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공정거래법상의 30대 대기업 지정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서 주목된다.대기업집단 지정제도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해직전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자산총액합계액의 순위가 1위부터 30위까지인 기업집단을 지정, 매년 4월1일에 고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범위에 들더라도 주식의 소유분산이 잘 되어 있거나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집단은 제외된다. 당초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은 숫자에 관계없이 자산총액이 4천억원을 넘으면 지정해 왔으나 경제규모의 확대 등으로 그 숫자가 크게 늘어 93년부터 자산총액에 상관없이 30개기업집단을 지정해 오고 있다. 따라서 30대 대기업집단지정제도라부르기도 한다.이 제도는 우리 경제의 큰 병폐중 하나로 꼽히는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들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무와 규제가 주어진다. 예컨대,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를 부여하는출자총액규제를 한다든가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할 의무를 부여하고,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는 등의 제약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개별법에서 다른 기업들에 주는 혜택을 모두 배제하는 불이익을 주기도 하고, 특정산업에 대해 진입을 규제하는 경우도 있다. 30대 기업집단 기업에 대해서는 지급이자를 손비로 인정해주지 않는가 하면축산 등에 대한 진입을 막고 있다.대기업집단들이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계열회사 수를 늘리는 문어발식 기업경영을 통해 많은 산업분야를 장악하거나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중소기업들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그같은 규제들을 두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비판론도 없지 않다. 우선 기업집단의 지정이 무조건 1위부터 30위까지를 지정하는 것은 결국 규모가 큰 기업을 우선 대상으로하는 것이다. 기업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규제의 대상이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않다는 것이다.더구나 상위기업그룹과 하위기업그룹간의 경제력 격차가 매우 큰데도 30대기업집단에 대해 동일한 기준의 규제를 가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형평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지정돼 있는 1위 기업과 30번째 기업집단을 비교해 보면 1위인 현대는 30위인 새한그룹에비해 자산총액으로는 28배, 자본총액은 70배, 매출액으로는 54배에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은 동일한 기준의 규제를 당하고있다.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5대그룹정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같은 근거에서 나온 것이다.재계의 현실적인 항변은 또 있다. 정부는 강력한 재벌개혁정책을 추진해왔다. 대기업집단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를 별도로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폐지를 주장한 논리도 여기서 찾고 있다. 상호지급보증금지, 기업지배구조개선 작업 등으로 경제력 집중요인이 이미 사라졌는데도 30대 대기업그룹을 지정해 갖가지 규제를 부과하는 것은 건전한 기업활동을방해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빅딜 등은 오히려 경제력 집중을조장하는 시책으로 논리적 모순도 생기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어쨌든 우리 경제현실에서 재벌형성의 병폐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경제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극히 예외적 조치인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