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경쟁력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즉 미국의 노동시장은 한국에 비해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경쟁력 역시 앞선다는 논리다. 한국에서는 해고가 쉽지 않아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세계적인 인사관리 컨설팅회사인 타워스페린의 박광서 사장은 『정리해고 후 회사에 남은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으며 자의든 타의든 해고된 직원은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며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그렇다면 미국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을 해고해야 할 때 어떻게 할까. 물론 미국 기업들도 해고한다. 아마도 국내 기업들보다 훨씬 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인간적으로」 한다는 점이 국내 기업과의 차이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과 미국의 경쟁력을 논할 때 지적해야 할 점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장이 유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시스템의 존재 여부이다. 다시말해 정리해고가 있어도 회사에 남은 직원이나 떠난 직원이나 회사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않고 남은 직원은 정리해고 전과 마찬가지로 일에 몰두하고 떠난 직원은 다른 생계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시스템에서 한국과 미국 기업 사이에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이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퇴직자 재취업 컨설팅 서비스)」제도다. 아웃플레이스먼트란 감원 대상 직원들이 자신의 경력과 능력, 좋아하는 일 등을 파악해 새로운 직업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원하는 직업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서구 기업들은 직원들을 해고할 때 전문적인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에 감원 대상 직원들을 맡겨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물론 비용은 기업이 부담한다.이런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통해 감원 대상 직원들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경우 규모가 큰 7개 회사를 비롯해 백여개의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가 활동하고 있다.국내에서도 IMF 이후 구조조정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2개의 미국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가 상륙, 본격적인 영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DBM코리아(02-3486-3200)와 리 헥트 해리슨(02-555-8500)이 그 주인공들. 이 두회사는 기업 대상으로만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즉 개별적으로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며 인원수에 관계없이 기업측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와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기업 입장에서는 2가지, 퇴직자의 입장에서는 4가지다. 우선 기업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에 대비한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계획과 구조조정에 따른 변화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서비스를 통해 기업은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으며 남아 있는 직원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다.◆ 적성 검사, 경력 개발로 재취업 도와퇴직자의 입장에서는 다음의 4가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첫째, 감원 대상 직원들은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에 마련된 사무실과 책상 전화 컴퓨터 등의 시설들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를 통해 경력 관리를 받을 수 있다. 경력 관리란 지금까지의 경력을 검토하고 자신의 핵심 역량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를 분석, 이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직업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셋째, 재취업을 준비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는 경력 관리 결과에 따라 목표로 하는 직장과 업무를 검색, 리스트로 작성해주며 이들 기업에 맞는 이력서를 준비하고 인터뷰를 연습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마지막으로 구인 정보를 제공하고 재취업이 가능한 회사에 퇴직자를 홍보해 준다.이런 서비스를 받는데 드는 비용은 일반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전직장에서 받았던 연봉의 15∼20%다. 그렇지만 서비스를 받는 기간이 3개월이냐 1년이냐에 따라 비용은 크게 달라진다. 보통 한 사람당 수백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면 맞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보니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감원 대상 직원들의 경우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느니 그 돈을 퇴직금으로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기업들도 아웃플레이스먼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이에 대해 김규동 DBM 코리아 사장은 『미국의 포천 5백대 기업 중 98%가 DBM의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이용했거나 현재 이용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아웃플레이스먼트를 통해 잔류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어 좋고 감원 대상 직원들은 쓰면 없어지는 돈을 받는 것보다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 계획을 새로 세울 수 있고 직업까지 구할 수 있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가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한다.