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C파이프 생산 대림산업 이어 2위 ... IMF 위기 때도 순이익 남기는 수완 발휘

「단칼 승부」. 이국로 지주 회장의 하루는 칼로 시작된다. 이순을 갓 넘긴 탓에 드문드문 흰머리가 보이지만 칼에 대한 열정은 청년 이상으로 뜨겁다.김포에 있는 검도회관. 이른 아침 기본 동작으로 몸을 풀고 예를 갖춘 후 대련에 들어간다. 먼지 하나의 흔들림도 놓치지 않는 매서운 눈길. 우주가 멈춘 것 같은 고요함.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숨막히는 정적은 어느 순간 깨지고 번개같은 몸놀림과 함께 상대방을 쓰러뜨린다. 찰나요 순간이다. 단칼에 나는 승부.열두살에 시작해 40년 동안 갈고 닦았다. 공인 7단. 국내 검도계에서 활약하는 현역중 10대 고수의 반열에 든다.◆ ‘단칼 승부’ 검도 정신이 경영철학검도에 얽힌 얘기 한토막. 70년대 중반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며 긴 드라이버를 든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고 돌진했다. 순간 몸을 돌려 집은게 30㎝짜리 대나무자. 반사적으로 드라이버를 피해 상대방의 목을 내리쳤고 목뼈는 댕강 부러졌다. 상대방은 이씨를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오해해 공격해 온 것.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끝내 약식 기소해 벌금을 물렸다. 이유는 한가지. 맨몸으로도 방어할수 있는 고단자가 왜 자를 사용했느냐는 것.칼은 사람을 살리는데 쓰는 것(활인검)이지 다치게 하는데 쓰는게 아니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흔쾌히 벌금을 물고 나왔다.검도 정신은 그의 생활이자 경영 철학. 한번 칼을 뺐으면 승부를 내야 하듯 일단 사업에 나섰으면 결판을 내야 한다. 임직원 모두 이런 정신을 갖고 있다. 직원들의 단수를 모두 합치면 72단. 단을 따지 못하면 결코 과장이 될 수 없다. 회사는 노사 관계가 아니라 사제지간.검도의 승부 정신은 IMF(국제통화기금)사태 때 위력을 발휘했다. 많은 기업이 쓰러졌다. 그럼에도 지주의 이익은 2배로 늘었다. 97년 매출은 1백50억원에 순이익은 3억원. 작년엔 소비 감소로 매출이 1백2억원으로 줄었지만 순이익은 6억원으로 증가했다. 직원들이 승부 근성을 갖고 매출 채권을 철저히 관리한데 따른 것. 올 목표는 계열사인 사이몬을 합쳐 2백60억원.종업원의 평균 근속 연수는 15년. 장기 근속자가 어려움을 슬기롭게 넘기는데 보탬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들중 특히 기여한 사람은 블랙스파이더들. 기술개발 영업 등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주는 명칭이 블랙스파이더다. 임직원 최고 영예다. 원하는 때까지 근무할 수 있고 퇴직후 재입사할 수도 있다. 자식에게도 입사 자격이 주어진다. 모두가 블랙스파이더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탄생한 블랙스파이더는 모두 6명. 이중에는 운전 기사도 있다.지주가 폴리에틸렌 파이프와 PVC파이프 분야에서 대림산업에 이어 두번째 큰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은 장기 근속자와 블랙스파이더들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2백여 중소기업중에선 최대 기업이다. 주력 생산품은 수도관 전선관 하수관 빗물받이.◆ ‘블랙스파이더’ 되면 자식도 입사 가능게다가 첨단 설비로 무장한 것도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김포 공장에 설치된 기계는 세계 최고의 압출 기계로 꼽히는 독일 바텐필드사 제품. 원료 투입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자동일 뿐 아니라 공정중 불량 여부가 자동으로 점검 판별된다. 1백억원이 투자된 신공장이다. 실험실에선 생산제품과 신개발품의 물성 검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외압강도 내부식성 내구성 등이 주요 체크 항목. 연약한 지반에서의 안전성도 점검된다. 우수한 강도를 지니면서도 유연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 때문.지주가 생산하는 PE파이프는 주철관이나 강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운게 특징. 연결이 쉬워 시공비가 적게 들고 부식이 없는 것도 강점. 그동안 주철관이나 강관이 장악해온 파이프 시장을 점차 대체하고 있다. 『명인이 신명을 바쳐 명검을 만들듯 제품 하나하나에 혼을 심는게 철학입니다.』 이회장은 도공이 청자를 빚듯 맥박이 뛰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최첨단 설비와 최적의 원료, 최선을 다하는 기술인력이 3박자를 이뤄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부연한다.이회장은 플라스틱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다. 그는 조합 활동을 하면서 몇가지 기록을 세웠다.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최초의 3선 이사장으로 탄생한 것. 플라스틱조합은 전통적으로 경합이 매우 치열한 곳. 재선도 힘든 조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만장일치 방식으로 추대된 것은 조합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조합원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경기 침체에 일회용품 억제정책이 맞물려 조합원사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단체 수의계약은 점차 줄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습니다.』방안에는 공동 기술 개발과 영업 강화가 들어 있다. 조합이 구심점이 돼 업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함께 개발해 내자는 것.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또 하나는 조합 직원이 직접 영업에 나서는 것이다. 일감을 찾아다 조합원사에 주자는 취지다. 실적이 뛰어나면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줄 작정이다. 연봉제를 도입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대학에는 배코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괴짜 학생이 한두명 있게 마련. 이회장이 바로 그런 학생이었다. 한양대 공대를 다닐 때 머리를 빡빡 깎고 콧수염을 길렀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한복에 짚신을 신고 영업을 했다. 한번 만난 사람이 『아, 그 친구』하며 기억할 수 있게 튀는 인상을 심어줬다. 동시에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경영철학을 갖고 사업을 벌여 왔다.튀는 아이디어의 이회장이 회사와 중소업계를 위해 어떤 기발한 작품을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02)391-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