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사 부진 등 '적자 허덕' ... 니시가키사장, '과거' 청산나서

올해로 창업 1백년을 맞은 NEC. 일본의 하이테크산업의 간판기업이다. 반도체분야에서 일본의 정상을 달려왔다. 전세계적으로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C&C(컴퓨터 앤드 커뮤니케이션)」사업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착시켰다. 『정보와 통신의 융합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었다.지난 77년의 일이었다. 통신, 컴퓨터및 정보, 반도체디바이스등 3개 주요사업에서 남은 수익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 개별기업과 전체가 혼연일체로 된 홀론경영(Holonic Management)을 실천했다. 이를 통해 3개 주요사업을 축으로 하는 삼위일체 경영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지난 96년에는 반도체부문에서만 1천9백53억엔의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멀티미디어」하면 곧 NEC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본의 종합전기업체의 모델케이스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이같은 NEC가 벼랑끝에 몰리고 있다. 99년3월 결산기에 연결기준으로 2천2백억엔의 적자를 냈다. 세후손익 또한 1천5백억엔의 적자였다. 과거 최대기록이다. 불황에다 엔고로 인한 주력사업들의 부진이 주원인이었다.실적부진뿐만이 아니다. 방위청 배임사건으로 기업 이미지까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NEC계열의 도요통신기와 니코전자가 방위청기기 납입과 관련, 89년부터 5년 동안 가격을 부당하게 조작, 청구한 것이 들통났다. NEC 간부가 방위청조달실시본부의 본부장 등과 공모, 반환금액을 줄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NEC전무와 계열사사장 등 12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세키모토 다다히로회장(현상담역)이 물러났다. 지난해 10월23일이었다. 회사측에서는 『사건의 파문을 감안,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검찰의 압력이 결정적이었다. 검찰당국은 NEC의 실질적인 톱인 세키모토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회장물갈이가 결국 NEC 내부로부터의 자정(自淨)에 의한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세키모토회장은 NEC를 대표적인 하이테크기업으로 키워낸 공로자. 사장 회장을 합쳐 18년간 NEC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해 왔다. 94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실권을 장악해 왔다.이같은 사정들로 인해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았다. 세키모토 전회장이 상담역으로 섭정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경영진을 둘러싸고 이러한 소문이 나돈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장기집권의 전철 때문이었다. NEC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두 사람의 거물 경영자다. 그 한 사람은 NEC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바야시 고지회장(작고). 또다른 한 사람이 세키모토 전회장이다.고바야시 회장은 76년까지 12년 동안 사장을 맡았다. 그후 88년까지 회장으로 재직했다. 「C&C」 이념을 제창, 네트워크시대를 선도했다. 컴퓨터와 통신을 융합시킨 장본인으로 추앙받았다. 세키모토 전회장은 NEC를 정상에 올려놓은 장본인. 세키모토는 국내외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톱세일즈에 나섰다. 전신전화공사의 하청기업으로 출발, 정치권에 민감한 체질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그는 사장 회장 재임기간중 연결기준 매출을 5배 가까이나 키워냈다. 리펑중국총리 등과의 인연을 무기로 반도체일관생산 휴대전화생산 등 중국현지의 대형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도 했다.이들은 NEC 신화창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야마가타NEC, 나가노NEC 등 지역별 생산자회사를 그룹내로 끌어들였다. 「어떤 자회사도 예외없이 육성, 시너지 효과를 추구한다」는 NEC류의 홀론경영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최소한 고도 성장기까지는 이 수법이 먹혀들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이 성숙해지고 국제경쟁이 격화되면서 홀론경영은 오히려 부담을 안겨주고 말았다. 효율경영 추구라는 흐름에 역행하고 만 것이다.홀론경영으로 문제를 일으킨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PC자회사 팩커드벨NEC의 부실화. NEC는 99년 PC조립업체인 팩커드벨에 1억7천만달러를 출자했다. 미국에서 연간 4백만대를 판매하고 있는 팩커드벨을 기반으로 「세계최대 PC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나선것이다. 그러나 가격파괴 바람이 몰아닥치면서 96년부터 4년 연속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 5년동안 오히려 20억달러를 투입했다. 거꾸로 자회사 관계를 더욱 다져나간 셈이다.◆ 중국 프로젝트 폐지·인력 감축 추진내부로부터도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각사가 개별적으로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상장할 수 있는 유망주는 없는가.』… 90년대들어 이러한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장기집권이 결국 「부(負)의 유산」으로 되고 만 것이다. NEC의 문제는 두 거물경영자가 무려 30년 동안에 걸쳐 만들어온 풍토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NEC가 대담한 개혁에 나섰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가네코사장을 상담역으로 물러나게 했다. 취임 5개월만의 경질이었다. 니시가키사장 사카키회장체제를 발족시켰다. 경영혁신위원회도 설치키로 했다. 니시가키사장은 이미 첫 작품을 내놓았다. 3월31일 계열 대형전자부품회사인 일본전기정기의 지분(47.7%) 전량을 영국 BTR시비 산하의 네믹 람다에 매각키로 했다. 취임 5일만에 일본전기정기를 구조재구축 1호로 선택한 것이다.세키모토 전회장이 추진해온 중국 현지 인터넷접속 서비스사업 프로젝트도 전격 폐지했다. 부실화로 제2의 팩커드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세키모토 전회장 그늘로 부터의 탈피를 시도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앞으로 3년동안 1만5천명의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고정자산 및 보유주식의 매각 등을 통해 유이자 부채 6천억엔을 줄일 계획이다. 팩커드벨NEC의 재편을 포함, 부실사업에도 손을 댈 예정이다. 최근 백색가전사업을 정리한 NEC-HE(홈일렉트로닉스)의 흡수도 검토중이다. 시스템인테그레이션(SI)사업을 추진중인 자회사를 중심으로 앞으로 3년동안 5~6개사를 상장시킨다는 목표다.NEC의 연결부채는 2조4천억엔에 이른다. 재무쪽 구조조정도 물론 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바로 부의 유산의 청산이다. 40년 동안에 걸친 권력의 독점으로 인해 발생한 기업체질을 개혁해야 한다. 코퍼리트 거버넌스(기업통치)를 재구축하지 않고는 NEC가 결코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니시가키 사장은 『제로로부터 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창업 1백년을 맞아 시도되는 과거와의 결별을 통한 「신생NEC」의 탄생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