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건물을 하나 짓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새로운 인생철학을 얻게 된다고 한다.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다 위로는 관련공무원으로부터, 밑으로는 공사장 인부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몸을 부대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어서다. 그저 그런 건물이 아닌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 때는 「득도(得道)」의 수준은 달라진다.삼성증권 사장을 끝으로 30년 금융인 생활을 접고 건축주로 변신한 구광길구산물산사장(58)이 그런 사람이다. 구사장은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나든 끝에 최근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총신대역 사거리에 「구산타워」를 완공, 11월 24일 건설교통부로부터 한국건축문화대상 비주거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구산타워는 지하 4층, 지상 20층 규모의 오피스빌딩으로 외관부터 내부시설까지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막상 상을 받고보니까 의외로 담담해지는군요. 건물을 짓다 IMF한파가 몰아쳐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죽을 생각까지 했는데 말입니다.』상을 받는날 의외로 담담해진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지난 9월 서초구청으로부터 준공필증을 받았을 때 그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말 펑펑 울어 버렸다. 7년6개월 동안 건물을 지으면서 쌓인 회한을 상을 받기전 다 풀어버린 탓에 감정이 있을 수 없었다.그가 죽을 고비가 있는지도 모르고 겁없이 건물을 짓겠다고 나선 때는 93년. 61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동서증권 상무, 서울증권 전무를 거쳐 삼성증권사장을 끝으로 금융인 생활을 청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국제증권사장으로 있다 국제증권이 삼성으로 넘어가면서 퇴임했다.◆ 최고 돌찾아 수시로 해외출장『설계에서부터 내부시설까지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건물을 짓겠다는 생각을 갖고 뛰어들었습니다. 적당히 지어 임대료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면 땅을 팔고 말았을 겁니다.』구사장의 이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는 건물외벽의 돌. 추운 지방에서는 돌집이 보온등 여러 측면에서 가장 좋다는 판단 아래 매년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두차례 열리는 「세계 돌전시회」에 참가, 최고의 돌을 찾아 나섰다. 3년동안 돌아다닌 끝에 캐나다 그라니코사의 「포리코롬」이 제일 좋다는 것을 알고 수입, 외벽을 처리했다. 한국 건축주가 이 돌을 사용한 것은 구사장이 처음.외관만 세계 최고로 하지 않았다. 내부설비 및 설계 또한 이 수준에 맞췄다. 내부공간을 기둥이 없게 설계했음은 물론 엘리베이터는 OTS, 냉각기는 프랑스 캐리어사 제품을 수입해 설치했다. 내부 공조제어시스템, 냉난방 공조시스템 등도 최고만을 써 구산타워를 첨단 인텔리전트빌딩으로 만들었다.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IMF한파가 몰아치면서 지난해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때 죽었을 것이라고 당시 심정을 말한다. 다행히 그는 시공사인 대림산업과 협력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금융인 생활은 완전히 버블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인부들과 일을 하면서 건설업이 엄청난 고용효과를 지닌 산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증권사 임원으로 근무할 때 건설주 투자는 절대로 하지 않았던 구사장. 천신만고 끝에 구산타워를 완공한 뒤 그의 건설업에 대한 사고와 인생철학은 이렇게 1백80도 바뀌었다.(02)6244-6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