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꿈 접고 컬러 이미지 연출가로 변신 '자기만의 색' 가져야..

그녀는 일단 화려하다. 탤런트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의상뿐만 아니라 화장도 무척 세련돼 보인다. 체구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 전체가 체계적으로 연출된 모습 같다. 외모만 보고 그녀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말을 시켜보면 그녀의 진면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색깔이나 이미지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의 생각을 청산유수 같이 쏟아낸다. 「매일 아침 아무 색깔이나 입으면서 성공을 꿈꾸느냐」는 도발적(?)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컬러 이미지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경씨(42). 전형적인 프로의 냄새를 풍기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금방 알수 있게 연출하고 다닌다. 자기만의 색깔이 없는 사람은 결코 큰 일을 할수 없다는 철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씨는 국내에서 색채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분야에 뛰어들어 개척했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기업이건 개인이건 나름의 컬러를 가져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아주 어려웠던 시절은 있었다. 지금이야 프로로서 이름을 날리지만 한때는 많은 좌절을 겪었다.대학에서 미대를 다녔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갔지만 화가로서 자신의 재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허무감마저 들었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평범한 주부로서 하루하루를 살기도 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작정 거리를 누빈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저 편에서 용솟음칠 무렵 뉴욕에서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이 색채를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만큼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 할수 있으리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귀가 번쩍 뜨였고, 신천지를 찾은 느낌이었다.◆ 기회 있을때마다 색채 중요성 홍보이후 김씨는 가족들을 설득해 동의를 얻은 다음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디자인과 패션, 분장, 피부미용 등을 차례로 배웠다. 심지어 벨기에와 독일 등을 돌아다니며 코디를 배우기도 했다.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기관이나 전문가가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다른 분야와 달리 색채의 경우는 워낙 응용분야가 많아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80년대 후반 부푼 꿈을 안고 국내에 들어온 김씨는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공부하고 배운 것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발로 뛰며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각종 문화센터를 돌아다니며 색채의 중요성을 알렸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방송에도 출연해 홍보했다.『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색채에 눈을 떠 자기 나라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그린, 프랑스의 청보라색, 이탈리아의 황금색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나마 조상 때부터 내려온 자연의 색이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급격히 무너져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색깔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다니며 색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정부 차원에서 각종 시설물이나 도시 경관에 대한 통일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정부 기관에 가서 강연을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나름의 색채를 가져야 하고 이를 마케팅에 적극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품의 특성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와도 잘 맞는 색을 골라 마케팅에 활용하면 예상외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20대, 30대, 40대가 좋아하는 색이 각기 다릅니다. 또 사회적인 분위기나 제품의 성격, 또는 크기에 따라서도 색을 달리 써야 합니다. 일례로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연핑크나 노랑, 주황, 오렌지색 등이 아주 좋습니다. 달콤한 느낌을 주는데다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이런 면에서 일본기업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 각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원색의 제품을 내놓는 것도 사실은 철저하게 색채를 연구해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김씨의 말을 듣다보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이다. 앞서 말한, 정부든 기업이든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처음부터 색깔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맞는 색을 골라내야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베스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으면서도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미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어울리는 컬러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기만의 센스와 감각을 살릴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 이를 적극 살려야 합니다. 또 하나 분위기에 맞춰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 너무 튀는 옷을 입으면 상대에게 부담을 줘 실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지요.』김씨는 요즘 대학(숙명여대 경영대학원)에도 출강한다. 색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전달한다. 일주일에 3일은 방송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우는데도 열정적이다. 특히 색채와 마케팅을 연결시켜 최고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