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 뜨는 요리사, 인간문화제 '꿈

『단 한번을 찾아오시더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자리잡은 일식집 「신성」. 서울 북창동의 일식집 「남강」 「미조리」등과 함께 오랜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음식점이다. 이 일식점을 20년째 꾸려오고 있는 문채환 사장(49)은 자신의 표현대로 「30년 동안 사시미 칼만 휘둘러온 칼잡이」다. 종업원이 13명으로 불어나고 한달 매출액이 5백만원 이상인 대형 일식점의 사장이지만 아직도 직접 생선을 손질하고 회를 뜬다.전북 고창출신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서울에 올라온 때가 지난 70년. 약관의 나이로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을 때였지만 서울의 척박한 인심은 그를 쉽게 반겨주지 않았다. 적수공권의 서울 입성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수많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날품팔이에 나설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없어진, 종로통 어딘가의 일식점에서 주방일을 맡은게 「칼잡이」로 나서게 된 발단이 됐다. 주방에서 하는 설거지등 허드렛일들이 고되었지만 문사장은 타고난 눈썰미로 회뜨는 법을 익혔다. 간단없는 수고와 각고의 노력 끝에 일식점 「신성」을 직접 운영하게 된 때가 지난 79년. 길지 않은 시간속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이뤄낸 작은 성공이었다. 전임 사장이 당시 종업원으로 있던 문사장의 성실성과 붙임성을 높이 산 탓이었다.물론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 문사장은 「격조」있는 맛과 손님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앞세워 서울 일대의 「VIP」 고객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단골손님으로는 지난 80년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었던 진의종 전국무종리를 비롯, 고건 서울시장,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 이현택 전장관등 정부 고위관료들이 줄을 이었다. 정계에서는 국민회의의 김상현 정균환 한화갑의원과 한나라당의 김덕룡의원등이 자주 찾았다. 인근에 밀집한 금융계의 단골들도 많다. 류시열 제일은행장, 나응찬 전 신한은행장, 위성복 조흥은행장, 박종원 대한재보험 사장 등이 그들. 탤런트 박규채씨를 포함해 연예계 인사들도 자주 들른다는 귀띔이다.「신성」이 이처럼 고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음식의 품질과 신뢰 때문이다. 문사장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신이 직접 시장에서 횟감을 고른다. 지난 20년간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께 남대문내 고급어시장을 찾는게 그의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그러다보니 횟감을 보는 그의 눈은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게 종업원들의 평가다.횟감은 대부분 자연산을 위주로 쓴다. 간헐적으로 양식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두툼하게 썰어져 나오는 광어 도미 농어 등은 대부분 지방에서 공수해온 것들이다. 문사장은 이들 재료를 자신만의 노하우로 처리, 깊고 담백한 맛을 낸다.『생선은 잡는 과정에서 피를 잘 빼야합니다. 그런 후에 깨끗한 수건으로 싸서 냉장고에 한시간정도 보관합니다.』신성이 다른 일식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선살이 단단하고 쫄깃쫄깃한 이유다. 청결 역시 문사장이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영업포인트다. 『비단 일식집뿐만 아니라 행주를 깨끗이 하는 것이야말로 음식점의 최대 윤리일 것입니다. 하루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종업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도 청결유지입니다.』이 때문에 저녁 무렵 신성의 테이블은 늘 손님들로 넘쳐난다. 특히 2층에 마련돼 있는 6개의 룸은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최대 15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큰 방은 인근 직장인들의 회식자리로 애용된다.◆ 음식 추가제공 종업원 제량으로문사장의 특이한 경영방식중의 하나는 한마디로 손님들이 실컷 회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소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4인기준으로 2~3인분만 시키면 다 먹고나서도 추가부담없이 회를 더 주문할 수 있다. 손님들이 말을 꺼내기 전에 종업원들이 먼저 갖다주기도 한다.『음식을 추가로 제공하는데 있어 종업원들에게 최대한의 재량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알아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야 손님들이 편안하지요.』이 덕분에 신성은 IMF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도 매출액 감소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물론 문사장이라고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면 「신성」을 비롯한 횟집들은 일제히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5년전 쯤, 한달여 동안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문사장은 전업을 고려했다. 낙지볶음집처럼 세균성 질환의 영향을 받지않는 업종을 생각해본 것이다. 이런 문사장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다름아닌 단골손님들의 간곡한 만류였다.『제가 횟집을 그만둔다고 하니까 몇몇분들이 적극적으로 말리고 나서더군요. 그중에 한분은 혹시 영업자금이 모자라서 그러느냐며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적도 있었어요.』문사장은 이때에야 비로소 일식집 운영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신성」이 고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정말 돈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님들의 정성이 얼마나 고맙든지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문사장은 요즘 홀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벅찬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 돈은 어느정도 벌어둔만큼 큰 욕심은 없단다. 대신 「신성」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일식점으로 키우겠다는, 또 다른 욕심을 갖게 됐다.『1~2년내로 서울 강남에 분점을 낼 계획입니다. 인간문화재중 회를 뜨는 요리사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어봤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오면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르도록 해볼 작정입니다.』문사장은 손님들로 피크를 이루는 저녁 8~9시께, 무게 10kg이 넘는 농어를 끌어안은채 홀안을 돈다. 산채로 억세게 퍼덕거리는 농어의 싱싱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분후, 손님들은 막 떠서 나온 농어의 회맛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문사장은 이런 「이벤트」를 통해서도 손님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맛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