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월드컵대회 우승, '한국기술' 세계에 과시...로봇응용제품 개발 나서

한국축구가 프랑스 월드컵대회에서 멕시코에 이어 네덜란드에 참담한 패배를 당해 16강진출이 좌절된 지난 6월28일 김포국제공항 출국장.20대 후반의 한 젊은이가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실었다. 월드컵대회 기간중에열리는 「98 로봇월드컵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였다.그의 출국은 단출했다. 출국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 의한 요란한 환송행사는 없었다. 휴대품이래야 현지에서 갈아입을 몇벌의옷과 그가 애지중지하는 로봇이 담긴 가방이 전부였다. 출국장을 빠져 나가는 얼굴에는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인간들이 하는 월드컵대회에서는한국이 참패를 당했지만 로봇월드컵대회에서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이 젊은이는 다름아닌 로봇기술개발 벤처기업인 휴먼인터페이스 김병수 사장(29)이었다. 전세계 9개국 18개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 김씨는자신이 만든 「더 키즈(TheKeys)」로봇으로 출전, 한국로봇축구의 실력을 전세계에과시했다.◆ 앰프 조립하다 폭발사고 내기도가볍게 예선전을 통과한 뒤결승전에 진출한 「더 키즈」는 3개 로봇이 한팀을 이뤄경기를 벌이는 마이로소트부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공대「구아라나」를 일방적으로몰아붙인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스코어는 무려 26대 0이었다. 인간축구는 브라질만만나면 『음메, 기죽어』인데로봇축구는 보란 듯이 브라질을 물리친 것이다.김씨가 이번 세계로봇축구대회(FIRA)에서 우승을 한「더 키즈」는 사방 7.5㎝의정육면체 로봇. 이 작은 공간에 자동제어시스템과 영상인식장치, 컨트롤러 등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 잘 작동되도록 하느냐가 핵심기술이다.김씨는 초당 20~30번씩 정보처리가 가능한 독특한 영상처리시스템을 「더 키즈」에 채택했다. 이런 탓에 「더 키즈」는 출전한 다른 어느 로봇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골결정력도 탁월, 우승의 영예를안았다. 『로봇월드컵 우승은목표가 아닙니다. 아이들과대화도 하는 지능형 로봇장난감을 만들어 세계적인 벤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타깃으로 하고 있는 회사는일본 소니사이다. 소니사는최근 강아지로봇을 선보이는등 지능형 로봇장난감시장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이런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김사장이 로봇에 관심을갖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재학 때인 80년대초. 못쓰는 라디오를 고쳐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등 만드는 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본업인 학업은 제쳐두고 만들기에 매달렸다.당시 처지로 로봇제작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단지 이물건저물건 닥치는대로 분해조립하는 수준이었지만 마냥 즐거웠다.중·고교 시절 일어났던 2건의 사고는 그가 얼마나 만드는데 푹 빠져 있었는지를 잘보여준다. 틈나는대로 종로4가 세운상가를 자주 찾았던그는 중학교 2학년 때인 어느날 욕심나는 부품 하나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졌다. 이 부품을 사려면 차비를 다 털어야 했다. 같은 또래 다른 친구들이라면 그냥 발길을 돌렸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비까지 털어 이 부품을 샀다. 결국 세운상가에서대림동 집까지 걸어갔다.언뜻 발명왕 에디슨을 연상시키는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않았다. 급기야 「차비사건」보다 더한 사고를 내고 말았다. 식구들이 곤히 잠든 시간에 앰프를 몰래 조립하다 전해콘덴서를 잘못 연결, 폭발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전기차단기가 자동으로내려가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다.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만들기 취미」는 계속됐다. 공부방에는 영어 수학참고서 대신 전자회로와 관련된 책들과전자부품들이 가득했다. 이런 탓에 그는 쓰라린 좌절을맛보았다. 로봇제작 꿈을 안고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응시했으나 보기좋게 낙방한 것이다. 보다못한 부모들은 결국그의 재산목록인 애플컴퓨터와 전기인두, 각종 전자부품들을 압수해버렸다.마음을 추스르고 재수에 들어갔다. 「똑딱거리며 만드는작업」을 잠시 접어두었음은물론이다. 이런 노력 끝에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재도전,89년 드디어 입학했다.로봇만들기는 이때부터 본궤도에 올라 순항했다. 로봇과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기공학과에 입학한데다 부모들 또한더 이상 그의 「만들기 취미」를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땐 실험실서 먹고 자고『강의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전기공학과 학생들이 주축이된 동아리에서 더 열심히 활동했습니다.』우연한 기회에 서울대에서 열린 마이크로 마우스대회에 구경갔다 로봇제작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 마우스는 로봇만들기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자동제어장치, 인공지능시스템 등을 어떻게 유기적으로잘 결합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목표를 정한 그는 미친 듯이마이크로 마우스만들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마우스만들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개별 유닛으로는 잘 작동이 되다가 결합을 하면 움직이지않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말썽을 일으켰다. 그는 방학때는 아예 학교 실험실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PC통신하이텔 로봇동호회인 「디지털동호회」에 들어가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다.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문제점을 찾아냈다. 전력상의 결함이었다. 예를 들어 개별 유닛별로는 총 1백볼트의 전력이 필요해도 이를 결합해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총 1백20볼트가 소요되는데 1백볼트수준에 맞춰 조립했던 것이다.문제점을 찾아낸 그는 91년대학 3학년 때 꿈에 그리던마이크로 마우스를 제작하고「씽씽 1호」로 명명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재학시 서울대에서 개최하는 마이크로 마우스의 미로찾기 대회에 출전했으나 우승은 하지 못했다.그 소원을 졸업한 뒤 기아정보시스템에 입사해 풀었다.직장에 근무하면서 틈나는대로 마이크로 마우스 제작에몰두했던 그는 직각 움직임은물론 대각선으로도 움직일 수있는 다양한 마이크로 마우스를 만들었다. 국내 대회 우승독식은 물론 일본에서 열린세계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더 이상 마이크로 마우스부문에서는 적수가 없었다.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자가슴 한켠에서는 허탈감이 들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던지고 후배 1명과 함께 벤처기업인 휴먼인터페이스를 설립했다.이때가 96년7월. 동시에 더큰 목표를 세웠다. 마이크로마우스보다 차원을 달리하는로봇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로봇은 마이크로마우스보다 시스템이 더 크고화상인식, 통신시스템을 더강화해야 하는 등 로봇과 관련된 고단위 기술의 집약체이다.대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보안시스템을 만들어주며 모두 2천5백여만원의 제작경비를 충당, 「더 키즈」 로봇제작에 성공했다. 그런 뒤 당당히 프랑스 로봇월드컵대회에출전, 우승했다.『21세기는 로봇기술이 지배하게 될 겁니다. 지금은 보잘것 없지만 세계최고 로봇을만드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할겁니다. 지켜 보십시오.』 그의 당찬 각오에서 20후반이라는 나이는 거의 읽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