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재정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막대한 재정적자가 제2의 경제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정부는 지난 8일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 주재로 중산층 보호를 위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나온 해법은 2조5천억원 안팎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지원에 나선다는 것.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두번의 추경을 짜는 셈이다.이날 기획예산처는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규모를 발표했다. 규모는 1백6조원. 올해 예산보다 24%나 늘어난 액수다. 올해 삭감된 공무원 수당도 내년엔 어떤 식으로든 보전해줘야 할 처지다. 금융 구조조정 추가비용 이자분과 부실화된 4대 연금 등 불청객들도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산넘어 산이다.IMF 체제 이후 나라빚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나라살림 가계부의 적자 규모는 21조3천억원. 올해도 22조∼23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국민 1인당 조세부담률도 눈덩이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 9조7천억원의 국채를 발행한데 이어 올해도 13조5천억원의 국채발행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동안 누적된 국가채무잔고(국채잔액+국내외 차입금)는 올해말 96조원이 넘어설 전망이다. 오는 2002년말엔 나라빚이 1백6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늘어나는 것은 나라빚만이 아니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 1인당 조세부담률을 올해 19.8%에서 내년 20.5%, 2001년 21%, 2002년에는 21.5%선으로 단계적으로 높여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 1인당 조세부담액은 올해 1백87만원에서 내년엔 2백만원을 넘어선다. 이어 2001년 2백29만원, 2002년엔 2백53만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4인 가족의 경우 7백32만4천원이던 가구당 조세부담액이 2002년에 1천12만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예산은 무조건 타서 쓰고 보자」는 정부 내부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현상은 재정적자를 늘리는 범인이다. 그러나 더 큰 주범은 줏대없는 예산당국의 정책기조다. 『세입추세를 봐가며 세출규모 증가율을 신축적으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게 사상 처음으로 1백조원이 넘는 각 부처의 내년 예산요구서를 받아든 예산당국의 반응이다. 적자재정을 줄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질 않는다. 구멍난 곳이 생기면 재정으로 틀어막는 구태가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다.정부는 내년부터 재정적자를 축소해 2006년에 균형재정을 회복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조세수입을 2002년까지 연평균 10.5% 늘리고 세출은 연평균 경상성장률 8.6%보다 낮은 6%대로 억제할 방침이다. 세출을 적게 늘리고 세금을 많이 거둬 적자를 축소하는 고전적인 대책이다.2006년에 재정이 균형을 이루겠다고 하지만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때부터는 국민의 세금으로 빚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이나마도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적자재정을 탈출하는데 3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만큼 재정적자는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재정적자가 늘면 국채가 증가해 국가위험도(Country risk)가 높아진다. 이는 정부 및 기업의 국제 자본시장 접근을 어렵게 하고 대내외 충격에 대한 체질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다. 국채발행에 따른 이자부담은 재정적자를 늘리는 동시에 경상수지를 악화시킨다.또 적자보전을 위해 다시 국채발행을 늘리고 다시 이자부담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브라질에서 경제위기가 계속 재발되는 것도 만성적인 재정적자 탓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재정이 정치논리에 따라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조속히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남미처럼 재정적자에 따른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