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동시 공황은 끝내 닥칠 것인가. 지난달 31일 뉴욕 증시가 「3차 블랙 먼데이」의 충격에 강타당한 뒤 이같은 의문이 증폭되고있다. 아시아와 중남미, 러시아에 이어 유럽마저 불황의 그림자가드리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찾아 온 미국 증시의 대폭락은 이런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막다른 골목으로까지 몰린 세계 경제가 기댈 곳은 미국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외환 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아시아 등지의 각국이 돌파구로 삼고 있는 「수출」을 제대로 소화해 줄 곳은 미국 시장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 경제 최후의 피난처(last resort)」로 불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그런 미국이주가 불안으로 경기의 내리막길에 들어설 경우 세계 경제는 꼼짝없이 동시 공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소비 경제」로 특징지어지는 미국의 「소비 돈줄」의 상당수가 증시 호황에 기대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가 불안에 대한 우려는 높아질수 밖에 없다.월가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직접, 또는 뮤추얼 펀드 등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가계자금의 30% 가까이를 주식 투자로 운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나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소비 경기가 주식시장의 시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을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의 주가가 평균 1달러 떨어질 때마다 미국인들의 소비가 4센트씩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1달러 주가가 하락할 때 마다 소비가 4센트씩 준다」는 공식을원용할 경우 미국의 소비는 앞으로 최소한 4백억달러 감퇴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비관론」에 대해 대부분의 미국 전문가들은 「기우(杞憂)」라며 일축하고 있다. 우선 「4백억달러 소비 감소」는 지나친 억측이라는 주장이다. 하버드 대학의 벤저민프리드먼 교수가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7월 중순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9천3백대까지 치솟았을 때를 기준으로 「4백억달러」를 계산하지만 미국의 대부분 투자자들은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장부상의 소득」을 곧이 곧대로 호주머니돈으로 계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87년 10월 미국이 「1차 블랙 먼데이」에 강타당했을 때도 미국의 소비 경기는 그다지 급격한 감소를 보이지 않았었다.뿐만 아니다. 과거 역사를 봐도 주식시장의 불안이 실물 경기의 불황으로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었다는 지적이다. 금세기 들어 미국에 닥쳤던 다섯 차례의 불황 가운데 주가 불안이 직접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1903년의 경우 딱 한번 뿐이었다고 한다. 30년대의 대공황 역시 주가 폭락이 직접 원인은 아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설명이다.그렇다고 모든 전문가들이 이런 「낙관론」에 대해 동의하고 있지는 않다. 아시아와 러시아의 외환 위기 등 최근의 국제 경제 상황은 미국에도 언제 「전염」될 지 모르는 바이러스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비관론’과 ‘낙관론’ 대립최근 미국의 주식시장이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증거라는 설명이다. 유럽 등 외국 전문가들이 미국에 「선제적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따라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충고라고 이들은 지적한다.사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달러 표시 외채를 지고 있는 아시아 등지의 많은 나라들에 대한 외채 부담을 그만큼 덜어주는 효과를 낸다.또 미 달러화에 자국 통화 가치를 연동시키고 있는 홍콩 칠레 등많은 나라들에도 연쇄적인 금리 인하 조치를 유도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그러나 정작 칼자루를 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등 미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아직 금리 인하를 단행할 만한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은 미국 경기 자체가금리 인하를 필요로 할만큼 위축될 징후가 없는 데다, 연방 법규상으로도 금융정책 등은 어디까지나 미국 국내 요인에 의해서만 변동되게끔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뉴욕 증시가 「6년 호황」의 장기 레이스 끝에 「거품 제거」라는호된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불거지고 있는 「세계 동시 공황」논란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미국이 과연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할 것인지는 당분간 전문가들 사이에 계속 논쟁 거리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