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만하다 '가쪼마니' 브랜드로 승부 ... 과감한 투자가 성공 원동력

최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작은 이변이 하나 일어났다. 핸드백, 지갑 벨트 등을 파는 1층 피혁제품 매장에서 이제 막 출시된 브랜드가 월간 매출액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국산브랜드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유명 상품들을 차례로 제치고 국산의 체면을 지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화제의 브랜드는 지난 1월 처음 선보인 「가쪼마니」(GAZZOMANI)다. 피혁전문 업체인 (주)어레인지(대표 이석균)가 피혁유통업에 뛰어들면서 의욕적으로 선보인 제품으로 20~30대 커리어우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쪼마니」는 「가죽 주머니」란 뜻의 순우리말이다.(주)어레인지의 역사는 지난 84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대학(성균관대 상대)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이대표가 자형(누나 남편)의 추천으로 가내수공업 형태의 피혁공장을 인수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규모가 직원 3명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아 회사라고 하기에도 쑥쓰러울 정도였다.그러다가 86년 일본 쪽에 수출 루트를 확보하면서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갖는다. 우연한 기회에 무역일을 하던 재일교포를 알게 돼 납품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후 90년까지는 순항기였다. 별 문제없이 거래를 계속하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 인력의 인건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부담이 커졌다. 자연 수출가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쪽 바이어는 난색을 표시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인도네시아로 나가보려고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노하우 축적… 독자브랜드 개발위기의 순간에서 이대표는 방향을 1백80도 틀었다. 일본쪽 바이어 상대에서 국내 업체에 납품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아직 경쟁력이 떨어져 독자 브랜드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 따라 일단 국내 무대를 상대로 납품을 하며 역량을 축적한다는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었다.이후 줄곧 국내의 유명 업체들에 핸드백, 가죽, 벨트 등을 공급해온 (주)어레인지는 마침내 지난해부터 독자 브랜드를 내놓을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들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특히 이대표를 포함한 회사 관계자들은 피혁제품의 승패를 좌우하는 디자인면에서 어느 업체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사실 (주)어레인지는 지난 87년 이후 꾸준히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비록 납품업체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문 디자이너를 두고 직접 디자인을 했다. 대부분의 납품업체들이 본사의 지시대로 기계적으로 만드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92년 이후 국내 업체에 납품할 때는 아예 직접 디자인한 샘플을 들고다니며 국내 업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 주문을 받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독자브랜드를 내놓을 날만 기다리며 디자인에 대한 노하우를 계속 쌓아왔던 것이다.자체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주)어레인지는 가격 면에서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품질은 최고를 고집하지만 가격만큼은 낮게 책정했다. 다른 회사에 비해 무려 20% 가량 싸게 내놓았다. 원가를 줄이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결과다.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재도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피혁공장에서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게 공급받는다. 제조도 그동안 함께 일하다가 독립한 30여명의 소사장에게 상당 부분을 맡겨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포착경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서 독자 상표를 내놓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모험으로 비쳐질 수 있다. 특히 핸드백, 벨트, 지갑 등은 패션과 관련된 상품인만큼 경기의 바람을 민감하게 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는 판단 아래 당초의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백화점에 입점했던 업체들이 경기부진으로 하나 둘씩 떠나는 상황이라 올해가 아니면 영영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중소업체 입장에서 유통의 핵인 백화점을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게다가 (주)어레인지는 지난 3월 부도로 쓰러진 K&F를 인수, 사업을 한층 키웠다. 최근 들어 전반적인 불황의 영향으로 다른 회사들이 몸집 줄이기에 여념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인 대목이다. K&F는 피혁 분야에서 알아주는 업체로 「Ye」와 「BANA&BANA」를 갖고 있는 회사다. 업계 일각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피혁 제조에 전념하다 유통에까지 뛰어든 이후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주)어레인지는 이미 전국적으로 7개의 백화점에 둥지를 틀었다. 신생 브랜드를 낸 업체치고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여세를 몰아붙여 올해 연말까지는 20여개 백화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경영진은 판단한다. 매출액 역시 지난해보다 2배 가량 증가, 1백억원대에 접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02)469-0560★ 인터뷰 / 이석균<주)어레인지 대표"개발력이 곧 영업력"이석균 (주)어레인지 대표(46)는 집념의 사나이로 평가받는다. 오랜 고생 끝에 국산브랜드를 출범시킨데다 업계로부터 절반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다른 업체와 달리 공격경영을 펼치는데.지금이 기회라고 본다. 다른 업체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업활동을 하기가 수월하다.▶ 「가쪼마니」 브랜드가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는.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본다. 디자인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데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괜찮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 경영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역시 개발이다. 좋은 상품을 내놔야 팔리고, 기업도 산다. 개발력이 곧 영업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우선 지역 대리점을 내고, 장기적으로는 세계무대에 나설 생각이다. 대리점과 관련해서는 이미 상담을 벌이고 있다. 곧 첫선을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