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인사 공감대 형성, 은행ㆍ공기업ㆍ민간기업 앞다퉈 이용

보통 은행장은 행장추천위를 통해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세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은행장 임명 이후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온 것도 이런 투명하지 못한 절차 때문이었다. 은행이 정부에 끌려 다니는 관치금융도 따지고 보면 이런식의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었다.하지만 이런 관행에 쐐기를 박는 일이 최근 들어 시도되고 있다. 일례로 올해 새롭게 출범한 한빛은행의 경우 행장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기관인 헤드헌터의 추천을 통해 뽑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수없는 일이었고, 타성에 젖었던 금융계에는 하나의 쇼크였다. 결국치열한 경합 끝에 김진만 당시 한미은행장이 최종 낙점을 받아 한빛은행장 자리에 올랐고, 업계에서는 과정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투명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조흥은행 역시 한빛은행과 같은 절차를 밟아 행장을 선발했다. 헤드헌터를 통해 1차와 2차로 나누어 예비후보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한다음 최종 후보자 3명 가운데 개혁성과 도덕성, 국제감각, 검증된실적 등을 토대로 행장 대행을 맡고 있던 위성복 행장을 최종 선발했다. 결과적으로 내부 후보가 뽑혔지만 외부 전문기관이 선발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한빛은행이나 조흥은행처럼 최근 들어 최고경영자를 헤드헌터에 의뢰해 뽑는 업체들이 크게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외에 일반 기업체나 공기업 등이 CEO를 뽑기 위해 헤드헌터의 문을두드리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어 고급인력 채용시장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 가운데서도 가장 큰 변화가 느껴지는 곳은 공기업이다. 한때 전문성이 결여된 외부인사를 사장 자리에 앉히는 곳이 많아 낙하산 인사의 진원지로 꼽히며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던 공기업들이 헤드헌터에 의뢰해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를 영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바뀐세태를 실감케 하고 있다.◆ 한빛은행, 행장 추천통해 선발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한국조폐공사가 한양대 교수와 국회의원을지낸 유인학 사장을 헤드헌터를 거쳐 영입한 것을 비롯해 한국인삼공사가 서치영 전 대웅제약 사장, 성업공사 자회사인 한국부동산신탁이 정원모 삼성물산 건설부문 이사를 각각 사장으로 맞아들였다.또 김재홍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역시 헤드헌터를 통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CEO 자리에 올랐다.민간기업들도 이런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실무자들에 한해 간혹 헤드헌터를 활용해 채용했던 기업들이 최근들어서는 그 대상을 최고경영자까지 확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LG그룹이 핵심 계열사 사장 자리에 헤드헌터의 추천을 받은라이벌 회사 최고경영진 가운데 한 사람을 섭외해 앉혔고, 부도로쓰러진 고합과 나산이 박웅서 전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백영배 전(주)효성 부회장을 헤드헌터의 도움으로 영입해 그룹 회생의 중책을맡겼다. 이밖에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이 배찬 전삼성전자 런던지사장, 카지노 업체인 강원랜드가 김광식 전석탄합리화사업단 이사장을사장 자리에 앉힌 데도 헤드헌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헤드헌터의 역할은 실무자 및 임원급채용알선이 주를 이루었다. CEO급을 알선해달라고 부탁하는 곳은 외국계 회사에 지나지 않았고, 국내 기업 가운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일차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인사의 투명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일반 기업들도 여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특히 전문경영인 인력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이런 흐름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올해초 김태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공개적으로 우수경영인력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시급하다고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외적으로 재무와 인사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업계 분위기 전체가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 인맥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최고경영자를찾는 쪽으로 돌아섰다.헤드헌터를 통한 CEO 채용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한상신 유니코써어치 사장은 『국내 기업체들 사이에 선진국형 인사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최고경영자들이 헤드헌터를통해 자리를 옮기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헤드헌터 업계의 여성군단 / 꼼꼼함.편안함 무기... 60% 차지헤드헌터에는 유난히 여성들이 많다. 각종 조사업무를 수행하는 리서처의 80% 이상이 여성인데다 컨설턴트 가운데도 여성 비율이 60%를 넘는다. 다른 분야가 남성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비하면 분명히파격적인 일임에 틀림없다.이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서치인터내셔널을 이끌고 있는권혁희 대표다. 국내 고급인력알선 여성 컨설턴트의 대모로 통하는권대표는 올해로 11년째 회사를 이끌며 남성들 못지않은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또 홍승녀 P&E컨설팅 대표 역시 올해로 3년째 자신의회사를 운영하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최정아 아데코코리아대표는 인력파견업을 하며 헤드헌팅 비즈니스를 겸하고 있다.회사경영에는 간여하지 않고 컨설턴트 일만 하는 여성으로는 유니코써어치의 유순신씨가 대표적이다. 3년전 <나는 고급두뇌를 사냥하는여자 designtimesp=19184>라는 책을 펴내 유명세를 탔던 유씨는 연봉 역시 1억대를 넘는슈퍼샐러리우먼으로 통한다. 연간 50명 이상의 중견간부급 이상을취업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성이 헤드헌터에 많은 것은 일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을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는데다 채용을 의뢰하는 회사측에 편안함을주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여성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컨설턴트가 되면 영업도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다소 불리한 면도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항간에는 여성 컨설턴트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그렇지 않다. 인센티브제를 도입한 헤드헌터에 다니는 컨설턴트 가운데 극히 일부가 억대의 연봉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기업체에 근무할 때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