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5배ㆍ환경오염 방지용 안정기 개발 ... 30여개 특허 보유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여름철 오후. 서울시내 관청에 중년의 신사가 들어섰다. 벗겨진 이마와 희끗희끗한 머리,얼굴생김이 말론브랜도와 닮았다. 오른손엔 밤색 007가방, 왼손엔 골판지박스가 들려 있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이마의 땀을 닦은뒤 심호흡을 했다.계단을 올라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여직원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신제품을 개발해서 설명을 드리려고…. 』 『누구랑 약속하셨나요. 』 『그런 것은 아니고 너무나도 획기적인 제품이라 정부기관에서 꼭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돼서…. 』 『앉아서 기다리세요.』 1시간이 지나서야 담당자와 얘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박스안에서 안정기를 꺼내면서 첨단기술로 개발한 전자식 안정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소프트 점등방식이어서 형광등 수명을 다섯배나 늘려주고 폐형광등 발생을 줄여 환경오염도 막아주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절전효과도 30%나 된다. 공사를 발주할 때 이 제품을 채택해주면 고맙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긴 설명과는 달리 담당자의 답은 짧고 퉁명스러웠다. 『특정업체 제품을 채택했다가 감사에서 지적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특허와 국산 신기술마크를 획득했다며 설득해도 소용없었다.제품 개발후 방문한 기관이 50군데가 넘었지만 나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문전박대. 무려 4년 동안 17억원이나 들여 개발한 제품이다. 엄청난 공을 들여 개발했고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제품이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공무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다리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한쪽 구석에선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장기원(58)씨가 혜성라이팅을 창업한 것은 88년. 숙부가 창업한 국내 굴지의 콘덴서 업체인 극광전기에서 20년 동안 일하다 사장 자리를 사촌동생에게 물려주고 독립했다. 콘덴서를 등기구 공장에 납품하다 보니 형광등에 문제가 많음을 알게 됐다. 사용한지 얼마 안돼 검게 그을리고 수명도 짧은 원인을 알아보니 문제는 안정기였다. 새로운 방식의 안정기를 개발하면 큰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부천에서 창업해 개발을 시작했다.◆ 인체감지 센서 형광등 개발안정기 회로를 설계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보기를 수십차례. 92년에야 개발해 낼수 있었다. 상품명은 오로라 전자식 안정기. 제품은 획기적이었다. 특수회로를 내장해 순식간에 고전압이 방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흑화현상이 방지되고 수명을 5배 연장시킬 수 있었다. 부드럽게 켜지는 장점도 있었다. 특허와 신기술(NT)마크 우수품질(EM)마크도 획득했다. 이런 제품이라면 관청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줄 알았지만 결과는 냉담했다.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인 법. 별 기대도 걸지않고 찾아간 교육부는 큰 희망을 안겨줬다. 담당 계장은 국가가 앞장서서 개발해야 할 제품을 중소업체가 고생끝에 해냈으니 적극 도와주겠다며 학교에 납품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줬다. 그다지 많은 물량은 아니었지만 장씨로서는 가뭄끝에 내린 단비였다. 이후 판매는 점차 늘었다. 설치된 것을 보고 주문이 뒤를 이었다. 용기를 얻은 장사장은 잇따라 신제품을 선보였다. 슬림형 등기구가 한 예. 두께가 기존 제품의 3분의1인 4.2㎝에 불과한 이 등기구는 건축공사 때 천장시설을 지탱해주는 지지대(M-bar)를 잘라내지 않고 시공할 수 있는 제품. 볼트 너트없이 등기구 위쪽에 달려 있는 슬라이드바를 지지대에 걸치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 기존 제품은 한 사람이 하루 평균 2개의 등기구밖에 설치할수 없었으나 이 제품은 훨씬 많이 시공할 수 있어 인건비를 10분의1로 줄일 수 있다.산업용 및 가정용 형광등 기구와 장식등 기구도 개발했다. 재미있는 것은 인체감지 센서가 달린 형광등. 아파트복도에 설치해 사람이 들어서면 불이 켜지고 지나가면 꺼지는 제품이다. 백열등과 센서를 결합한 제품은 많이 나왔으나 형광등에 센서를 적용한 것을 내놓은 것. 형광등은 자주 점멸되면 전력소모가 급증하고 수명이 급속도로 단축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등기구 분야에서 다양한 제품을 내놓을수 있었던 것은 전직원이 개발요원이기 때문. 연구개발자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스스로를 연구원이라고 여기고 아이디어를 낸다.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는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와 특진 등 푸짐한 포상이 뒤따른다. 전종업원 29명이 내놓는 제안건수는 한달 평균 30건.직원들의 아이디어는 과감하게 제품화된다. 이런 노력 끝에 받은 특허가 무려 30여건에 이른다. 작년 매출은 55억원. 등기구업체로선 적지 않은 금액이다. 또 창업후 처음으로 흑자를 실현했다. 올해는 70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제품의 품질에 관한한 어떤 제품과 겨뤄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장사장은 『가격은 조금 비싸도 품질은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동안 내수시장에 구축한 성가를 바탕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동남아 유럽 등지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작지만 강한 기업,직원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인 장사장은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임에도 여전히 007가방과 박스를 들고 관청가를 누비고 있다.(032)676-8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