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서울 강남일대의 법원 등기소들은 때 아닌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자신의 이름으로 돼있는 건물이나 토지의 소유권등기를 변경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 것. 살인적인 고금리로 부도율이 폭증하자 법인이나 개인에게 연대보증을 서줬던 사람들이 재산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옮기기 위한 행렬이었다. 보증기업이 망할 경우 전재산을 날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자구책」이었던 셈이다.이들은 보증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교육수준이 높고 중산층이 밀집한 강남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이처럼 집단적인 대비를가능케 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예기치않은 보증사고에 당황하기 일쑤다. 가까운 이에게 보증을 섰다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신용기반 와해 ‘믿을 수 없는 세상’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기업 포함)들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사람이 파산하면 두세사람이 거푸 쓰러지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개인신용정보 관리대상인 2천1백만명 가운데 10%가 넘는 2백35만명이 불량거래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가운데 친구나 회사동료, 또는 법인에 빚보증을 서줬다가신용 불량거래자로 등록된 경우가 상당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한국신용평가측은 『일일이 세어 볼수는 없지만 전체의 20% 정도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신용기반은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다. 은행도 망하는 마당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서울시와 한미은행의 경우 올들어 직원간 연대보증을 아예 금지시키기도 했다.그런데도 금융기관은 대출에 앞서 물적 담보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연대보증인을 요구한다. 완전히 배짱 장사다. 「싫으면 그만두라」는 은행의 태도에 대다수의 서민들은 굴복하고 만다. 결국 다수의 경제적 기반을 볼모로 대출 한건이 성사되는 셈이다. 물론 은행측도 할 말은 있다. 영세 중소기업들의 회계장부는 엉터리로 조작되기 일쑤고 어떤 종류의 부채를 안고 있는지도 알수없다고 한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8월말 현재 조흥 상업제일 한일 서울 외환 신한등 7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금 21조원가운데 연체대출금은 2조1천억원으로 전체의 1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대출담당 직원은 『은행에 돈은 남아돈다. 나도 대출실적을 올리고 싶다. 그런데 쉽게 돈을 꿔줄만한기업이나 개인이 보이지 않는다. 보증을 요구하고 싶지 않아도차주(돈을 빌린 사람)의 신용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라고 푸념한다.이 때문에 최근 보증을 매개로 한 은행대출의 비중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올해 6월말 현재 일반은행의 총여신중 신용여신의 비중은 60.1%로 지난해말 62.3%에서 2.2% 포인트 하락했다. 같은기간중 보증여신의 비중은 지난해말 6.8%에서 8.2%로 높아졌다.그러나 이같은 신용위기를 핑계로 잘못된 보증관행을 변명해줄수는 없다. 은행감독원의 남인 금융개선과장은 『현행 보증제도는 신용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의 금융기관 대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반면 차주의 채무불이행시 신용불량자를 연쇄적으로 양산함으로써 건전한 신용사회정착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보증인은 차주와는 달리 평소 피보증채무의 범위와 변제시기 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보증책임을 청구받을 경우 약정기한내에 변제하기 어렵다. 특히 기업여신의 경우연대보증을 선 고용임원들은 개인재산이 여신의 규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탓에 그 실효성마저 의문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또 금융기관들은 차주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보다는 보증인의신용보강에 의존, 여신을 방만하게 취급하게 된다. 기업에 대한대출의 경우, 장래의 기업신용상태에 대한 평가보다는 고용임원의 무한연대보증에 의존함으로써 지금까지 기업의 차입위주 자금조달방식을 부추겨온 것도 사실이다. 결국 보증관행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자체 신용평가기법 개발 노력을 게을리하게 하고 나아가 은행자산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기업들에는 상호 맞보증을 통한 확장일변도의 경영전략을 낳았다. 호황기 때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덩치를 키운 신생그룹들이 대표적인 사례다.이 가운데 거평 나산 신호 등은 과다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좌초하고 말았다. 작년에 부도난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 케이스.독자적인 영업장부로는 흑자상태를 유지해왔던 기아자동차는 그룹내 계열사에 대해 무분별한 지급보증에 나서면서 무너져 내렸다.◆ 불량자 연쇄 양산 …신용사회 정착 저해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은행감독원은 최근 개선책을 내놓았다.내년부터 은행이 기업에 돈을 꿔줄 때 개인 및 고용임원의 연대보증을 금지시킨 것. 또 기업의 실질소유주(과점주주 포함)를 제외하고는 기업의 채무에 무한책임을 지는 포괄근보증을 금지시켰다. 예컨대 A가 B기업의 빚보증을 섰을 경우 지금까지는 물적담보 외에 연대보증을 선 A가 B기업의 부채를 떠안아 제공된 담보외에 다른 재산까지 압류당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내년부터는 담보물 범위안에서만 보증책임을 지게 된다는 얘기다.