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만화가 될래"만화관련 학과에 신세대 몰려 … 고학력 만화가도 잇달아 등장

한때 만화가는 아주 힘든 직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저변이 넓지 않아 설 자리가 별로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했다. 만화가 하면 어둠침침한 골방을 떠올리고, 핏기없는 얼굴을 상상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팬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 만화가가 등장했고, 연수입이 억대를 넘는 만화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팬클럽과 매니저를 거느리는 만화가까지도 생겼다. 만화가가 이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최근 3년 사이 세종대 입시에서는 작은 이변이 연출됐다. 예체능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예상을 뒤엎고 최고의 인기학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동안 간판학과로 인정받아온 전통의 인기학과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자질도 상당히 뛰어났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특히 99학년도 입시에서는 40명 모집에 1천8백여명이 지원, 입시경쟁률이 무려 47대1을 기록해 학교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이런 현상은 비단 세종대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만화 관련 학과를 개설해놓고 있는 학교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란 말만 들어가면 보통 10대1은 기본이다. 애니메이션학과를 개설해 놓고 있는 공주영상정보대학의 입시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며 “직업에 대한 신세대들의 가치관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만화를 배우러 만화학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점점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갑자기 큰 폭으로 느는 모습은 아니지만 학원마다 ‘요즘 같으면 운영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일부 학원의 경우 신세대들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극만화창작반, 애니메이션반, 스토리연구반, 만화예술과 입시반 등을 운영중인 서울영상만화학원의 유강희 원장(39)은 “극만화창작반과 애니메이션반의 인기가 높고, 최근 들어서는 입시반에도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고 소개했다.인기만화가들이 운영하는 개인작업실에도 예비만화가들이 밀려들고 있다. 한때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일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으나 요즘 들어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오히려 지원자 가운데 사람을 골라 쓸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따라 일부 만화가는 개인작업실을 확대해 50여명 이상의 예비만화가들을 거느리고 작품활동을 하기도 한다. 만화가 최경탄씨(50)는 “대학이나 학원 등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우수한 인력이 많이 배출되고 있어 기존의 만화가들 입장에서는 작업을 하기가 아주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만화관련 매체 급증 … 신세대 관심 높아져만화가가 인기직업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데뷔작가들의 면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고학력 만화가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만화가=저학력자’라는 등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명문대 출신 등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많이 등장, 눈길을 끈다.지난 1995년 순정만화잡지 <윙크 designtimesp=19528>의 신인공모에서 당선돼 데뷔한 조수현씨(31)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출신으로 ‘국내 최초의 석사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인기 만화 <쿨 핫 designtimesp=19529>의 작가 유시진씨(30)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유망신인으로 만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순정만화 히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의 스토리작가인 조은하씨(26)는 고려대 수석졸업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조씨는 현재 같은 대학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이밖에 요즘 최고 인기작가로 떠오른 천계영씨(30)는 이화여대와 제일기획을 거친 재원이며, <돌아온 조던 designtimesp=19533>의 작가 김경호씨(33)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그렇다면 최근 들어 만화가가 인기있는 직업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일단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유강희 서울영상만화학원 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장려하고 만화 관련 매체가 크게 늘면서 괜찮은 분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또 다른 요인으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역시 하나의 산업으로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신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만화가 최경탄씨는 “일부 애니메이션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하는 등 만화산업 관련 회사들이 벤처기업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라 업계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무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대학에 만화 관련 학과가 속속 생기고, 스포츠지 등 신문과 방송이 정기적으로 만화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소개된 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 만화가 김경호“수입·위상 좀 더 나아져야”요즘 <스포츠서울 designtimesp=19544>에 만평 ‘스포툰’을 연재하는 만화가 김경호씨(33)는 원래 법학도 출신이다. 성균관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실제로 한때는 법관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시절 무심코 만화서클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었고, 요즘은 장래가 기대되는 만화가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전공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까닭은.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 서클활동을 하면서 만화에 빠져들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면서 법전 대신 만화에 매달렸고 지금까지 8년째 한우물을 파고 있다.본격적인 작품활동은 언제 시작했나.대학졸업 직후 만화잡지사 편집기자로 취직해 일하다가 1994년 만화잡지를 통해 정식 데뷔했고, 이후 1998년 또 다른 만화잡지에 을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공백기가 길었던 것 같은데.신인이라 내 작품을 실어줄 매체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한 3년 정도 대책없이 보낸 셈이다. 하지만 쉬는 동안에도 만화 동호회활동을 하며 실력을 다졌다.자신이 그리는 만화의 특징은.블랙코미디 만화를 주로 그린다. 사회문제 등을 비꼬고, 패러디하는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전업 만화가로서 어려운 점은.아직은 인기만화가가 아니라서 수입이 들쭉날쭉한다. 요즘은 신문에 만평을 그려 괜찮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또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미흡하고, 사회적 신용도가 떨어지는 점도 불편하다.오는 4월부터 한 만화웹진에 새로운 작품을 연재할 예정이라는 김씨는 서울 남산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있는 작업실에서 하루 14시간씩 만화를 그리며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