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각국의 국내금융시장 통제와 고정환율제로의 복귀가 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지난 2일 고정환율제로 복귀한데이어 홍콩은 금융선물거래 규제에 나섰고 대만도 헤지펀드의영업을 금지시켰다. 러시아는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의미하는 통화위원회(커런시보드)제도를 도입키로 했다.이같은 금융통제정책이 각국의 외환위기 극복에 「보약」이 될지「독약」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일시적 비상조치로서 나름대로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같다. 현재의 세계적인 외환위기가국제적인 헤지펀드 등 환투기 세력의 극성 때문에 빚어졌다는 판단에서 경제를 투기세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고정환율제도는 정부가 그 나라의 통화가치를 기축통화, 즉 달러화에 대해 일정비율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말레이시아는 종래시장가격을 반영해 변동시켜오던 환율을 달러당 3.80링키트로 고정시켜 버렸다.고정환율과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고정환율제도는 환율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우선 정부가 환율을 변경고시하기 전에는 안정을 유지할 수있다.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은 기업들이 환율걱정을 하지 않고 무역 및 외환거래를 안정적으로 할수 있다. 또 환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환투기의 여지도 없어진다. 특히요즈음과 같이 세계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선택폭이넓어진다. 예컨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금리하락이 필수적이지만환율이 불안해 외자이탈이 일어날 경우 금리인하는 어려워진다. 그러나 환율이 고정되고 외환통제가 실시되면 외환이동의 여지가 좁아져 저금리정책 등 경기회복책의 추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반면 단점도 적지 않다. 고정환율제가 실시되면 수출상품의 경쟁력약화 등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나타나더라도 자동적으로 해결하기가쉽지 않다. 변동환율제하에서는 국제수지 적자가 늘어나면 환율이올라가(평가절하) 자동적으로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주고,수입은 줄어드는 자동복원력을 갖게 되는데 고정환율제하에서는 그런 자동조절 기능이 없어진다. 물론 정부가 고시가격을 변경시키면시정이 가능하겠지만 자주 변경시키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조정하더라도 일시에 대폭적인 조정이 불가피해 경제전반에 큰 충격을가져올 우려가 있다.이같은 외환통제 및 고정환율 복귀에 대해 국제금융계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찬성론이 있는가 하면 시장기능을 왜곡시켜 국가신뢰도 저하는 물론 외국인투자를 내쫓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해악을 끼칠것이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옹호론을 펴는 학자는 미국의 폴크루그만 MIT대 교수가 선봉에 서있고, 반대의견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만 교수가 앞장서고 있다. IMF는 물론 강한 비판론을 펴고 있다.환율제도는 세계경제의 자본주의화와 개방에 맞춰 대체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해온 것이 역사적인 추세였다. 그러나변동환율제도도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는 드물고 정부의 정책의지를 반영해 일정범위 이내에서 변동을 허용하거나 복수의 통화에 연결시켜 변동시키는 등 다양한 형태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우리나라는 고정환율제→단일변동환율제→복수통화 바스켓→시장평균환율제를 거쳐 지난해 12월 IMF체제에 접어든 이후 환율변동폭을 무제한 허용하는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된바 있다. IMF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음은 분명하다.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IMF의 자금지원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말레이시아의 정책이 성과를 거둘 것인지, 아니면 한국과 태국같이IMF방식의 처방에 충실한 정책대응이 승리를 거둘 것인지는 역사에 맡기는 길밖에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