은행감독원은 이에 앞서 지난 10월14일 모든 은행에 「차주만의신용에 의한 여신취급관행 정착을 위한 차주별 신용평가기법을조속히 개발할 것」이라는 내용의 지도공문을 보냈다. 이어 명시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뤄진 신용여신이 부실화될 경우 취급자의 책임을 면제토록 지시했다. 기업 뿐만 아니라 가계대출부문에도 잘못된 보증관행을 고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감독당국의 의지에도 불구, 단기간에 신용거래가 정착될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자산가치가하락하고 기업 및 가계의 전반적인 신용도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신용평가기법을 개발하는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문제는 이같은 신용경색이 지속될 경우 결국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된다는데 있다.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농림수산업신용보증기금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등 4대 공적보증기관의 대위변제액은 지난 8월까지 무려 1조9천2백억원에 달한다.특히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1조1천9백억원에 달해 작년 한해동안의 7천3백억원을 훨씬 뛰어넘었다. 민간의 신용공백을 공적 기관이 메우다보니 생긴 부실이다. 이같은 대위변제액 증가는 정부의재정추가지출에 이어 국민들의 세부담증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신용보증기금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의 신용리스크 관리기법이 하루속히 발전해야 한다. 정책자금만으로 중소기업들을지원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법-상법상에 나타나 있는 보증제도● 보통보증과 연대보증= 보통보증은 주채무자가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에 한해 주채무자를 대신해 빚을 갚아주는 경우로서, 보증인은 채권자에 대해 주채무자에게 먼저 이행청구 및 강제집행을 주장하며 보증책임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최고 및 검색의항변권을 가진다.이에 반해 연대보증은 보증인이 주채무자와 연대하여 이행책임을지는 경우로서 보증인은 최고 및 검색의 항변권이 없다. 주채무가 상행위인 경우도 연대보증이다. 금융기관의 여신취급은 상행위에 해당돼 모두 연대보증으로 처리된다.● 특정채무보증과 근보증= 특정채무보증은 채무의 금액이 확정된 특정채무를 대상으로 하는 보증으로서, 특정채무가 상환되면보증채무는 소멸한다.이에 반해 근보증은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변동하는 채무를 결산기에 있어서 일정한 한도액까지 보증하는 것이다. 개인의 주채무가 일시적으로 소멸되어도 근보증관계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다시 주채무가 발생하면 결산기의 약정 보증한도까지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단독보증과 공동보증= 주채무에 대해 한사람이 보증하는 경우를 단독보증이라고 한다. 따라서 다수의 보증인이 있는 경우는공동보증이 된다.그러나 공동보증의 경우 보통보증이냐, 아니면 연대보증이냐에따라 법적지위가 달라진다.보통보증의 경우 공동보증관계에 있는 보증인은 주채무액을 분할해 각자 그 분할액에 대해서만 보증채무를 분담할 수 있지만 연대보증의 경우에는 그러한 분별의 이익을 주장할 수 없다는데 유의해야한다.★ 인터뷰 / 이촉엽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잘못된 보증관행이란 무엇을 의미하나.한마디로 금융기관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채무자에게 보증을강요하는 것을 뜻한다.금융권의 보증 남발을 방지하기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데.근본적으로는 민법과 상법상의 보증규정을 철폐해야 한다. 상당수의 변호사들도 보증관련 조항이 법 취지를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민법과 상법을 개정하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은데.특별법인 은행법개정을 통해서도 금융권의 보증행위를 근절할 수있다. 문제는 시기이다. 지금과 같은 극도의 금융경색속에서는보증을 전면 금지할 수 없다.▶ 내년부터 기업에 대한 고용임원의 연대보증을 금지시킨 이유는무엇인가.기업의 파산이 개인의 파산으로 연결되는 부작용도 고려했지만,무엇보다도 그같은 보증관행이 유능한 전문경영인의 영입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중시했다. 실제로 보증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많은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을 맡으려하지 않고 있다.▶ 기존 여신에 대한 고용임원의 보증유효기한을 내년말로 못박은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지.전혀 그렇지 않다. 금융기관 여신에 대한 보증은 통상 1년단위로운용되고 있으므로 99년말 이전에 기일이 도래하는 것은 연장시마다 신규와 같이 취급하게 된다.금융기관들에 보증관행의 개선을 촉구하는 지도공문을 보냈는데.금융기관의 대출관행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에 검사를 벌여 보증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적절한 제재를 취할 것이다.▶ 은행들의 심사기법이 발전하기까지는 다소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물론이다. 그러나 감독당국이 오래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신용경색이 풀리는대로 뭔가 가시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계획이다.▶ 금융경색은 언제부터 풀릴 것으로 보는가.11월중에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정리되고 고용조정도 이뤄지면 해소되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적정 경제성장률에 부합되도록 자금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는게 목표다.▶ 장기적으로 보증관행이 사라지면 그 공백은 어떻게 메울 생각인가.신용보증기금등 공적기관의 역할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담보가취약한 기업들을 위해 공적인 보증의 제공까지 막아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