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전 회사의 동료를 만났다. 그는 나와 관련되는 회사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안되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새로운 회사에 대한 정보는 내가 많이 알고 있어 여러 얘기를 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예전 회사에 대한 울분, 지금 위치에 대한 불안함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그 분야에 얼마나 고수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름대로 새 회사의 현황 등을 설명해도 그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자신의 얘기만을 한다.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얘기를 하고, 그는 그 자신의 얘기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김박사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자신이 박사 학위는 가졌지만 말단 직원 시절이었을 적에 회사 부사장과 면담할 일이 있었단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에게 친절히 인사를 하면서 비서에게는 30분간 전화도 연결하지 말고 아무 방해말라고 얘기를 하더란다. 그런 다음 회의실에 들어가 자신 앞에 앉아 정자세로 눈을 크게 뜨고 얘기를 해 보라고 하면서 메모도 하고 몇가지 질문을 하더란다. 30분간 김박사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그에게 여러 사항을 보고했단다. 그후로 부사장이 김박사를 찾으면 그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게 되었고 성의를 다해 경청을 하는 그의 태도에 지금까지도 그를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다.반면 어느 대기업 총수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불쾌감을 주었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간 그를 슬리퍼 바람으로 거만하게 맞이하고는 자신이 열심히 얘기를 하는데도 계속 딴청을 피더란다. 결재차 문을 연 직원에게 친절히(?) 결재를 하고, 주말골프 건으로 전화가 오자 한참 거기에 매달리고. 결국 그 만남은 그런 식으로 끝이 났는데 얘기를 제대로 안들어준 그 사소한(?) 일로 김박사는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듣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 학원은 있지만 듣기 학원이 없는 것을 봐도 우리들이 듣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잘 듣는다는 것은 스킬의 문제가 아니다. 또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진정한 경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먼저 변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에게 무언가 부족하고 상대방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경청을 하게 된다. 딴청을 하고 흘려 듣는다는 것은 『나는 너를 존중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특히 너에게 더 배울 것은 없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바바라 월터스처럼 유대인들 중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교육에서 유래한다. 어려서부터 유대인 부모들은 애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답답해도 꾹 참고 그들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다. 경청하는 부모밑에서 자연히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표현하는 훈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말 잘하는 것도 부럽지만 애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그들의 열린 사고가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