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흔히 상임이사는 여당, 사외이사는 야당으로 비유된다. 사외이사는 「경영감시」란 태생적 사명을 가져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탓이다. 이 비유대로라면 (주)고합은 지금 「여소야대(與小野大)」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전체 이사수 10명)에서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니까 틀린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고합의 여소야대는 정치권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야세(野勢)」에 눌려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식의 결정을 내리거나 제역할을 못할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사외이사와의 협력을 통해 「투명경영」을 일궈내며 기업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워크아웃중인 고합은 지난 6월19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투명경영의 시동을 걸었다. 박웅서사장을 영입해 장치혁 이사회 의장과 공동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사외이사도 대폭 보강했다. 이춘무 전 (주)고제 회장, 정현식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세작 변호사, 이규완 전 국민은행 부행장, 그리고 채권 은행의 부장출신 3명을 사외이사로 포진시켰다. 채권단의 조언을 따른 조치였다. 상임이사는 장치혁 이사회 의장과 박사장, 그리고 김주만 부사장이 선임됐다.고합은 임시주총이후 이사회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본격적인 투명경영에 나섰다. 두드러진 현상은 사외이사들의 경영현장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 사외이사들은 선임된 이후 회사로부터 1주일에 한번꼴로 경영자료를 받아 검토해 왔다. 지난달 26, 27일에는 울산공장을 찾아 생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경영진 및 경영관리단과의 면담을 통해 경영 전반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일정도 마련돼 있다. 생산 영업 기획관리 등에 관한 구체적인 현황을 듣기 위해 회사측에 오리엔테이션 과정도 신청해 둔 상태다. 고합은 많은 자료를 수시로 보낼 수 있도록 사외이사들에게 팩스를 설치해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투명경영 토대될까 재계 관심사외이사들은 이런 활동을 토대로 정기 이사회에서 회사 경영전반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경영계획 이행실적을 분석·평가하고 실질적인 경영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고합이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할 수 있도록 의사를 결정하고 감독하는 실질적 경영참여자인 셈이다. 사외이사 보강이후 두번째로 열리는 오는 23일의 정기이사회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영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만큼 지난달 2일의 첫 이사회와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고합의 사외이사들은 앞으로 한달에 한번 이상 이사회에 참여하게 된다. 경영진 및 경영관리단과의 면담 횟수도 마찬가지이다. 고합은 『이사회 자료를 수시로 사외이사에게 제출하고 자료를 추가로 요청하면 즉각 제공해 사내 등기이사 이상으로 정보를 공유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가 사외이사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까 이사회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한 직원은 『과거의 이사회가 도장이나 찍어주는 통과의례식 기구였다면 지금은 회사의 모든 문제를 토의 결정하는 명실상부한 정책결정·감독기관』이라고 평가했다. 「고합의 모든 경영은 이사회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고합은 협력정신을 강조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회사명을 「높은 차원(高)에서 서로 합한다(合)(High Harmony)」라고 해석하고 이를 기업정신으로 표현할 정도다. 그래서 재계는 지금 사외이사와의 협력을 통해 투명경영을 이루고 있는 고합을 눈여겨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