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은 단기금융시장 금리를 대표하는 콜금리가 0.02%를 밑도는 이상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중개업자가 갖는 수수료를 빼면,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장기금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시적이라지만 작년 9월, 10년만기 금리가 0.64%를 기록한 것은 세계금융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 뒤 국채의 증발 등으로 1.5% 수준까지 회복되긴 했지만 장단기 금리를 둘러싼 일본인들의 우려와 근심은 날로 깊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사실 제로금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제로금리는 「제로비용」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야할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다. 그 전형이 계약형 저축기관의 파멸적 타격이다. 은행은 예금금리를 낮추어 간단히 손실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증 또는 계약이율에 묶여 있는 생명보험사나 연금 기금 등의 공적기관은 그 존립근거가 위태로워진다. 또 제로금리는 저축자 또는 자금투자가로부터 자금 차입자에게로 소득을 강제이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이는 소득재분배 정책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고령자와 연금생활자를 최대 희생양으로 부상시키게 된다.물론 제로금리는 일본 당국의 정책적 결단이기도 하다. 일본 대장성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일정기간 동안 제로금리를 용인할 의사를 갖고 있다. 10년 가까이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는 문자 그대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숱한 부양책을 써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저금리 정책은 일본 금융당국의 마지막 승부수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제로금리로 인해 일본의 설비투자나 개인소비가 살아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신용경색도 그다지 완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초저금리가 소비의 회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최대의 이유는 일본인 특유의 금융자산 형태에서 비롯된다. 저축예금의 비중이 높은 일본인들은 금리하락으로 금융소득이 줄어들자 오히려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비투자의 경우도 전형적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차입금리가 제로일지라도 도매물가가 마이너스 4%를 기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실질금리 부담은 높은 편이다.결국 금리인하는 디플레만 가속시킬 뿐이고, 유동성 공급은 신용확대로 연결되지 못한다. 금융관행상 현재 일본의 신용경색은 정확하게 「대출 경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일본 고용의 70%를 창출하는 중소기업 대부분에 제로금리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 작년 신일은법 개정으로 독립성이 강화된 일본은행은 저금리정책의 고삐를 더욱 단단하게 죄고 있다. 지난 3월, 신용창출을 위해 국채를 인수해 달라는 정치권의 권유를 간단히 일축해버린 것이 비근한 사례다. 따라서 요즘 일본 금융계에서는 이번 경제위기를 「정책불황」으로 규정하고, 일은의 과도한 금리중시 정책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있다. 당초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과감하게 노선을 바꿔야 하는데도 일종의 권위주의 때문에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본은행의 「고집」은 딱해보이는 구석이 많다. 자칫 일본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경우 우리가 받는 타격은 막대하다. 가뜩이나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재차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일본은행은 자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경제회복을 위해서라도 보다 유연한 대응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