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내 현장 출동 '환자는 일단 살리고 본다'

에펠탑, 개선문,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향수와 최신 패션….프랑스를 얘기할때면 이런 것부터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프랑스에 찬란한 문화와 세계를 리드하는 최신 패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사람들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바깥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응급구조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찬란한 문화유물이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라면 「국민을 위한」응급의료시스템은 프랑스인의 자랑이다.프랑스 응급의료시스템은 사뮈(SAMU)라 불린다. 「Service d’Aide Medical Urgent」의 약어로 응급의료서비스라는 뜻. 프랑스 전국에는 1백5개의 사뮈조직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때문에 모든 사고와 재난현장에는 항상 사뮈요원들이 있다. 사뮈를 부르는 전화는 전국 어디서나 15번. 구조가 필요한 응급환자나 사상자를 위해 이 번호만 누르면 사뮈에 즉각 연결된다. 이어 10분후쯤엔 사뮈의 응급치료 전문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전문의·첨단설비 항시 대기중사뮈의 기본 정신은 「생명지상주의」. 사뮈의 응급구조 방식을 보면 프랑스가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때와 장소, 환자의 신분에 상관없이 최대한 빨리 최상의 응급치료를 실시해 일단 생명부터 건져놓는 게 사뮈의 목표다. 이를 위해 사고현장에 전문의가 출동해 최신 의료장비로 응급처치를 한후 병원의 수술실로 직행하도록 하고 있다. 번거롭게 다시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 모든 의료비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료보험에서 지불되므로 수술비가 없어 수술도 못한채 병원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프랑스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사뮈를 통해 국민 누구나 사고현장과 병원에서 최상의 치료를 돈 걱정 없이 받을 수 있다.수도 파리는 3개의 사뮈로 나눠져 있다. 각 사뮈본부에는 응급전화를 받고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관제센터가 있다. 관제센터는 구조전화를 받는 전화요원들과 사고현장에 출동할 전문의사들이 24시간 근무체제로 운영된다.지난달 말 파리사뮈의 총 사령탑인 파리시내의 네케르병원. 이 병원건물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관제센터. 이곳에서는 파리시내 곳곳에서 걸려오는 응급구조요청 전화벨 소리로 분주했다. 응답요원들은 사고상황을 파악해 곧바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전문의사들에게 전화를 연결시켜주고 있었다.이때 전화를 넘겨받은 전문의사는 사고 상황에 따라 4가지 조치를 취한다. 먼저 경미한 사고일 경우에는 전화로 부상자나 주변사람에게 응급처리방법을 알려준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의사의 치료가 필요할 때에는 사뮈와 계약을 맺고 있는 일반의사에게 연락, 왕진을 요청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부상정도가 꽤 심할 때는 민간병원이나 소방서 구조대에 알려 병원이나 소방서 앰뷸런스를 보내도록 조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태가 아주 심각할 경우에는 전화를 받은 사뮈소속 의사가 직접 사뮈앰뷸런스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간다.사뮈앰뷸런스는 각종 첨단의료장비와 전문의사와 간호사 1명씩을 갖춘 「달리는 종합병원」이다. 사뮈의사들은 모두 마취및 소생전문의들이다. 각 사뮈에는 여러대의 최첨단 앰뷸런스가 있다. 앰뷸런스에는 인공호흡기 심전도기 전기충격기 등 각종 첨단의료장비와 모든 응급약품이 구비돼 있어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다. 구조전화가 걸려와 사뮈앰뷸런스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8분. 교통상황이나 거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10분내 현장도착」이 사뮈의 원칙이다.파리사뮈의 총책임자이자 네케르병원의 마취및 소생과장인 피에르 카를리박사는 『부상자가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않고 병원으로 수송되는 동안 목숨을 잃는 것을 최대한 줄이는 게 사뮈의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또 사고상황에 따라 대응조치를 4가지로 분류한 것은 의료장비와 인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일반의사가 왕진가방 하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현장에 첨단장비를 보내거나 사뮈소속 전문의를 파견하는 것은 인력과 장비의 낭비라는 지적이다. 최첨단 의료장비와 전문의를 요구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4가지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애너비 사고 때도 사뮈 출동프랑스 응급의료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사고현장에서 부상자나 환자를 치료해 일단 목숨을 건져 놓은 다음 병원으로 옮긴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현장에 전문의와 첨단설비를 갖춘 앰뷸런스를 보낸다. 이와는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 색슨계 응급의료시스템은 환자나 부상자를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후송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인구 6천만인 프랑스에서 사뮈는 작년 한해동안 총 9백만건의 응급구조 요청 전화를 받았다. 이중 사뮈앰뷸런스가 직접 사고현장에 출동한 것은 65만건에 달했다. 전국 1백5개 사뮈에서 하루 평균 17번씩 출동한 셈이다.사회보건부의 세드릭 에랑발 말레 중앙병리행정실장은 『전체 응급구조요청 전화중 30%는 전문의사의 전화설명으로 처리되고 사뮈앰뷸런스가 출동하는 경우는 약 15%에 이른다』고 밝혔다. 20%는 일반의사의 왕진으로 해결되고 10%는 민간구급차로 인근병원으로 후송된다. 소방서와 협력해서 해결한 경우는 전체의 25%였다.그는 사뮈에 근무하는 전문의사와 간호원들은 24시간 출동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2~3교대 근무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현장에는 전문의사와 간호원이 있다』며 사뮈의 신속성과 전천후성을 강조했다.프랑스 응급의학 시스템은 사뮈를 근간으로 소방대의 사이드지원을 통해 응급구조의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사뮈와 소방대가 서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소방대 구조요청 전화번호는 18번. 사뮈와 소방대의 유기적인협력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97년 영국 다이애너비의 자동차사고. 이날 사고현장에는 사뮈 앰뷸런스와 인근 소방대의 응급차가 거의 동시에 출동했다. 소방대에도 전문의 자격을 갖춘 의사가 있어 사뮈와 거의 같은 수준의 응급치료를 한다.그당시 사고당사자가 다이애너와 같은 유명인사인지를 모른 상태에서 단지 대형 교통사고라는 이유로 양쪽에서 동시에 앰뷸런스가 출동했다. 파리소방구조대의 앙리 르오 군의관은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인명사고가 나면 앰뷸런스가 출동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모든 국민을 차별하지 않고 구조하는 것은 프랑스 응급의학시스템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