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 공급과잉이 주요인...소형차 기술 우수ㆍ생산판매 거점 부상 '타깃은 아시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현재 세계 자동차산업의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독자생존을 모색하다가 지리멸렬하거나 경쟁업체에 경영권을 넘겨주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 등의 방법으로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것이다. 메가머저(mega -merger) 즉 대규모 인수·합병의 바람이다.◆ 메가머저 진원은 '빅3'합종연횡을 통해 세계자동차산업의 지도를 새로 그리려는 시도는 이미 1980년대부터 진행됐다. 당시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품질 가격 서비스 마케팅 등에서 뛰어난 경쟁력으로 미국 등 자동차선진국들을 위협했다. 대표적인 자동차강국 미국, 그중에서도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당시 ‘빅3’업체들의 위기감이 심했다. 자동차도시로 상징됐던 ‘디트로이트의 몰락’으로 언론에 표현됐던 시기이기도 하다.글로벌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업체들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선진메이커간의 전략적 제휴가 모색됐다. 제조수준이 비슷하다면 결국 규모가 생사를 결정, 10대 메이커만이 살아남는다는 ‘국제과점화설’도 이를 부추겼다. 자동차생산에 있어 일정규모(당시 자동차 한 모델당 30만대, 한 업체당 2백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설이다. 70년대부터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제기된 이론으로 ‘규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업체간 본격적인 인수합병을 촉발시킨 것이다.이러한 자동차업체간의 인수합병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자본출자나 M&A 등 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서자마자 포드가 재규어를, GM이 사브(Saab)를 인수하면서 미국의 자동차 양대 메이커들이 각각 유럽의 고급차사업을 강화했다. 이어 94년에는 BMW가 로버를 인수해 대중차시장에 진입했으며, 96년에는 포드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던 마쓰다를 인수했다. 98년에는 벤츠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당시 세계 최대규모의 인수·합병사례를 남겼으며, 이에 뒤질세라 폴크스바겐이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포드가 볼보의 승용차부문을, 르노가 닛산을 인수하며 자동차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올 들어서도 인수합병의 행진은 계속됐다. 꾸준히 아시아시장 진출을 모색해온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33.4%)을 확보하면서 세계 3위의 자동차그룹으로 자리잡았으며, 자동차생산 1위업체인 GM과 7위업체인 피아트가 제휴를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피아트의 경우 유럽에서 인기있는 소형차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데다, 란치아 페라리 등 유명 스포츠카를 생산해온 ‘이탈리아의 자랑’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메카톤급’이었다.그러나 이러한 메가머저의 열풍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로버를 인수했던 BMW가 로버의 매각을 발표하면서 BMW와 포드 GM 다임러크라이슬러 등과의 제휴설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임러크라이슬러측의 피아트인수시도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등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게다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GM 포드 도요타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르노-닛산 혼다 등 가운데 ‘빅5’나 ‘빅6’만 살아남는다는 설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이같은 메가머저의 회오리가 거세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이 아시아시장이다. 앞으로 5년내에 가장 빠른 성장이 예견되면서도 소형차 기술이 우수한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산과 판매의 거점으로서의 아시아가 매혹적인 시장으로 부각한 것이다. 로버트 이튼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은 “아시아에서 합병을 하지 않고는 1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수 없다”며 “어떤 것이라도 인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이를 증명하듯 자동차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일본의 5대 승용차업체 가운데 마쓰다 닛산 미쓰비시 등이 외국업체에 넘어가고 도요타와 혼다만이 살아남았으며, 한국자동차업체들도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의 대상으로 빠지지 않고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급과잉ㆍR&D비용, M&A '불씨'이러한 메가머저가 진행되는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공급과잉. “현재 전세계적으로 2천만대의 공급과잉으로 공장가동률이 75%로 떨어진 상태며, 수요도 한계점에 다다른 상태”라는 것이 조성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러한 시장의 포화상태는 결국 설비확장에 치중해온 자동차업체들로서는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상황으로 경영에 있어 과다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인수된 미쓰비시의 경우도 사업확장에 따른 차입경영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매출액의 4∼5%(메이저업체 기준)에 이르는 연구개발비용이나 자동차의 전자화에 따른 부품업체들의 힘이 세지는 점도 완성차메이커간의 제휴나 합병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 플랫폼(차체와 내장재를 뺀 모든 기능적인 부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아반떼와 아반떼투어링은 동일 플랫폼을 갖는다)당 1백만대, 업체당 4백만대라는 ‘생존요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랫폼당 모델수가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플랫폼을 통합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한편 이같은 인수합병의 대세속에서도 메이저는 메이저대로, 중위업체나 상용차업체 등은 나름대로 살길이 있다는 주장도 한편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 바로 ‘다층네트워크설’이다. 도쿄대 다카히로 후지모토교수의 주장으로 △혁신적인 기술개발력을 가진 소수의 거대업체 △엔진 섀시 브랜드 판매력 등을 가진 대다수의 자동차업체 △독자상표를 갖고 섀시를 만들 능력은 있지만 엔진개발능력은 없는 위탁조립메이커 등이 서로 협조·경쟁·갈등 등을 통해 공존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빅10’이나 ‘빅6’ 생존설이 모두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과 같은 대형업체의 우산아래로 들어오라는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반발과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인한 효과가 기대만큼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등이 힘을 얹어주고 있다는 것이 조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러나 빅6이든, 네트워크시나리오에 따른 생존이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유아독존으로 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문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