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간 과감하게 이뤄졌던 M&A(인수 합병) 열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현재, 한국의 은행 부문 구조조정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은행 부문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사실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이제 시작됐을 뿐이다.은행의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6가지 조건들이 구비돼야 한다. △지속적이고 치밀하게 은행 운영을 위한 자본을확충하라. △부실채권 규모를 명확히 파악하라. △경쟁력있는 규모와 사고방식을 갖춘 조직으로 재탄생하라. △세계적인 수준의구조와 업무관행 및 역량을 구축하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라. △전환기의 경제를 지탱해줄 수 있는 유동성과신용을 유지하라.은행 자본금 확충 작업은 이미 시작됐지만 완성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가장 큰 문제는 구조조정에 너무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표1 designtimesp=17887> 한국 정부는 은행 부문 구조조정에 64조원을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국가의 경험에 비춰보면 은행 부문 구조조정에 필요한 금액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부담해야한다. 한국 정부는 얼마동안 정부 재원 투입 시기를 늦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약속한 재원 투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부실채권은 자본금 확충 문제와 연결돼 있다. 서구 은행들은 한국의 부실채권 규모가 총 대출의 30∼5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실채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부실채권에 대한 해법은 명약관화하다. 부실채권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뒤 가장 회수 가능성이 큰 부실채권에 집중하고 유질처분(담보물을 찾을 권리의 상실) 과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규모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실천이 이뤄졌다. 합병을 통해한국 은행산업의 구도는 현저히 달라졌다.<표2 designtimesp=17892> 이런 합병은 선도적인 은행이 탄생하기 위한 초석이 될수 있다. 그러나 합병 자체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는 없다. 개별 은행이 합병후 통합과정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인가가 내년의 주요 변수가 될것이다. 주택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역량 구축을 위한 기회를중시해왔으며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려왔다. 이런 은행들의 경우 규모를 키우기 위한 합병이 당장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경쟁자들이 조직 통합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고객에 초점을 맞춰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큰 규모가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독일의 경우군소 지역은행들이 수익성면에서 대형은행인 도이치은행이나 드레스트너은행을 능가하고 있다.규모의 경제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이 변해야 한다.한국 은행들이 직면할 새해의 핵심적인 도전 과제는 사고방식에서의 변화를 사업과 신용에 초점을 두면서 조직 전부문에서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변하는데 2∼3년 필요더 나아가 조직 구조와 업무 관행의 변화 및 세계 수준의 역량구축, 특히 신용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사실상 한국 은행들은 많은 계획을 입안, 실행했으며 컨설팅회사에 자문도 구했다.이런 노력은 중요한 첫출발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추진이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다. 이런 변화 중에 어떤 것도 3∼4개월안에 완수될 수는 없다. 어떤 은행이 강자로 살아남을 것인가는 앞으로1∼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판가름날 것이다.기업 지배구조와 투명성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논의된 경영 용어들이었다. 정부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은행장과 주요 임원들 선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한 한국 은행들이 비즈니스 마인드를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은행들이 수립한 많은계획에는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 임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닦기 위한 계획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BCG가 미국과 유럽의이사회를 연구한 결과 이사회 구조는 성공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는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요소는 사외 이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지 등이었다. 즉 그들이 실제로 경영진이 제안하는 전략을 검토하는가, 관련있는 경험에 근거해 사업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질문을 할수 있는가,그들이 집행부 경영진들로부터 독립돼 있는가 등이 해결해야할문제들이다.이광요 전 싱가포르 수상은 아시아의 행동양식이 하루 아침에 변할 수도 또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다시말해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유럽 은행의 사례에 비춰볼때 조직을 재구성하고 역량을 구축하는데는 대략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더욱 시급히 혁신을시작해야 하는 것이다.조속히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합병의 경우에 더욱 절실하다. 신한은행이 동화은행을, 하나은행이 대동은행을 자산부채이전방식(P&A:Purchase & Acquisition)으로 인수한 사례와같이 정부가 합병을 주도할 경우 자산과 지점, 직원 등을 신속하게 통합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또는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경우와 같이 대등한 은행끼리의 합병일 경우 1만여가지에 달하는 세부사항에 대해 의견을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물론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몇달동안 대등한 합병이 어렵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밝혀졌다. 대표적으로 시티은행과 트래블러스의 임원들은 아직도 시티그룹내에서 어떻게 함께일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시티은행의 기업 금융과 트래블러스의 살로먼 스미스 바니 투자은행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양측의 경쟁심리로 인해 새로운 임원이 임명되거나 업무 조율을 위한 새로운 조직이 형성되기까지 했다.한국 정부가 내년에 직면할 가장 어려운 과제는 개별 은행들의세부적인 구조조정 개혁을 일일이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개혁을성공적으로 촉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은행들의 자율을 존중하되 감시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위해 정부는 △부실채권을 성업공사에 이전하고 새로운 추가 재원을 투입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개별 은행의 구조조정 계획안을 점검하고 △합병이 의도했던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개별 은행의 인사와 특정 사업 활동에 대해서는 관여하지말아야 한다.은행들은 계획을 실천하고 결과를 평가하면서 어려운 결정을 미루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경쟁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은행들은 내가 경쟁자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을 생각해 보면 성공하기 위한 요소가 단지 운영 효율성과 리스크 관리의 원칙들을 실천하는데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방하지 않고 차별화함으로써 진정으로 주주와 고객, 직원 그리고 한국 경제를 위한 선도은행이 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