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피해정보 등 공유, 집단적 항의 … 소비자운동 새바람

인터넷 시대는 소비자 운동도 인터넷에서 한다.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는 이준규씨는 지난해 12월 ‘안티기아(http://antikia.systec co.kr)’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가 이 사이트를 개설하기로 결심한데는 최근 구입한 카니발 자동차 때문이었다. 지하주차장 입구에 세워둔 차가 주차브레이크 결함으로 경사를 내려가 다른 차와 충돌한 사고를 당했다. 기아자동차 사고 처리반 직원과 현장 검증을 통해 사고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기아 정비공장에서 해당 자동차를 검사한 결과 주차브레이크가 기준치 미달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그러나 기아측은 수리비를 반반씩 부담하자는 협상 조건을 내세웠다. 그것도 다른 피해 차량 수리비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자동차 결함이라고 엄연히 밝혀졌는데도 소비자에게 수리비 반을 떠넘기려는 기아측 태도에 이씨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그후 두달여 동안 지루한 협상 끝에 기아측에서 차량 수리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이씨는 이 사건으로 그동안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점에 분개해 기아와의 협상을 중단하고 이런 사례를 널리 알리기로 한 것이다. 이준규씨는 “사이트를 개설하는데 비용만 1천5백만원 정도 투자됐다”면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지만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기업 횡포에 대항해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현재 접속건수가 5만6천건 이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동영상으로 된 자료도 볼 수 있고 여러 피해 사례가 게시판을 통해 올려져 네티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이뿐만 아니라 안티사이트가 개설된 게시판에는 소비자들의 각종 피해사례가 헤아릴수 없이 많다. “두루넷 통신망을 신청한 사람입니다. 한달이면 설치가 된다고 했는데 한달이 넘도록 설치가 안되고 있습니다. 상담원과 통화를 하면 몇주 후면 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습니다. 결국 모뎀 수거가 늦어져서 그렇다는군요.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안티두루넷 게시판, 작성자 : 세상…)“이런 꼬물짜. 게임방 안가고 게임하려고 초고속망 설치했는데 맨날 끊어지네. 끝까지 해본 온라인 게임이 없다. 모뎀으로 할 때보다 더 나쁘다. 한국통신 계약기간 끝나면 해지다” (안티코넷 게시판, 작성자 : 열받았어)또 일명 3억원 도메인사건으로 불린 닉스 사건은 네티즌들의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청바지 제조업체인 닉스는 3억원의 상금을 걸고 자사 도메인명을 공모했다. 그러나 당선작(www.ifree.com)이 협력업체 소유 도메인명이었음이 밝혀지자 네티즌들은 분노하게 됐다. ‘안티닉스(http:// ihateifree.com)’ 사이트가 개설되었고 결국 닉스의 대표이사가 1, 2차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의 위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여론 형성에 힘을 더하고 있다.지금 인터넷에는 안티사이트 운동이 한창이다. 안티두루넷 안티코넷 안티드림라인 안티하나로 안티현대 안티조선 안티후지 안티구몬 안티HOT 안티김희선 등 기업의 불합리한 행동을 고발하는 내용부터 인기 연예인을 반대하는 일까지 다양한 형태의 안티사이트가 개설돼 있다.예전에도 네티즌들이 게시판에 PC통신 접속 불량 등 각종 문제를 고발해 PC통신사의 시설 개선 약속을 받아낸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이런 피해보상 운동이 인터넷상으로 바뀌면서 텍스트 기반의 PC통신보다 효과를 더해준다는 평을 듣는다. 이 사이트들은 조직적이기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게 대다수다. 개인이 특정 기업에서 판매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 안티사이트 특히 많아특히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한국통신을 비롯해 드림라인 두루넷 하나로통신 등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네티즌의 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가 네티즌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설치문제 속도 애프터서비스 등 안티사이트 게시판에는 서비스 불량에 대한 사례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게재되는 형편이다.안티사이트는 이제 개인적인 피해 보상 차원을 넘어서 가상공간의 소비자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안티 관련 사이트를 한곳에 모아놓은 사이트도 등장했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www.n119.org)’는 ‘우리 권리를 스스로 지키는 인터넷 신문고’라는 슬로건 아래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또 안티사이트를 기존 회사의 홈페이지 패러디 형태로 운영하다가 홈페이지 도안 사용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은 곳도 있다. 포항제철은 ‘안티포스코(http:// antiposco.nodong.net/korean)’ 홈페이지 운영자를 상대로 도안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원으로부터 “포스코 로고와 포스코 빌딩 배경화면 등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결정을 받기도 했다. 이에 진보네트워크와 한국노동자네트워크협의회는 저작권의 확대적용이며 거대 기업이 사회적 약자에게 자행한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법원 결정으로 사이트 운영이 어려워지자 해외 네티즌들이 안티포스코 미러(MIRROR) 사이트를 개설해 힘을 얻고 있다. 미러사이트는 특정 사이트를 다른 웹사이트 주소로 접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안티포스코 사이트는 일본 영국 캐나다 스페인 독일 미국 우크라이나 호주 등 8개 나라에서 10개의 미러사이트로 개설됐다.또 유엔으로부터 공인받은 국제진보통신연합(APC:The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도 법원 결정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메일링리스트를 이용해 국제 법률 자문단을 구성하고 이 사안을 다루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노동단체들은 이번 법원 가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하고 네티즌 권리 찾기 운동을 펴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인터넷의 활성화는 사회 현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안티사이트를 이용한 소비자권리 찾기 운동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여기에 안티사이트가 특정 회사를 근거없이 비방하는 행위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에따라 안티사이트 운영자들은 진실을 알리면서 비방 욕설과 같은 행위를 배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