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역 위기가 전체 매출 영향....적극적으로 기업인수 하기도

70년대 불어닥친 유류파동 이후 큰 기업들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는 시나리오플래너란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이유행한 적이 있다. 유류파동같은 위기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대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다국적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이런 식의 거시적 흐름을 예측하는 일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80년대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제 이들이 다시 출현할 조짐이 보인다.지난 해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가장 나쁜 시나리오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 목격했다. 아시아지역 매출이 급감하고 러시아 경제가 붕괴됐고 물가가 폭락하는가 하면 주가마저 곤두박질쳤다.세계의 경제사정도 뒤죽박죽이 된듯했다. 태국의 공장들은 계속 문을 닫는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많은 계약이 성사됐다. 서유럽은 계속 성장했고 미국경제도 호황을 누렸다. 이런 가운데서도 불황의조짐이 계속 나타났다. 대부분의 다국적 우량기업들은 자신들의 배가 몇달전 무엇인가와 충돌했지만 타이타닉호처럼 선상밴드가 흥겨운 연주를 계속하고 있는 격이다.이제 서서히 이들의 불안이 시작되고 있다. 필립스의 주식은 회사가 올해 이익이 기대이하일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1/6로 하락했다.알카텔의 주가는 회사가 아시아와 러시아에서의 전신장비 주문량에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난 뒤 하루동안 38%나 떨어졌다. 피아트는브라질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익감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로열더치셸은 런던공장과 함께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국가별본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질레트 주가는 새로 개발된 세날 면도기판매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지난 몇개월 동안 40%나떨어졌다. 나이키는 로고의 크기를 줄였다. 다국적이라는 이점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성가를 떨치던 많은 우량상표들이 지금은 오히려그들의 글로벌한 특성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고 있는 형편이다.사실 이런 해석이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2/4분기 기업이익이 1.5% 감소한 것은 아시아 지역의 침체때문이었다는 분석이있다. 그러나 S&P선정 5백대 기업에 든 더 큰 회사들은 여전히 평균 1.5%의 이익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큰 다국적 회사들은 해외매출이 증가일로에 있다. 이번 회계연도에 도요타는 94년의 43%에 비해 매출의 57%를 해외에서 올렸다. 제너럴일렉트릭의주가는 35%에서 42%로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의 새로운 시장은 다국적기업 이익의 15% 이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이 예상이익 규모를 축소조정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지역중 러시아가 가장 힘든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최대의 외국투자자중 하나인 스위스와 스웨덴 연합기업 ABB는최근 가즈프롬에 터빈 두대를 공급하는 1억달러짜리를 계약, 수주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ABB의 고란 린달 사장은 경제위기가 끝날 때까지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축소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중남미와 아시아는 보다 복잡한 상황이다. 지난 5년간 브라질에20억달러를 투자한 미국 에너지회사 인론(Enron)은 지금 투자를 중지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인론은 상파울루 전기공급자 민영화를위한 입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제너럴모터즈가 구상중인 태국의자동차 조립공장사업은 당초 연산 10만대 규모에서 4만대 규모로라인이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에서의 생산계획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이런 현상들은 자본재배치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국이나 브라질처럼 큰 시장을 무시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은 드물겠지만 이보다작은 몇몇 아시아 나라들은 찬밥신세가 될 것이다. 투자은행들은이미 한국을 비롯,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인력을 빼내기시작했다. 공장들은 증권브로커들처럼 빨리 빠져나갈 수 없지만 다국적 기업의 다음 축소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기업활동 벽에 부딪치는 일 많아져다국적 기업들은 세계적 생산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통이 더이상 한 지역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토롤라가 아시아 경기침체때문에 미국 버지니아주 공장에서 30억달러짜리 사업을 중지하게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예다.전반적 불황속에서도 「뜨는」 사업은 있게 마련. 석유산업을 제외하면 상품가격이 붕괴했다고 울상을 짓는 대기업은 별로 없다. 일부 다국적 기업은 전보다 가난해져 선택에 더 민감해진 신흥 시장의 고객들이 자신들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유통체인 까르푸는 자신들이 중남미에서 가장 값싼 슈퍼마켓이라고주장한다. 까르푸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까르푸도 다니엘 버나드 사장의 예상처럼 위기가 계속 닥치고 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까르푸는 태국에 8개의 점포를 열 계획도 연기해야만 했다.몇몇 다국적 기업은 브라질의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적극적이다.아시아에서는 제너럴일렉트릭의 GE캐피털같은 다국적기업이 손쉬운 「먹이」들을 맹렬히 덮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아자동차를인수하려다 포기한 포드의 경우에서 보듯 다른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현지 기업인수를 저지당하고 있다. 기업과 정치권에서 팔 준비를 다 해놓고 있을 경우에도 투명성에서 문제가 많다고 다국적기업들은 불평한다. 인수 대상기업이 인수후보자들에게 좀처럼 장부를열지 않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이와 관련된 논쟁은 다국적기업이 정확히 뭘해야 되느냐로 시작된다. 회사가 현지 시장이나 인수대상 기업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을 때에는 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네슬레는 한국과 필리핀에서 현지합작사를 아예 인수했다. 중국에서는시장을 이미 다 파악한 일부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공장을 세우는데정치적 로비를 동원하기 위해 현지 기업과 손을 잡지만 경영능력이보잘것 없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현지 합작사를 떼버리는 일이보편적 모습이 될 것이다.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사이프러스 프리드하임은 새책 <1조달러의 사업>에서 각 다국적 회사들은 점차 벽에 부닥치는 일이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적대적 자세, 소비자기호의 변화, 기술부족, 프로젝트에 대한 과도한 비용 등이 그것이다. 그는 제휴야말로 다국적 기업이 가야할 안전한 길일 뿐 아니라 전지구를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9월말 대형항공사들이 제휴해 거대한 한개의 제휴체를 만든다는 발표가 있었다.합작도 또다른 돌파구가 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이겉으로 드러난만큼 자신이 글로벌화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냐에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맥길대학의 헨리 민츠버그는 러시아 혁명때문에 큰 타격을 입은 1백년전의 싱거 미싱회사같은 다국적기업이지금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민츠버그가 가장 글로벌화한 기업으로 손꼽은 셸조차도 국제적십자사보다 적은 수의 국제위원회를 갖고 있다. 모든 다국적기업들이 아직까지도 국내시장 밖에서 나온아이디어를 채택하는 것을 꺼린다. 그런 가운데 지구상에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맥도널드가 이제 막 단순한 글로벌화를 뛰어넘는햄버거체인이 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결국 시나리오플래너들이 비록 그 형태는 달라질지라도 다국적 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활동을 예측하기 위해 돌아올것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Blue-chip blues」 Sep. 26,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