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과 몸이 부대끼는 북적임. 활어처럼 팔딱이는 그 생기에 시장은 탱탱한 탄력으로 튀어 오르듯 살아난다. 그 시장의 한 구석에서 야무지게 비즈니스를 펼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꿈을 실현해 가는 젊은 여사장이 있다. 밀리오레 2층에서 「뻐꾸기」라는 숙녀복매장을 운영하는 정세화(28)씨다. 직접 옷을 디자인해 공장에 주문을 주면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그 옷을 다시 가게와 도소매상인들에게 판매한다. 한달 평균 20여건 정도의 옷을 디자인해 신제품으로 선보인다. 세미정장과 캐주얼의류가 전문으로, 주고객은 10대후반부터 20대초반의 젊은 여성들이다.지난해 가게를 임대해 사업을 시작한 정씨는 원래 사입자로 옷장사와 인연을 시작했다. 대학전공(가정학)보다는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인공부에 열중할 정도로 옷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차에 선배의 소개로 사입자생활을 시작했다. 사입자는 옷에 관한 감각이 떨어지거나 지방과 같이 의류구입 등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의류상들을 대신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디스플레이까지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패션흐름에 대한 한발 앞선 눈썰미와 시장분석능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사입자의 능력에 따라 의류도매상이나 소매상들의 매출이 고무줄처럼 줄거나 늘 정도로 시장에서는 사입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사입자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시장상인들이 억단위의 외상을 주는 일이 허다할 정도』라고.정씨는 이런 사입자생활만 6년 이상을 했다. 지방의 매장과 백화점매장 등이 주고객이었다. 실력있는 사입자로 인정받으며 벌이도 쏠쏠했지만 고된 일과의 연속이었다. 팩스로 주문을 받으면 새벽 1시께 시장에 나가 물건을 구입하고 바로 지방으로 내려가 진열까지 끝내야 했다. 일주일에 5일은 지방출장이었으며 하루 수면시간이 3~4시간에 불과했다. 그것도 밤낮이 뒤바뀐. 시간이 나더라도 편히 쉴 수 없다. 명동 신촌 종로 압구정동 강남역 등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시장분석을 해야 했다.그러던 중 지난해 제법 규모가 큰 거래점포가 부도가 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예 가게를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거래하던 시장상인들도 권하던 일이었다. 마침 새로 분양하는 밀리오레를 구경차 들렀다. 『매장의 구성이나 인테리어 등이 맘에 드는데다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에 정씨는 바로 가게를 임대하고 원단을 주문해 사업을 시작했다. 결혼자금으로 푼푼이 모아두었던 1천5백만원이 창업자금의 전부였다. 다행히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옷이 반응이 좋았다. 그후 장사는 승승장구했다. 『이제껏 만든 옷 가운데 실패작은 없었다』고.혼자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직원까지 두고 『월매출액이 웬만한 장사 뺨칠 정도이며, 월수입도 샐러리맨 봉급보다 낫다』는 정씨는 또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디자인중심에서 질 좋은 원단과 철저한 마무리로 다시 승부수를 던질 생각입니다. 아울러 지금은 소매중심이지만 앞으로 도매위주의 점포를 하나 더 내고 나아가 LA 등에 점포를 내서 옷을 수출할 계획입니다. 지금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교포나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시장은 열심히 일한만큼 대가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2평 남짓한 점포를 횃대 삼아 비상을 꿈꾸는 정씨의 포부다.(02)3393-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