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떨고 있다. 내년에 다시 합병·퇴출의 소용돌이로 내몰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부가 짝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은행의 추가 합병 가능성을 언급했다. 설마하던 2차 구조조정이 임박했음을 공언한 것이다. 이위원장은 『좋은 곳은 더 좋아지고 나쁜 곳은 더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 합병이 불가피한 「객관적인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 서곡으로 이위원장은 예금보호제도를 꼽았다. 2001년부턴 원금 2천만원까지만 보호된다. 당장 내년초부터 1년짜리 정기예금이 우량은행으로 대거 이동하는 상황이 그려진다.은행의 건전성은 다각도로 평가된다. BIS비율에다 부실여신 비중, 손익상태, 주가 등의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다. 여기에다 금감위는 결정적인 평가잣대를 하나 더 추가했다. 은행마다 연 1회이상 후순위채를 시장금리로 발행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은행을 상대로 체력장을 실시하는 것이다. 우량은행이면 싼 금리로 발행하겠지만 금리가 높거나 아예 발행조차 못하는 은행은 시장에서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런 은행들은 일찌감치 합병을 궁리하라고 이위원장은 권고했다.금감위는 또 정부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들의 경영개선 상황을 면밀히 살필 계획이다. 그 결과는 내년에 주가로 검증하겠다고 했다. 주가를 개선하지 못한 은행장은 옷벗을 각오를 하라는 사실상의 협박인 셈이다.◆ 외국계에 넘어간 은행 ‘안도’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빛 조흥 외환 등 대형은행들은 사정이 심각하다. 한빛은행은 10억달러의 해외DR(주식예탁증서)를 발행, 간신히 자본력을 키웠다. 하지만 상업·한일은행을 합병할 당시 선도은행의 입지가 퇴색됐고 국내 최대은행 자리도 국민은행에 넘겨줬다. 조흥·외환은행은 DR발행에 실패해 자본확충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그나마 우량하다는 5개 인수은행(국민 주택 신한 한미 하나)도 속으론 심기가 편치 않다. 주택은행은 조달코스트가 높고 국민은행은 뚜렷한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외국파트너(ING와 골드만삭스)의 눈치도 봐야 한다. 신한은행은 퇴출금융기관(제일종금)의 대주주라는 전력이 있고 하나·한미은행은 대우사태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그래도 2차 구조조정의 캐스팅보트는 이들이 쥐었다는 게 금융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우량하다는 점에서 우월한 위치에서 합병구도를 그려갈 전망이다. 정부는 2~3개 국제적인 선도은행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선도은행을 겨냥해 「우량+우량」의 합병 가능성이 높다. 5개 인수은행간에 서로 짝짓기가 예상된다는 얘기다. 「우량+부실」 구도도 점쳐볼 수 있다. 이는 서로 지향점이 맞아야 성사 가능하다. 「부실+부실」은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없이는 곤란하다.외국인 손에 경영권이 넘어갈 제일·서울은행은 일단 2차 합병 소용돌이에서 비켜서 있다. 이밖에 평화은행과 6개 지방은행은 합병의 종속변수이므로 틈새시장에서 독자생존을 모색할 공산이 크다. 지방은행끼리 합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다 합쳐도 시중은행 하나에 못미쳐 기존 업무제휴 이상의 연결고리를 맺기 어렵다.환란전 일반은행(시중·지방은행)은 26개였다. 2년새 17개로 줄었다. 내년에 는 몇개가 살아남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몇개는 간판을 내릴 수도 있다. 시장이 그렇게 만든다. 홀로서기가 어려운 은행이라면 강제로 합병당하기 전에 스스로 파트너를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