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 파고 성공 이후 상당수 은행들 너도나도 벤치마킹나서

미국 서부지역 최대의 금융기관인 웰스 파고 은행은 최근 하이테크 벤처 기업에 투자했다가 「대박」을 터뜨렸다. 몇 년전 실리콘 밸리에 소재한 네트워킹 장비업체 세렌트사에 1천2백만달러를 투자하고는 지난달 5억5천만달러를 챙긴 것이다. 투자 수익률이 근 46배에 달한 셈이다. 세렌트사가 온라인 장비회사인 시스코시스템즈사에 73억달러에 팔리면서 지분에 따라 그만큼의 매각 대금을 받게 됐다.자금 운영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미국 시중은행들 사이에서 웰스 파고의 이번 횡재는 「이변」으로 통한다.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은행업의 속성상 대부분 은행들이 「고수익 고위험」으로 분류되는 벤처 기업 투자를 기피해 왔다.이런 점에서 웰스 파고는 미국 은행가에서 확실히 「이단아」라고 할 수 있다. 산하에 노웨스트 벤처 파트너즈라는 전문 자회사를 두고 벤처 기업에 꾸준히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웰스 파고의 벤처 사업은 완전한 성공작으로 판명났다. 세렌트 건 외에도 벤처기업 투자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99년도 벤처 캐피털 부문 이익이 12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이 은행의 추정 세전 총이익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웰스 파고가 이룬 「벤처 드림」은 다른 은행들에 벤처 기업 투자를 부추기는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다. 상당수 은행들이 「웰스 파고의 성공 사례 따라 배우기」에 나섰다. 체이스 맨해튼, J P 모건 등 이미 예전부터 웰스 파고에 못지 않은 규모로 벤처 기업에 투자해 온 은행들도 적지 않다. 미국 경제에서 인터넷 혁명이 시작된 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은행들이 표나지 않게 벤처 투자를 늘려 온 것도 사실이다. 96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은행들이 벤처 기업에 투자한 자금 규모는 3배 이상 불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99년의 투자 규모는 최소한 40억달러 이상에 달했을 것이라는게 월가 소식통들의 추정이다.사실 미국의 은행들에 벤처 기업 투자 만큼 매력적인 「돈놀이」는 없다. 주종 비즈니스인 일반 기업 등을 상대로 한 대출 영업의 경우 이자율이 기껏해야 8%를 넘지 못한다. 반면 지난해 벤처 투자에 따른 평균 수익률은 85%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수익률은 일반 주식 투자의 경우에 비해서도 엄청난 수준이다.◆ 체이스 맨해튼은행도 고수익 재미지난해 미국 증시의 대표적 주가 지표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주가지수는 15% 가량 상승하는데 그쳤다. 지난 5년 동안의 연평균 수익률로 봐도 S&P 500 지수는 28%였던데 비해 벤처 투자는 45%를 기록했다.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경우도 이처럼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고 있는 벤처 캐피털 비즈니스에 손을 대서 「재미」를 본 사례다. 이 은행 역시 지난해 체이스 캐피털 파트너즈라는 벤처 투자 전담 자회사를 통해 신기술, 통신, 미디어 등의 신생 기업에 8억달러를 투자했다. 이 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총자산 3천7백억달러의 0.2%도 안되는 「쌈짓돈」 수준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통해 거둔 수익은 작년들어 9월말까지 9억5천2백만달러로 이 기간중 번 은행 전체의 세전 총이익 가운데 17%를 기여했다. 이쯤되면 은행들에 벤처 캐피털 투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춰질 법하다.그럼에도 상당수 은행들이 벤처 투자를 망설여 온 이유는 90년대 초의 「실패」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당시 은행들은 앞다퉈 컴퓨터 등의 벤처 기업에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평균 주가 상승률에도 못미쳤다. 결국 많은 은행들이 벤처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고는 M&A(기업 인수 및 합병) 금융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도 은행들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난 5년간 평균 수익률이 17%에 불과했다. 이런 터에 웰스 파고나 체이스 맨해튼의 성공 사례가 전해지자 상당수 은행들이 다시 벤처 캐피털 쪽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관련 법규도 은행들의 벤처 캐피털행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현재의 조항에 따르면 은행들이 벤처 기업에 투자했을 경우에는 편리한 시점에서 장부상 이익을 계상할 수 있게 돼 있다. 은행들로서는 다른 부문에서 예기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거나 수익이 기대에 못미쳤을 경우 이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벤처 부문의 이익을 이때 계상함으로써 다른 부문의 부진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J P 모건은행은 지난해 3/4분기 중 이익 규모가 투자자들의 기대에 못미칠 것으로 예상되자 벤처 부문에서 2억5천5백만달러의 이익을 계상한 바 있다.벤처 투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확률 게임」이라는 점이다. 벤처 기업 투자는 아직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상당수의 경우 원금을 통째로 날려야 하는 등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가 몇군데에서 투자가 적중하면 그때까지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 이익을 챙기게 된다. 때문에 벤처 기업에 투자할 때는 성공할 확률이 높은 곳을 선별해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이와 관련해 은행들이 특히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벤처 기업은 인터넷 등 첨단 하이테크 분야의 신생 업체들이다. 이들 업종의 성공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J P 모건은행은 지난해 정보통신과 신기술 관련 벤처 기업들에만 5억달러를 투자했다. 전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신기술, 정보통신, 인터넷 등의 산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런만큼 신규 참여의 기회가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게 이 은행 존 왓킨스 전무의 진단이다. 체이스 맨해튼도 히스패닉들을 위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회사 스타미디어 네트워크와 야후 계열의 지오시티 등 인터넷 관련 벤처 기업들에 중점 투자했던 것이 고수익의 원동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성 따진 보수적 투자 은행도 다수그러나 여전히 벤처 기업 투자를 냉정한 시선으로 대하는 보수적인 은행들도 적지 않다. 대형 은행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한층 두드러진다. 씨티은행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은행은 씨티코프 벤처 캐피털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자회사까지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자회사가 주로 투자하는 대상은 벤처 기업들이 아니다. 창업한 이후 상당한 세월이 경과돼 어느 정도 성장성이 입증된 중견 회사들에 중점 투자하고 있다. 최근의 벤처 붐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투자 원칙」을 바꿀 계획은 전혀 없다는게 씨티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다.월가 전문가들은 은행의 벤처 기업 투자에는 성공 가능성 못지 않게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적지 않게 따라 붙는다고 경고한다. 벤처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깊숙한 정보와 투자 대상 선별 능력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전 준비가 없이 유행만을 좇아 뛰어들었다가는 거액만 날리고말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많은 은행들이 80년대 정크 본드 붐에 편승했다가 맛봤던 좌절의 경험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일부 은행들은 전문적인 분석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채 「고수익」의 환상에만 사로잡혀 정크 본드에 대거 투자했다가 원금까지 송두리째 날린 바 있다.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들도 최근 은행들 사이에 불고 있는 벤처 붐에 대해 『신경 쓸 일이 못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은 자신들과 같은 전문 업체들이 숱한 벤처 투자를 통해 쌓아 온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한마디로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노웨스트 벤처 파트너즈의 관계자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벤처 성공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웰스 파고가 세렌트에 투자해서 일확천금의 횡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벤처 경험이 뒷받침된 덕분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어떤 경우건 시장 경제에서 「공짜」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