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자유화는 미국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세계경제의 패권을누리겠다는 전략의 산물이다. 자본자유화로 인한 희생이 이처럼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수정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개도국들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사슬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얼핏 보기에 일본의 극우파 작가 이시하라 신타로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과 같은 반미주의자의 발언처럼 들릴 수 있다.그러나, 이는 세계은행의 부총재를 역임했고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경제학교수인 제프리 삭스가 이코노미스트지에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최근 헤지펀드의 관리자들은 예정에 없이 카리브해의 버뮤다에서긴급회동했다. 연말의 결산일에 대비해서 실적을 보전하지 않으면 전주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에 대한 노심초사이다. 한편 롱텀 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부실에 당황한 미국정부는 신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불사하면서 3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긴급 투입했다. 이것도 안심이 안되어 연방금리를 재차 인하했다. 그리고헤지펀드에 돈을 대주었던 스위스의 유니온은행, 네덜란드의ING베어링은행, 미국의 뱅크아메리카, 그리고 메릴린치의 최고경영진이 문책 사임했다.헤지펀드들은 연말까지 시간이 없다. 또 한두나라를 제물로 바쳐서라도 투자수익률을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밀물같이 밀려들어가 버블을 일으키고 썰물같이 빠지면서 이익을 챙겨야 한다. 이들의 일차적인 타깃은 자본규제의 빗장을 열어놓은 나라다.IMF관리체제하에서 시장 신봉주의의 주문을 열렬히 외우고 있는우리나라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최근 우리나라 증시에는 10일 사이에 약 5억달러의 외국자본이유입되었다. 한국은행은 중장기적인 투자성향을 보이는 미국계,영국계의 역외펀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논평하면서 불안감을잠재웠다. 국내 증권계에서는 이에 한술 더떠서 드디어 증시가반전기회를 맞이했다고 전망했다. 엔화강세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강화됐고, 국제상품가격의 하락으로 원가부담을 덜게 되었고,미국의 2차 금리인하로 국내의 <금리인하→경기부양 designtimesp=17811>의 가능성이높아진만큼 증시가 상승기류를 탈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다.김대중 대통령은 제2의 환란은 없다고 단언했고, 캉드쉬 IMF총재도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거론하며 위기재발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 증시에 재차 유입되고 있는 외국자본에 대해 이렇다할 우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우리의 눈물겨운 구조조정의 성과를 비로소 외국자본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이 신3저 낙관론의 기류를 타고 확대되고 있다.좋은 뉴스에 굶주려온 우리의 현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에서 국제경제의 동향을 일방적으로 재단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말레이시아, 러시아가 IMF의 의사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고정환율제로 복귀했고, 자유시장을 이미지로 먹고 살아온 홍콩이 강력한 시장개입을 실시했고, 미국 유럽 등 금융주도국의 양심적인 학자와 정치지도자들까지도 투기자본의 규제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마당에 정작 위기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대응책이 검토되지 않고 있다.이제 우리나라도 나름대로의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냥 국제적인 해결책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금융감독기능 강화론, 브레튼우즈체제 개편론, 신국제기구 창설론 등 현재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방안들은 하나같이 이해집단간의 갑론을박으로 인해 하세월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가 채용할 수 있는 대안은 현재로선 칠레식으로 사전예치금을 몰수하는 조치, 외채지급이자에대해 세금공제를 축소하는 조치 등이다.IMF가 투기자본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이를 저지하려 한다면, 한시성을 조건부로 협상해야 한다. 힘에부치면 제프리 삭스, 폴 크루그만, 조세프 스티글리츠와 같은 저명 이코노미스트, 심지어는 미야자와, 사카키바라와 같은 일본인의 입을 빌려서라도 필요성을 역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