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성장하면 전문 경영인 체제 전환 필요

최근 컴퓨터부품생산업체인 두인전자와 가산전자가 부도나고 컴퓨터조판시스템과 서체개발업체인 서울시스템이 쓰러지자 한국 벤처기업들이 몰락의 길을 걷는 것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다. 주요 일간지들은 벤처기업과 정보통신산업의 기반이 무너질것처럼 걱정하고 있다. 「벤처가 쓰러진다」,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겉돈다」며 제대로 된 벤처기업 육성정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생리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벤처기업의 탄생과 성장에 관해 흔히 3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우선 벤처기업의 부도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벤처기업은 처음부터 실패할 각오를 하고 출발한 기업이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 야후 등 화려한 성공신화의 뒤에는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스러져간 수많은 벤처기업이 있다. 나스닥등록 성공확률이 어느정도 되는지 통계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실패한벤처기업은 무수히 많다. 그만큼 벤처기업의 위험부담은 상당히 높다. 따라서 벤처기업의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다음으로 벤처기업의 힘은 법인에서 찾는 오류다. 벤처기업의 힘은설비투자나 부동산 등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기술력과 노하우를 지닌 「사람」에 있다. 법인은 사라지지만 기술과 노하우를 지닌 핵심인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실패라는 경험을 노하우로 축적한 상태다. 이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경험으로새로운 시장을 찾게 되면 과거보다 더 경쟁력있는 새로운 벤처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벤처기업가의 실패경력이많으면 많을수록 투자를 유치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한다.마지막으로 기업도산의 원인으로 금융경색 등 기업환경으로 돌리는오류다. 물론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경색으로 기업경영이 어려워진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이 부도에 이르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내부에 있다는 것이다.이는 두인전자와 가산전자의 해외시장 개척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두회사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PC시장 부진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시장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시장 진출을선택했다. 두인전자는 E4, 가산전자는 재즈멀티미디어라는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미국시장에 진출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컴퓨터시장의 벽은 너무 높았다. 미국의 벤처캐피털인 소프트뱅크홀딩스에서활동하다 최근 귀국한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두 회사의 영업실패사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두 회사는 처음부터 컴팩컴퓨터 델컴퓨터 게이트웨이 등 미국내주요 1급업체들을 상대로 영업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매담당자를만나지도 못했다. 담당자와 면담을 요청해도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어렵게 선이 닿아도 샘플을 넣어보라는 대답이 전부였다.샘플을 넣고 기다렸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뒤늦게 영업대상을2급업체로 바꿨지만 이미 자본이 잠식된 상태였다.』그렇다면 국내시장축소 → 해외진출 → 시장개척실패 → 자금경색악화 → 부도로 이어지는 실패과정을 막을수는 없었는가. 이와 관련 지난 4월 국내언론에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화려하게 등장한 유리시스템의 김종훈사장 사례는 국내 벤처기업가에 시사하는 바가크다. 김사장은 급성장하는 자신의 회사 유리시스템을 대기업 인루슨트테크놀러지에 10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김사장은 이달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을 할 때 기반을 잡는 것 못지 않게 적당한 때 제값받고 파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에서는창업자가 직접 그 회사를 소유하고 경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보통이지만 그것은 벤처의 정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벤처기업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벤처기업의 창업 및 성장관련 컨설팅업체인 인터벤처의 유효상 사장은 『국내 벤처기업가들 중에는 지나치게 사장 자리에만 연연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회사규모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날 정도로 성장했으면 본인은 대표자리에서 과감하게 물러나야 기업도살고 기업가도 살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두인전자와 가산전자도 한창 잘나갈 때, 그래서 기업가치를 후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때 유리시스템처럼 대기업에 매각하고 창업자는 전문경영인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었다.일정시점의 기업매각은 벤처기업의 출구전략(Exit Strategy,용어설명 참고)으로 대단히 유용하다. 매각이 기업공개보다 출구전략으로바람직한 이유는 많다. 우선 매각쪽이 공개보다 기업평가에 후하다. 주식시장의 기업평가는 「현실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게 돼있다. 장래성이나 성장성이 주가에 반영되기도 하지만 현재의 안정성이나 수익성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어도 주가가 고평가되긴 힘들다. 실제로 나스닥에 등록된 기업들 중엔 주가가 50센트도 안되는 것도 허다하다.반면 기업매각에선 안정성보다는 장래성과 잠재력에 비중을 둔다.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사들일 때는 투자수익 이상의 특별한 이유가있기 마련이다. 해당 벤처기업을 매입하는게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것보다 더 저렴하다거나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것 등이다. 그만큼 벤처기업의 가치를 후하게 쳐줄 수밖에 없다.또한 기업매각은 벤처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전기가 된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경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벤처창업가는 경영의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기업규모가 작을때야 그럭저럭 회사를꾸려나갈 수 있겠지만 인원이 1백명을 넘어서고 매출규모도 5백억원을 넘게 되면 모든게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의 체계적인 경영이필요한 것이다.◆ 기업매각이 공개보다 유리투자자금 조달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생산라인을 신설할 때 벤처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투자자금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의 자금일 수 있다. 김종훈사장이 루슨트에 급성장하는 알짜배기 회사인 유리시스템을 넘긴 이유도 이와 똑같다. 세계적인 통신회사로 크기에는 유리시스템의 규모가 너무 작아 보다 큰 루슨트테크놀로지로 옮겼다는 것이다.김종훈사장과 유사한 사례가 국내에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96년 회사를 설립한지 1년만에 코스닥시장에 등록해 화제를 모았던웹인터내셔널의 윤석민 사장이 대표적이다. 웹인터내셔널은 단기간에 기업을 공개하는데 성공했지만 지속적인 투자자금을 조달하기어려웠다. 결국 사장자리를 포기하고 전문경영능력과 자금력을 갖춘 새주인을 찾았다. 전문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자금력도 있는이영기사장에게 지분 48%중 27.3%를 넘기고 자신은 부사장자리로내려앉았다. 윤부사장은 전산과를 나온 전공을 살려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경영은 이영기사장이 책임진다. 회사이름도 한국디지털라인으로 바꿨다. 인원도 30명이나 더 충원했다. 김종훈사장 사례와 윤석민사장 사례는 인수주체나 인수규모면에서 유리시스템과 비교할수 없지만 출구전략의 기본형태는 상당히 유사하다.이동전화 단말기 제조 벤처기업 어필텔레콤의 이가형사장도 미국모토로라에 기업을 매각했다. 주당 매각금액은 액면가 5백원의20배인 1만원으로 지분 51%를 4천5백만달러에 넘겼다. 어필텔레콤의 경영은 현 경영진이 그대로 맡고 있다.생명공학분야의 C사도 출구전략으로 기업공개보다는 기업매각을 선택했다. 현재 외국계 생명공학분야 대기업과 인수조건과 가치평가를 두고 협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