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성공스토리를 엮고 있는 젊은 여사장들 가운데는 대기업 의류업체에서 근무했던 디자이너 출신들이 많다. 두산타워 지하1층에서 여성의류 토털매장 「뽐(ppom)」을 운영하고 있는 박혜경 사장(28)도 그중 한명이다.그녀가 두산타워에 점포를 낸 것은 지난달초. 이 상가에 모습을 드러낸지가 한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변 상인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옷장사에 대한 관(觀)이 서있는데다 감각 또한 남달라서다.여성의류 전문매장인 지하 1층을 눈요기삼아 언뜻 둘러보면 「뽐」은 여느 점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점포에 들러 이물건, 저물건 고르다 보면 「다른 점포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금방 와닿는다. 다름 아닌 「뽐」에는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같은 층에서 같은 의류를 파는 상가에서는 제품디스플레이가 승부를 좌우합니다. 소비자들이 「그 옷하면 바로 그 점포」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그래서 박사장은 두산타워에 입점하자마자 「여행」을 주제로 점포를 꾸몄다. 피서지에서 여성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소매없는 원피스 등 여행과 관련된 옷을 모두 전시한 것이다. 대기업 의류업체 근무경험을 살려 디자인과 원단구입 등은 점포 임대 계약에 앞서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했음은 물론이다.반응은 의외로 빨리 왔다. 개점 시기가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는데다 옷 또한 여행을 주제로 정한 탓에 「뽐」을 찾는 신세대 여성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지금까지 하루 평균 50여만원어치의 옷을 꾸준히 팔았다. 외형만을 놓고 볼 때 다른 점포매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장사를 시작한지 한달밖에 안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사장 장사 수완은 남다른 데가 있다.그녀가 단기간내 두산타워에서 나름대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데는 옷만을 고집해 살아온 일관된 경력이 큰 힘이됐다. 95년 경희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박사장은 패션전문잡지 마리끌레르 보조진행요원으로 취직했다. 디자이너가 아닌 기자로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패션에 관련된 설문조사도 하고 잡지사생활도 재미있더군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만의 옷을 만들어 보고싶은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그 옷하면 그 점포’ 디스플레이로 승부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과감히 마리끌레르에 사표를 냈다. 두번째 직장은 신원. 씨디자인팀 디자이너로서 재미를 붙여갈 즈음 또다시 갈등이 일었다. 밤새워 디자인한 옷이 몇단계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변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또다시 사표를 내고 코오롱으로 옮겼으나 자신만의 옷을 만들고자 하는 꿈은 성취되지 않았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잘 것 없어도 자신의 점포를 갖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두산타워에 점포를 임대하고 동대문신화창조에 뛰어들었다.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친구의 격려와 그동안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박사장은 값싸고 질좋은 원단은 어디가면 구입할 수 있고 봉제를 잘하는 하청공장은 어느 곳인지 꿰뚫고 있다. 이것은 박사장 경쟁력의 원천이다.『지금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가을부터는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 차별화된 이미지를 이곳 동대문상권에서 확실히 심을 생각입니다. 여건이 되면 제 브랜드도 개발, 수출에도 나설 거구요.』20대후반에 아직도 얼굴에서 소녀티가 물씬 풍기는 박사장의 당찬 포부다.(02)3398-7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