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봉제업을 하는 교포 사업가 K씨는 그동안 거래해 온 한국계 S은행과의 관계를 얼마 전 끊었다. S은행으로부터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35만5천달러 한도의 사업 자금을 빌려 써온 그에게 현지 은행으로부터 월등하게 좋은 거래 조건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뉴저지에 본사를 둔 서밋 뱅크가 그에게 담보 등 일체의조건이 없이 3백만달러까지 대출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기 때문이다.K씨는 서밋 뱅크로부터 이같은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긴가 민가」했다고 한다. S은행으로부터는 부동산 담보 외에 다른 사업을 하는 친형의 보증까지 동원하고서야 간신히 30만달러 남짓을끌어 쓸수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서밋 뱅크가 담보 보증 등의 요구없이 그에게 「거금」 3백만달러를 선뜻 대출해주기로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의 최근 사업 및 금융거래 실적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그만한 돈은떼이지 않고 빌려줄 수 있다」는 「과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K씨의 경험은 특별한 게아니다. 대부분 교포 사업가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뿌리를 내리고있다. 「신용」을 제일의 원칙으로 삼는 미국에서 「금융 초보자」가 돈을 빌려 쓰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때문에 처음에는 갖가지 담보와 보증인을 끌어 모아 한국계 은행에 손을 벌린다. 이렇게 한 몇년만 지내면 「신용 실적(credithistory)」이 쌓인다. 일단 일정한 기준의 신용 실적이 쌓이고나면 미국계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진다.그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미국에는 TRW 트랜스유니언 에퀴팩스등 개인과 기업의 신용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이 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개인 및 기업들의 금융 거래 실적을 추적, 「신용 점수」를 산출해 미국내 금융기관들에 이를 판매한다. 은행들은 이 점수에 의거해 「담보나 보증없이 가능한 대출 한도액」을 수시로 평가, 해당 개인이나 기업들에 경쟁적으로 「대출 세일」에 나선다. K씨의 경우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서밋 뱅크로부터대출을 먼저 제의받았던 것이다.◆ 궤도에 오르면 기회 무궁미국 은행들은 철저한 사전 확인을 거쳐 신용 대출에 나서는만큼담보나 보증에 의존해 자금을 빌려주는 한국의 금융기관들보다대출 사고가 훨씬 적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의 이은모 조사역은『미국 금융기관들의 부실 여신 비율은 평균 3% 미만으로 한국의7~8%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말한다.미국 금융기관들이 신용 대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면서도부실여신이 적은 것은 신용 위반자에 대해서는 재기가 불가능할정도로 철저한 「징벌」을 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은행 돈을 떼어먹은 사람이나 기업은 금융기관들 사이에 회람되는 「블랙 리스트」에 평생 오르게 된다.그러나 미국 은행들도 「신용 대출」 관행을 정착시키기까지는뼈아픈 경험을 한 과거가 있다.80년대 초반 저축대부조합(S&L)으로 불리는 중소 금융기관들이부동산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 경쟁에 나선 끝에 엄청난 규모의자금을 떼인 적이 있는 것. 미 금융기관들은 이런 「비싼 수업료」를 물고 난 뒤 「담보나 보증보다 더 확실한 것이 신용」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월가에서 금융 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민대기 변호사는 『미국에서 보증 대출은 기존 기업이 신규 자회사를 세워 자금을 조달할때 모기업에 요구하는 등의 극소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멀쩡한 대기업들이 계열사간 상호지급 보증을 서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그렇더라도 미국 은행들은 돈을빌려주지도 않는다』는게 그의 설명이다.『시작은 어렵지만 일단 궤도에 올라서면 얼마든 자력 갱생이 가능한 곳』. 이것이 「신용 사회의 본고장」 미국의 한 단면이다.영국-독일/등급별로 결정 저평가 기업 담보 요구영국과 독일에서도 신용대출이 지배적인 형태다. 영국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여신을 제공할 때 철저히 신용점수에 따르고 있다. 기업여신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근거해서 대출금리가결정된다. 다만 여신규모가 크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업체에 대해서는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개인대출도 마찬가지다. 급여 소속회사 재산상태 거래실적 등을 반영한 신용등급에 따라 여신이제공된다. 주택구입대출은 구입대상주택을 담보로 제공한다. 독일금융기관은 부동산을 담보로 기업여신을 제공한다. 담보가없거나 여신보다 적을 경우 여신신청기업은 신용보증전담은행에신용보증을 요청한다.그러면 신용보증전담은행이 각종서류를 검토한후 보증여부를 결정한다. 이같은 여신결정 메커니즘에서 기업임원이 개인적으로보증을 서는 경우는 없다.◆ 일본/신용보험제도 발달, 중기특별보증제 실시일본 신용보증제도는 대체적으로 한국과 비슷하나 두가지의 다른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신용보증업무를 담당하는 신용보증협회가 지방자치제별로 독립돼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용보험제도」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보증협회와신용보험제도를 합해서 「신용보완제도」라고 부른다.우선 신용보증협회는 1953년에 제정된 「신용보증협회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기능은 한국의 신용보증기금과 거의 비슷하다. 즉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 및개인이 은행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 「보증인」이 돼서 융자를 쉽게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공적기관이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일본의 지방행정단위로 한국의 도에 해당하는 조직)과 오사카등 5개시 등 52개 신용보증협회가 있어 신용보증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전국조직으로 전국신용보증협회연합회가 있으나 직접적인 신용보증업무를 담당하지는 않고 있다.신용보증협회에 대한 자금출연은 지방자치단체와 금융기관이 하고 있다. 도쿄도(東京都) 신용보증협회의 경우 현재까지 누적출연금은 2천1백만달러(약25억엔)규모다. 이중 도쿄도 정부 출연금은 1백70만달러에 불과하고 은행등 금융기관 출연금이 나머지를차지하고 있다. 