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 구조조정이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4·13총선 이후 투신사 문제는 숨가쁘게 확대돼 왔다. 직접적인 계기는 주가급락이다. 투신사의 주식매도공세가 지속되다보니 증시는 무기력증에 빠져 버렸다. ‘주도주·주도세력·투자심리 부재’란 3무(無)현상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투신사다.사실 투신사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 7월 대우사태가 터진 이후 투신사는 ‘화약고’그 자체였다. 투신사에 대한 불신감은 수익증권환매로 연결됐고, 이는 다시 투신사의 주식매각과 주가하락으로 이어졌다. ‘투신사에 대한 불신감 확산→수익증권 환매→투신사 주식 매도→주가급락→환매증가’라는 악순환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시장 전체를 꼬이게 만들었다.현재까지 나타난 투신사 구조조정 방향은 크게 세 갈래다. 한국투신 및 대한투신이 한 갈래다. 또 하나의 ‘부실공룡’인 현대투신이 두번째이며, 기타 투신운용사 처리가 세번째다.우선 한국투신 및 대한투신의 경우 5월중에 5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투신에 3조원, 대한투신에 2조원을 추가 투입함으로써 ‘부실의 싹’까지 도려내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두 투신사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총 3조원(한국투신 2조원, 대한투신 1조원)의 공공자금을 투입했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무보증 대우채권에 대한 손실부담만 한국투신 1조7천억원, 대한투신 7천6백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신탁계정이 안고 있던 비대우 부실채권을 고유계정이 떠안으면서 한국투신 3조5천억원, 대한투신 2조원의 부실이 발생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3조원의 공공자금을 투입한지 3개월만에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키로 결정했다.두 투신사는 상반기중 운용사와 판매사(증권사)로 분리된다. 운용사는 제3자에게 매각되거나, 외국자본과 제휴를 통해 살길을 모색한다. 증권사는 공적자금을 바탕으로 독자생존을 모색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두 투신 판매사간의 합병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현대투신의 경우 1조~2조원의 장기저리자금지원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대투신도 자본잠식 상태이긴 마찬가지다. 누적손실 6천억원에 작년손실 4천억원을 합하면 1조원의 손실이 현재화돼 있다. 자본금(8천2백억원)을 모두 까먹은 꼴이다. 여기에 신탁계정에 남아 있을 부실채권도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남투신 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생긴 차입금도 3조5천억원에 달한다. 어떤 식으로든 돈이 투입돼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현대쇼크’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연 5% 안팎의 저리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나머지 부족분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현대투신은 이를 2조원의 자구노력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가 장기저리자금을 지원키로 한 만큼 대주주인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이 참여한 증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나머지 투신운용사의 경우 정부의 지원이 없다. 대주주가 알아서 하도록 돼 있다. 증자를 하든지, 문을 닫든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현재로선 서울투신운용을 제외하곤 문을 닫는 운용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빛 신한 조흥 주은투신운용은 이미 대주주 참여 아래 증자를 마쳤다. 추가부실이 발생하지 않는 한 생존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머지 운용사도 어떡하든 생존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울투신운용의 경우 대우증권과 패키지로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렇게 보면 투신사 구조조정을 위한 큰 얼개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밑그림일 뿐이다. 정부가 그린 밑그림대로 구조조정이 신속히 이뤄져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만일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더라도 투신사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감이 여전하다면 투신사는 증시의 ‘암적 존재’로 여전히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이렇게 보면 투신사 처리 방향 확정은 투신사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