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석탑 / 444쪽 / 1999년 / 1만5천원

뭔가 새로운 것이 등장하기 전에는 으례 혼돈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성서의 창세기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혼돈이 없으면 진정한 창조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혼돈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불편하거나 혼란스러울지 모르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어쩌면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도 따지고 보면 이런 혼돈의 일종으로 보인다.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혼돈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는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성장일변도의 틀을 벗어나 글로벌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이 책은 「80년대 이후 미국의 금융산업 구조조정과 오늘의 한국 금융산업」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편저자들은 미국 연방예금공사에서 지난해 1월 발간한 를 우리 실정에 맞게 번역하고, 여기에다 2편에서 자신들이 직접 「금융개혁 방안」과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제3의 물결」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 책을 구성했다. 전체적으로는 1편과 2편으로 짜여져 있다.이 책은 우선 1편에서 80년대 미국의 모든 은행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금융위기를 부문별로 살펴본다. 부동산 몰락과 은행의 흥망성쇠를 비롯해 저개발국가의 외채위기, 농업문제와 은행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어 각 금융기관별 위기의 실체를 보다 상세하게 훑어본다. 저축대부조합과 상호저축은행의 위기를 진단해보고 컨티넨털 은행 사태를 알아본다.금융위기의 지역적 요인도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텍사스경제의 거품과 붕괴를 시작으로 남서부 지역의 은행도산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북동부 지역과 캘리포니아의 은행위기도 깊이 있게 다룬다. 지역별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의 특성상 산업별 금융위기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2편에서는 금융산업 구조조정 방안이 눈에 띈다. 미국의 금융산업 위기관리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금융개혁 방안에 대해 편저자 나름의 의견을 개진한다. 특히 구조조정과 관련, 대등합병 대 흡수합병, 보완적 합병 대 동질적 합병, 동일지역 합병 대 타지역 합병 등의 예를 들어가며 바람직한 합병안을 탐색해본다.2편에서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량실업 등 노동자들이 헤쳐나가야 할 문제와 기업의 자구노력 등 동반자로서의 현대적인 노사관계를 논한 대목이다. 지금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며 또 기업은 이들을 어떻게 감싸안고 나가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마지막으로 「주주사원이 일으켜야 할 제3의 물결」도 편저자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소유가 노동을 지배해서는 안되고, 노동이 소유를 지배해서도 안된다는 전제 아래 주주사원을 중심으로 한 일하는 사람들이 개인간 노사간 상하간 부서간의 고립분열과 대립갈등을 넘어 소유, 노동, 경영이 통일되는 시스템으로 「제3의 물결」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지난 80년부터 94년까지 미국에서 일어났던 금융위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원인과 결과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 단계에서 미국과 미국금융기관들은 분명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우리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미 새로운 도약의 발판도 마련됐다. 일시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서로가 참고 견디면 더 나은 미래가 창조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