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Louis Vuitton), 르노(Renault), 시트로엔(Citroen), 라루스(Larousse), 마르텔(Martell), 뤼(LU)... 세계적으로 알려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기업들이다. 이중에는 프랑스혁명 이전인 18세기 초반에 설립된 기업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창업주의 이름과 기업 이름이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목전에 둔 현재 이들 기업의 소유주는 창업주 직계후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창업주의 직손들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시트로엔 자동차의 창업자이자 1차대전 당시 방산업체 최고 경영자이기도 했던 앙드레 시트로엔은 세상을 떠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프랑스산업 현대화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파리 시내 한복판에는 그의이름을 딴 시민공원도 있다.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의 3대 직손 필립시트로엔은 명문 국립행정대학원(ENA)을 졸업해 현재 교통부고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중 교통공학을 전공한 그는파리교통공사(RATP) 근무시절 세계 각지를 다니며 프랑스 지하철 운영기술 해외영업을 담당했다.그의 형 베르나르는 파리바 은행 이사로 있다. 동생 쟈크 앙리는 유명 상과대학 HEC를 졸업하고 프랑스 철강업체 위지노르와 정유업체 토탈의 베네수엘라 현지 지사장으로 근무중이다.이들 삼형제중 시트로엔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필립밖에 없다.심지어 베르나르는 조부의 경쟁사였던 르노를 운전한다. 더 이상 시트로엔 자동차와 그의 가족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끔 주말 이른 아침 시트로엔 직영 대리점으로 착각한 사람들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가 아직도 있다.갑자기 차에 문제가 있으니 당장 수리해 달라는 내용이다. 시트로엔 회사와 이름이 같다보니 생기는 에피소드다.앙드레 시트로엔이 창업한 시트로엔 자동차는 30년대 세계를덮친 대공황의 후유증으로 1936년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 경영권이 타이어 전문 업체 미쉐린으로 넘어갔다. 이어 얼마후 다시 푸조(Peugeot) 자동차가 재인수했다. 소유권과 경영권이 완전히 푸조사로 넘어간 이후 이들 직계가족은 시트로엔사 부근에 발 한번 디뎌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6월 쟝 마르탱폴츠 푸조-시트로엔(PSA) 회장은 시트로엔 직계가족을 올래지역 생산공장으로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 이유는 지난해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이 이들의 조부 앙드레 시트로엔을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주요 인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업체 라루스는 1백년이 넘는 기업이다.특히 이 회사는 외국어 사전 및 종합백과사전의 정확성과 고급인쇄로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유명해진 출판사다. 아직도 라루스는 사전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창업주 피에르 라루스의직계손들은 출판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 의학분야에서일하고 있다. 장손인 크리스티앙 올리에는 지적 재산권 전문변호사로 활동중 이다. 멀티미디어 출판전문 그룹 하바스로 넘어간 라루스 출판사는 이제 더 이상 이들 가족과 관련이 없다.◆ 소유주 바뀌어도 월급장이로 남아세계적 명성의 유명 피혁제품 업체 루이뷔통도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뷔통 가족의 소유가 아니다. 유명 고급제품 그룹인LVMH의 계열사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인수하기전만 해도 루이뷔통사에 근무하는 직계가족은 여러명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소유지분을 정리한 뒤 루이뷔통을 떠났다. 파트릭 뷔통만이 유일하게 아직도 루이뷔통에 남아 있는 직계후손이다. 이로 인해 그는 아직도 형제자매들로부터 공개적 외면을 당하고 있다. 남의 소유로 넘어간 회사에 계속 월급장이로남아 있다고 해서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또 조상의 직업을 계승하고 있는데 대한 자부심도 있다는 것이다.고급 코냑 생산업체 마르텔은 1715년에 설립된 기업이다. 「짐이 국가」라고 소리치던 절대군주 루이14세가 눈을 감던 해 쟝마르텔이 창업한 주조회사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왕과 귀족들도 만찬후 마르텔 코냑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르텔 코냑은 지난 88년 씨그램 그룹이인수했다. 창업주 쟝 마르텔의 8대손 파트릭 피리노-마르텔은현재 마르텔 코냑 이미지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새 소유주인 씨그램이 마르텔코냑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직계손이대외 홍보를 맡아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러지외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식용유 브랜드다. 현재 러지외르소유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대형 식품 업체인 베긴-세이 그룹이다. 창업주의 4대 장손 프랑스와 러지외르(55)는 전혀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러지외르사 최고 경영자였던 그의아버지는 아들이 기업을 물려 받을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부친에게 가업을 전승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금융분석가로 출발한 그는 엥도수에즈 은행에서20년간 근무했다. 지금은 아베이 비(Aveille Vie) 투자전문 은행의 이사로 있다. 게다가 은행가답게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러지외르사 지분은 베긴-세이 그룹에 팔고 그 돈으로 지중해호화 유람선 임대업과 기능성 화장품 전문 생산업체 데클레오르에 투자했다. 지금도 그는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 만족해 하고 있다.파트릭 러페브르-위틸은 프랑스 최대 제과업체인 뤼(LU) 창업주의 4대손이다. 1846년 프랑스 서부지방의 낭트에 첫 문을 연이 회사는 86년 대형 식품그룹 다논이 인수했다. 47년 부친이경영하던 뤼에 입사한 그는 67년 뤼가 브랭에 합병되지만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19년간 최고 경영자로 일했다. 올해 73세인그는 아직도 뤼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논 그룹의 비스켓해외영업 및 홍보관련 비정기 자문위원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식음산업 컨설턴트 회사를 경영하는 그는 시간이 있을때 마다 전국의 도서관과 고문서보관소, 헌책방을 돌며 뤼 제과회사의 흔적을 찾는다. 몇 개월전엔 이렇게 수집한 뤼제품광고전단과 포스터, 엽서, 신문, 잡지를 모아 증조부의 고향인낭트 시립 박물관에서 과자의 역사란 전시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기업의 역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광고사 1백50년도 동시에 조명했다고 해서 호평을 받았다.그렇다고 모든 창업주의 후손들이 이들처럼 자신들의 이름에긍지를 갖고 사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 경우가 1898년 르노자동차를 설립한 루이 르노의 자손들 이다. 지금 파리에 살고 있지만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이들이 뭘 하는지도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르노자동차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점령군에 협력한 죄로 45년 국유화됐다. 이들은 프랑스 최대 자동차메이커로 부상한 르노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하루 아침에가족재산을 몰수당한 것을 생각하면 조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주위로부터 나치 협력자의후손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지난해 르노 자동차는 창사 1백년 기념 행사를 성대히 가졌다. 그러나 르노사는 창업주직계손 어느 누구도 초청하지 않았다. 친독파의 후손을 파티에 초대해 행사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전 부분 민영화된 르노사의 현재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의 후손 루이 슈바이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