보증실적은 지자체별로 독립돼 시행되기 때문에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으나 일본 전체로 2백10만기업이30조엔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일본 신용보증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신용보험제도다. 신용보험은신용보증협회가 보증채무를 대신 물어주는(대위변제)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신용보증협회는 중소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보증료의 일부를 보험료로 내면 대위변제액의70∼80%를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대위변제액을 모두 정부재정에서 떠안고 있어 보증에 한계가있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신용보완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중소기업신용보험법」에 정해져 있다. 올6월에 개정된 법에 따르면 △제조업은 자본금1억엔이하(종업원 3백명 이하)이며 △도매업은 자본금 7천만엔이하(종업원 1백명 이하) △소매·서비스업은 자본금5천만엔이하(종업원 50명이하)등이다. 보증한도는 1인당 담보2억엔, 무담보 3천5백만엔을 합쳐 2억3천5백만엔이다.문제는 담보금액이 3천5백만엔을 초과하고 보증기간이 10년을 넘을 경우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담보물건은 원칙적으로 부동산(토지와 건물)만 가능하며 담보제공시 근저당권 설정에필요한 수수료(근저당권설정금액의 0.1∼0.4%)를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담보가 부족해 신용보증을 이용하려는 중소기업에 대해담보를 요구하는 문제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는 셈이다.일본정부(통산성과 중소기업청)는 이같은 신용보증제도 외에도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원활히 하기 위해 올10월1일부터 「중소기업금융안정화특별보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내용은 기존의 신용보증외에 추가로 2억엔(담보제공, 무담보일 경우엔 5천만엔, 무담보무보증일 경우엔 1천만엔)까지 신용보증을 받을 수있다는게 골자다. 보증료율도 0.4(무담보무보증)∼0.75%(담보보증)으로 0.25%포인트씩 인하했다. 다만 이 제도는 2000년3월31일까지 2년6개월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된다.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지원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사모채에 대한 보증과 벤처기업에 대한 보증등을 새로이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자금갈증은 제대로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해말 훗카이도타쿠쇼쿠은행의파산과 최근의 일본장기신용은행의 사실상 도산(국유화)으로 인해 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 대출억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 김병균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지금까지 발생한 부실규모와 그 배경은.『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부실규모는 모두 6천4백70억원이다. 중소기업들이 극한적인 자금난에 시달릴 때 보증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대위변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97년초0.26%에 불과했던 어음부도율이 97년말에 1.49%까지 증가한 사실만 봐도 기보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평가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나.『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기술평가센터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있다. 수원 부산 대전등 3개지역에 위치한 지역기술평가센터도현장에서 기술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평가센터내에는 전기전자 기계 재료금속 정보통신등 각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팀이 있다. 공학박사 공인회계사등 팀장급전문평가인력이 16명이고, 국공립연구기관의 전문위원과 대학교수등 1백9명으로 구성된 전문가풀(32개 분야)도 활용하고 있다.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첨담분야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다른인력을 줄이더라도 전문인력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보증지원기준을 많이 완화했다고는 하나, 중소기업들은 아직도기준이 까다롭다는 반응이 많은데.『수요자 입장에서는 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대위변제규모가 늘어나고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격기준에 미달되는업체에까지 지원을 해줄 수는 없는 입장이다.』▶ 엔젤투자 평가제도에 대해 설명해달라.『벤처기업 지원의 핵심은 다름아닌 자금지원이다. 엔젤투자 평가제도는 개인에 대해 다양한 벤처투자정보를 제공, 그들의 자금을 벤처업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기술평가센터가 기술력을 보증하는만큼 투자자들의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 올해 2천여개인 평가대상 기업을 내년에는 4천개 이상으로 늘려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새롭게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기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우선 사업성이 결여된 무모한 창업에는 지원이 불가능하다는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사업성 시장성 기술력만 입증되면업종이나 사업분야에 관계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과의 업무협약 체결은 잘 되고 있나.『기보는 중소 및 벤처기업에 대한 우선적 보증지원을 위해 금융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우선 「벤처기업 발굴 및 지원에 관한 협약」을 30개 금융기관과 체결했으며 「우량 중소·벤처기업지원 및 부분보증에 관한 협약」을 15개 금융기관과 체결해둔 상태이다. 지금까지 조성된 총 재원규모는 5조6천억원에달한다.특히 최근에는 보람은행과 부분보증협약을 체결, 대출금액의 50%해당분만 신용보증서를 발급하고, 나머지 50%는 보람은행이 신용을 공여하도록 함으로써 책임을 서로 나눠 가졌다.』▶ 임기동안 주력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기보를 벤처기업 보증지원 전담기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또기술개발자금 평가보증제도를 도입할 생각이다. 이는 기보와 중소기업은행이 공동으로 2천억원의 기술개발자금을 조성, 뛰어난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장기저리로 자금을 대주는 제도이다.물론 기술심사 평가방식도 보다 세분화하고 선진화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