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ㆍ석유보다 오염적어 사용 증가 .. 가스 업체 인수전 치열

최근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거대 석유회사들간의 합병 움직임을 무색하게 만들 또다른 움직임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 셰브론과 텍사코의 합병에 대한 소문보다 더 흥미를 끄는 얘깃거리는 로열더치셸같은 거대 석유회사들이 엔론을 비롯한 거대 전기회사를 합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사실 몇년 전부터 이런 얘기들이 나돈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사항들까지 밝혀지고 있다. 셸과 텍사코, 엑손 등의 거대 석유 회사들은 수년 동안 전력사업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이 분야에 큰 돈을 쏟아붓는 것을 주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회사들이 전력생산 분야에 완전히 뛰어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스와 전기공급 부문의 소매시장에 뛰어들 준비는 대개 갖추고 있는 형편이다.가스 수요량이 증가하면서 에너지 업계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제까지 유정에서 부차적으로 나오는 가스를 태워버리곤 했던 석유 메이저들도 스스로가 가스 메이저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선진국에서 발전용 연료로 가스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미국과 유럽의 가스 및 석유시장의 집중화 경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에너지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미국 전기회사 엔론의 제프 스킬링 회장은 에너지회사의 정의가 빠르게 변해 왔다고 얘기한다. 50년 전에는 에너지회사란 석탄회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20년 전에는 그것이 석유회사로 바뀌었다. 지금은 석유와 가스 회사가 에너지 회사로 취급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엔론같은 가스 전기회사가 에너지회사라는 명칭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엔론은 가스 파이프라인 관련 산업으로 출발했지만 지난해 전기 사업으로도 가스만큼의 거래실적을 올렸다.최근까지도 미국의 지역 업체에 불과했던 무명의 도미니언리소시즈의 토머스 캡스 회장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이 회사는 라이벌인 콜럼비아에너지와 경합한 끝에 가까스로 가스 정제회사 컨솔리데이티드내추럴가스를 차지했다. 이 계약의 성공으로 2백40억달러 가까운 자산을 가진 미국 제 4위의 가스·전기회사가 탄생했다. 캡스 회장은 새로 전개될 에너지 시장에 기대가 크다. 그는 가스가 채굴돼 목적지인 소비자에까지 전달되는 과정에 관련된 모든 범위의 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거대 석유회사들은 이런 신규 진입업체들의 움직임에 특별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들도 가스에 큰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생산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가스수요는 해마다 2%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앞으로 10여년 동안의 석유수요 예상증가율의 두배에 이르는 것이다.(도표참조)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도 석유나 석탄보다 오염이 덜한 가스의 소비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가스는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교토의정서의 최대수혜자가 될 전망이다.가스와 전기시장은 미국과 영국에서 상대적으로 더 빨리 통합되는 추세다. 미국의 신규 전기생산시설의 3/4 정도가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앤더슨컨설팅은 2010년까지 현재 10∼15% 수준인 유럽 전력시장의 가스의존도가 40%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이런 변화를 초래한 최대 요인은 규제완화다. 미국에서 가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장에서 거래된다. 나라별로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전력부문의 규제완화는 대체적 추세다. 유럽과 미국에서 단계적 전기자유화가 올 초부터 시작됐고 가스는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가스 전기를 대상으로 하는 현물 및 선물시장도 대서양 양안에서 발전돼 가고 있다.앤더슨컨설팅의 질 라이더는 미국의 30대 가스·전기 회사중 14개가 지난 2년동안 합병과 관련된 움직임을 보였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은 10여년 전에 이 분야를 자율화시켰다. 지난 5월 말 영국은 소매전기 시장도 완전경쟁체제로 만들었다.따라서 「통합된 가스 메이저」라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회사도 출현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부문에서부터 가스전(田)에까지 영역을 망라하는 이런 회사들은 당연히 석유산업을 잠식한다.영국 내셔널파워의 그레이엄 브라운 사장은 새로 뛰어든 업체들이 거대 석유회사들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소비자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회사들은 가스를 그 자체만의 상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서비스를 같이 붙여 팔아 부가가치를 더 창출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엔론같은 회사는 대규모 에너지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데 이력이 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공립 대학들이나 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같은 대규모 소비자들은 전기, 공기조절 등에서부터 경영위기 관리에 이르기까지 이 회사와 장기수급 계약을 맺었다. 에너지산업에서의 집중화 추세 때문에 석유회사들이 전력회사를 사들이는 현상이 자주 벌어진다.2천5백메가와트의 전력을 자체생산하는 텍사코는 이보다 두배 많은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이 회사는 전기와 가스거래를 통해 연간 3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윌리엄 위커 수석부회장은 텍사코가 단순히 합병된 석유회사가 아니라 세게를 무대로 한 에너지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회사의 전기부문 전략을 「인프라스트럭처 플레이」라고 설명한다. 최근들어 70여개 나라가 국내 전기·가스부문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이를 사기업화하고 있다. 그는 이런 움직임은 텍사코가 가스전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기존의 점유율을 강화할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는 규제완화에 따른 변동으로 미국 발전시설의 절반 이상이 2010년까지 경영진 교체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한다.셸은 이보다 더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전력생산용 연료에 주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의 주창자인 월터 반더 비즈버 회장은 전력사업에 손을 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년전 셸은 전력생산업체 인터젠 지분의 절반을 인수했다. 인터젠은 올해 북아메리카 곳곳으로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셸은 미국 가스파이프라인회사 테자와 북미 제 5위의 가스판매업체 코럴을 손에 넣었다. 셸은 천연가스를 직접 가계 소비자들에게 파는 방법으로 브랜드를 강화시키고 있다.하지만 석유와 가스 사업이 전기생산과 공급부문과는 별로 연관이 없고 통합해 봐야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기와 가스사업에 참여하는 업체가 너무 많고 규제도 심한 데다, 석유와는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석유회사들이 참여한다 해도 큰 재미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그러나 셸의 월터 회장은 이런 회의론을 일소에 부친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가스는 물론 이것과 관련한 「토털 에너지서비스」를 공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인터젠을 통한 전력생산만이 아니라 대규모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관련 서비스를 모두 포괄하는 서비스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에너지 관련 사업분야는 앞으로 계속 통합될 전망이다. 실제로 이런 움직임은 관련 부문의 기업들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전기생산업체들이 『가격만 맞는다면 석유회사들과의 통합을 꺼려할 이유가 없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런 추세는 계속 가속도를 붙여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