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일본의 금융시장은 높은 금리와 낮은 주가, 그리고 엔고라는 「트리플 위기」에 몰려 있다. 금융 관계자들은 총체적인 어려움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자칫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어찌 보면 일본의 주가하락은 당연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느 정도는 예견됐고, 기업들 역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놓은 상태다.금융기관들 역시 크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운용의 기둥 역할을 하는 국채가격의 하락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금융기관의 재무상태를 크게 악화시키고 있어 일본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엔고현상이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엔환산 자산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다행히 지난 1월 중순 이후 미쓰이신탁과 쥬오신탁의 합병합의를계기로 주가가 다소 반전됐다. 또 일본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의 가치도 다소 안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장기금리도 서서히 떨어지는 등(채권가격은 상승) 금융시장이 차츰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가 끝났다는 의미일까. 대답은 「노(NO)」다.『24조엔 규모의 긴급 경제대책을 내놔도 주가는 오르지 않고, 엔고는 여전하며, 장기금리는 상승한다는 얘기들이 나돈다. 이는 틀림없는 망국의 시나리오다.』 일본 굴지의 증권사인 다이와증권의다케우치 채권부장은 이번의 국채가격 폭락이 망국의 시나리오가현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구체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12월초에 1% 정도였던 장기채권 유통이율은 겨우 1개월만에 약1%나 상승했다. 가격으로 치면 10엔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 22일에미야자와 대장상이 대장성의 자금운용부에 의한 국채매입의 중지를허가한 것이 폭락의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99년도 예산 관련 내용을 보면 신규국채 발행이 31조엔으로 전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나고, 국채시장에 수급악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미야자와 장관의 발언으로 국채가격이 급락해버렸다.장기금리가 상승할 조짐을 보이는 대목도 악재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미국과의 금리차가 축소되고, 엔화의 가치가 올라간다. 불경기하의 금리상승과 엔고는 결과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실적을 악화시키고, 더 나아가 주가를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미친다.◆ 일본, 금리 상승·엔고 악영향이밖에 시중에는 정치인들이 금융시장에 너무 개입해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대장성의 음모론까지 난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사실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내부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오부치 정권에 있어서 99년도의 0.5% 성장은 정치공약 가운데 하나다. 경기후퇴가 보다 분명해지면 다시 재정 지출을 늘리지 않을 수없다. 다시 말해 일본은 경기가 악화되어도 재정정책에 의해 가능한한 이를 메우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재정뿐만 아니다. 예금보험기구의 거액의 자금조달이 금리상승에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12월 말 예금보험기구의 차입잔고는 9조5천억엔이고, 이 가운데 약 8조엔을 일본중앙은행에서 빌린 상태다. 문제는 이렇게 빌린 돈을 채권발행이나 민간은행에서 차입해 변제할 것이라는 점이다. 상세한 것은 지금 검토중이지만 지금 예측대로 민간은행으로부터의 차입에 의존한다면 단기금리를 밀어올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일본 외에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월18일 브라질 중앙은행이 달러연동 환율정책을 포기하고 변동상장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레알화가 안정되는기미를 보이면서 국제통화위기가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일단 잠복했다. 특히 곧바로 뉴욕의 주가가 상승해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미국 주가가 버블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 다우지수는 지난해 8월 러시아위기와 대형 헤지펀드 LTCM의 파탄쇼크로 아주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다가 그후 FRB(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3회에 걸쳐 금리를 계속해서 내리자 지난 1월8일 처음으로 9천6백대에 진입했다.87년10월 블랙먼데이 때를 감안해볼 때 지나치게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문제는 언제, 어느 정도의 폭으로 미국 주가가 조정되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는 이에 대해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경기의 행방과 기업실적이 키를 쥐고 있을 뿐이다.◆ ‘공황 시나리오 제동 걸 나라가 없다’올해초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99년 상반기 경기전망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 의견을 내놨다. 속도는 느리지만 어쨌든 지난해보다 더 나빠지다가 후반기쯤 돼서야 많이 호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완화 효과가 나타나면서 다소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측대로라면 지금쯤 경기가 나빠야 하는데 그런 징후가 잘 보이지 않는다.정반대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 역시 당초 예상과 반대 모습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전반기는 성장을 계속하고, 후반기에는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후반기쯤 가서실제경제와 주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이른바 주가의 거품현상이다.하지만 주가가 끝도없이 거품현상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경기가 계속해서 하강국면을 그리면 어느시점에 가서는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미국 경제 전체가 엄청난회오리 바람에 휩싸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미국이 주가하락 - 개인소비 감소 - 경기후퇴 - 주가하락 - 개인소비 감소라는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사이클에 돌입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달러 폭락이다. 97년 동남아 경제 위기 이후 수년간 신흥개발국가에 유입됐던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안전한 도피처를 찾아 이동했고 미국 주가와 채권가격을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그러나 반대로 미국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다시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많다.미국의 불황은 전세계적으로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은 세계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국이 절대적인역할을 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수입이 감소해 지구촌 전체가 동시불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에 제동을 걸 나라가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일본 역시 속수무책인 듯하다. 이미 자국을 통제할 힘마저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유로화를 출범시킨 유럽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로화의 가치를 계속해서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재정적자의 확대는 원치 않는다.국제 금융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는 최근 자신의 저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위기 designtimesp=18146>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련을 뛰어넘을 때마다 가속의 시기가 찾아오고, 가속기 다음에는 반드시 「결정적 순간」이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지금 이런 흐름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는 그 누구도 단언하지 못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국제통화 위기가 파급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위기가 세계적으로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