물론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들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재취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세계 36개국에 1백75개 사무실을 두고 있는 DBM의 97년 조사 자료를 보면 전체 고객의 80%가 재취업했으며 15%는 창업했고 2%는 기존 회사에 재취업해 97%가 새 진로를 찾는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재취업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평균 4개월인 것으로 조사됐다.이학범 리 헥트 해리슨 부사장도 『미국에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퇴직자들이 혼자서 직업을 구할 경우에는 일주일에 평균 10∼15시간을 직장을 알아보는데 사용하지만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으면 30∼40시간을 구직에 소요,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데 훨씬 더 적극적이고 그만큼 재취업 성공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미국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는 처음에 군인들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의 형태로 출발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취직을 도와주면서 개인 대상의 재취업 컨설팅회사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다 심리학자들이 개인별로 적성에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검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재취업 컨설팅에 더하면서 현재와 같은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가 완성됐다.지난해 10월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DBM은 1967년에 설립돼 미국에 아웃플레이스먼트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4천2백개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DBM코리아는 고객의 경력과 역량을 찾아주고 재취업을 상담해주는 8명의 컨설턴트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 기업을 포함해 15개 기업의 3백52명에게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했다. DBM코리아의 김규동 사장은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미국 세인트 루이스 대학에서 마케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리 헥트 해리슨은 1974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회사로 1988년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인재 파견업체인 아데코그룹에 합병됐다. 리 헥트 해리슨은 현재 전세계에 약 1백10개의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국내에는 올 5월말에 상륙, 최근들어 본격적인 영업을 펼치기 시작했다.리 헥트 해리슨은 국내에서도 헤드 헌팅 회사와 인재 파견 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아데코 코리아의 자회사이다. 최정아 아데코 코리아 사장은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했으며 헤드 헌팅 회사인 유니코 서치에서 일하다가 94년에 헤드 헌팅 회사인 휴먼 서어치를 창업했다. 최사장은 최근 휴먼 서어치가 아데코 그룹에 인수되면서 아데코 코리아 사장으로 취임했다.★ 맞춤형 재취업-창업 지원센터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을 경우에는 감원 대상 직원들이 모두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의 사무실로 찾아가 이 시설들을 이용하며 차분하게 상담을 받기는 어렵다. 또 구조조정을 하는 회사가 지방에 있을 경우에는 감원 대상 직원들이 서울의 아웃플레이스먼트 회사로 찾아온다는 것도 쉽지 않다. DBM코리아는 이런 문제점에 착안, 각 기업이 요구하는 장소에서 요구하는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맞춤형 재취업-창업 지원센터(이하 CTC:Career Transition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CTC란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이 감원 대상자를 위해 편의 시설만 제공하고 여기에 필요한 모든 컨설팅 내용과 운영 프로그램은 DBM에서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규동 DBM코리아 사장은 『국내 기업들 중에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때 사내에 퇴직자 지원센터를 마련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운영 노하우가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간단히 말해 CTC란 기업의 퇴직자 지원센터를 DBM이 대리 운영해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한다.국내의 A라는 외국 기업은 지속적인 공장 자동화와 공장 합병에 따라 앞으로 4년간 수백명의 직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회사는 퇴직하게될 직원들의 진로를 마련해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던 중 DBM의 CTC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대규모 해고가 예정돼 있는 천안 공장에서 가깝고 퇴직자들의 왕래도 편리한 지역에 퇴직자 규모에 알맞는 사무실을 임대, 재취업 지원센터를 마련했다. 이 지원센터에는 DBM에서 파견된 2명의 컨설턴트와 1명의 직업 조언자가 상주하며 퇴직 예정자들에게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DBM은 천안 공장 인근의 1천2백18개 기업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 퇴직자들의 재취업이 가능한 기업을 선별해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A사에서 퇴직할 직원들을 홍보하고 있다. 일종의 개인 마케팅을 실시하는 것이다. 현재 A사의 CTC에 등록한 사람은 올해 퇴직될 예정자 96명중 81명. 하루에 등록한 사람들 중 10명 정도가 CTC에 방문하고 있으며 한 사람당 일주일에 평균 한번씩 CTC에 나와 상담을 받고 구직 정보를 얻고 있다.김사장은 『대부분의 퇴직 예정자들이 당장 재취업이나 창업을 원하는게 아니라 재충전 기간이나 전문적인 교육을 원하고 있다』며 『이 경우 적성 검사 결과와 지금까지의 경력을 고려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자문해주고 교육기관도 소개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사장은 또 『CTC는 국내 기업에 알맞는 아웃플레이스먼트 모델로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