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하여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조카는 컴퓨터를 모른다. 대학입시에 포함이 안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인터넷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온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는 이런 시점에 학교에서 컴퓨터를 안 가르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은 정보화 시대지만 학교는 아직 농경시대 내지는 산업시대인 것이다.교육의 영어말은 education이고 여기에서의 edu는 끌어낸다는 뜻이다. 즉 교육이란 생각하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끌어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교육은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어넣으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집어넣으려면 학생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스로 생각하고 찾고 물어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교육제도를 보면 배가 부른 아이들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는 장면이 연상된다.막내딸이 4학년 때의 일이다. 몸을 꼬고 짜증을 내면서 숙제를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스무번 써오는 것이 숙제란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왜 반복해서 써오라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큰애는 포스터 숙제에 넌더리를 낸다. 불조심, 환경보호, 효도…. 한두번 포스터 숙제는 이해가 가지만 번번이 그 노동집약적인 것을 숙제로 내주는 이유는 납득이 안간다. 가끔 아이들 숙제하는 것을 도와주다 보면 시대는 크게 바뀌었지만 커리큘럼은 과거 그대로이고 양만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애들은 학교를 지겨워한다. 한마디로 호기심을 없애고, 공부는 지겨운 것이란 인상만 심어주는 것이다.물론 나이가 어릴 때는 주입식 반복교육이 중요하다. 현재 텔레토비 인형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다. 천천히 말하고, 반복해서 말하고, 자주 웃고 포옹하고.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체를 생각하게끔 하는 프로젝트성 숙제가 바람직하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숙제도 자주 등장한다. 일정한 예산을 주고 이 범위 내에서 어느 지역을 공원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것을 수행하다 보면 여러 문제들이 나타나고 이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공원 내 상가를 어떻게 분양할 것인지,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 물론 정답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토론하게끔 하면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다.이런 식의 교육은 물론 대입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시스템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현제도하에서도 얼마든지 조금씩의 변화는 시도할 수 있다. 먹기 싫어하는 밥을 억지로 먹이는 현재 틀에서 애들로 하여금 배고프게 하고 스스로 밥을 찾게끔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미있게 하고 그 가운데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초등학생은 재미있게 모여서 놀게 함으로써 인성발달에 초점을 두고, 중학교부터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게끔 하는데 중점을 두게 하고. 무엇보다 교육에서 재미를 잊어서는 안된다. 놀면서 배우기, 즉 열심히 놀다보니 어느새 많은 것을 배운 그런 것이 교육의 새로운 전략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