차입찰에서도 낙찰자가 결정될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서 부품업체들은 『악』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J교수는『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3년이 못가 제2의 기아사태가 나지 말라는보장이 없다』고 우려한다.한국 자동차산업을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내수시장이 거의 빙하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 자동차업체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내수비중이 50% 정도 돼야 힘을 발휘할 수있다. 경영수지도 맞출 수 있고 여기서 비축된 힘을 바탕으로 수출에도 나설 수 있다는 말이다.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내수시장은 IMF사태가 터지면서지난해에 비해 50% 이상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내수판매는 97년 같은 기간에 비해 51.7%나 감소했고 올 연말에는어느 정도까지 감소할지 예측을 불허한다.이로인해 국내 자동차업체의 가동률은 40%대에 머물고 있다.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한 가동률은 최소한 70%선. 국내업체의 가동률이50% 이하에서 머물고 있으니 차업체들의 경영상황은 물어보나 마나다.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내수시장에는 외국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일본 도요타는 이미 미국 현지법인에서 조립한 캄리를 들여와 탐색전에 들어갔고 수입다변화가 해제되는 99년 하반기에는 일본에서 생산한 차를 도입, 국내시장 본격공략에 나설 태세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업체들의 중대형차 판매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게분명하다. 국내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할지 모르지만 이 논리가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내수시장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해야 하나 이 또한 여의치 못한 실정이다. 올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줄었고수출물량 또한 「돈벌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차 및 소형차가 주류를 이루었다.지금까지 힘들여 개척해온 수출주력시장의 경제적 위기도 국내 자동차업계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데이어 동유럽은 그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러시아 및 동유럽은 국내자동차업체가 유럽시장진출의 교두보로 삼아 그동안 공들여온 지역이다. 내수시장과 함께 수출시장 또한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이 와중에서 세계 자동차 톱메이커들은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을단행하고 나서 국내 업체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지난 5월 독일 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사가 합병을 단행했고 폴크스바겐은 영국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다.또 일본 도요타와 소형차 공동생산 및 판매제휴를 하고 있는 미국GM은 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추진중이다.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패권을 잡기 위한 새판짜기가 시작된 셈이다. 이런 움직임이 보다가속화될 경우 국내업체들은 어느 시점에서 「중대결정」을 해야한다. 선택할 카드는 많지 않다. 세계 메이저업체와 전략적 제휴에 나서 생존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세계 메이저들의 아시아 생산기지로전락하느냐 둘중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전문가들은 비록 국내자동차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부정적일색이지만 결코 절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재도약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재도약을 위해서는 우선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획기적인경영마인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남대 경영학과 H교수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논리를 내세워 그동안 양적팽창에 혈안이 돼 왔다』며 공급과잉시대에 또다시 덩치키우기에나선다면 그것은 부실회사가 부실요인을 더욱 늘리는 것이외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대신 국내업체들은 품질개선 및 생산성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수출에서도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사실 국내 업체들은 가격에만 신경을 써왔지 품질면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런 경영전략은 내수시장이 활황을 구가할 때는 통했으나 소비심리가 위축된IMF상황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대립적 노사관계의 청산도 시급하다. 현대자동차가 올들어 가동률이 떨어져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단행한 정리해고가 우여곡절 끝에타결됐다가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정부는 자동차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고용파급효과를 살려 지원책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지금의 위기를 반성의 기회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