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이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바꾸고 있듯이 기술과 사람이 만날 때 새로운 문화가 생긴다. 여기에 한몫하고 싶다는 것.처음부터 그는 기대를 배반했다.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두꺼운 안경을 쓴 학구파를 기다리던 기자 앞에 나타난 ‘국내 최연소 공학박사’는 가녀린 몸집에 미소가 상큼한, 한마디로 참한 아가씨다.75년12월생, 만으로 따져 올해 24살인 윤송이씨는 지난 2월 MIT미디어랩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바로 귀국, 지난 3월부터 미국계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서울사무소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다.남달리 빠른 길을 가게 된 건 91년 서울 과학고에 진학하면서부터. 과학고를 2년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기 전자과에 입학했다. 학부과정을 3년6개월만에 수석으로 마치고 곧바로 MIT로 유학갔다. 여기서는 뇌 인지과학을 전공했다. 지원할 때 석박사 통합 과정을 선택해 3년만에 ‘박사님’이 됐다.MIT미디어랩은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과학 연구소로, 여기서 그녀는 ‘software creature’가 인간과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연구를 했다. ‘뉴로 사이언스’와 ‘로보틱스’를 접합시켜주는 독특한 연구 분야다. 직장 상사인 맥킨지 이상훈 파트너는 “학교에 남아 강의와 연구를 하기 바라던 MIT대학과 맥킨지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전공과 관계 없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치켜세웠다.윤씨 자신은 공학을 공부하고서 경영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를 ‘이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과학자가 자연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엔지니어는 이들의 연구 성과를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사람입니다. 엔지니어가 제 몫을 다하려면 사람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슬론스쿨(MIT의 MBA과정 명칭)에서 강의를 들은 것도 이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윤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바꾸고 있듯이 기술과 사람이 만날 때 새로운 문화가 생긴다. 여기에 한 몫하고 싶다는 것.그는 TV드라마 <카이스트 designtimesp=19772>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제작진이 카이스트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를 듣고 극중 인물로 만들었다는데 정작 자신은 미국에 있어서 이 사실을 잘 몰랐다.드라마 인물 ‘해성’처럼 윤씨는 실제로 안풀리던 문제의 해법이 생각나 손도 안댄 식판을 그냥 두고 연구실로 직행했던 적이 있다. 또 길눈이 어두워 한 번 가본 곳은 지도를 그리고 두번째 갈 때 이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도 했다. 이런 일화들은 대단한 집중력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평범한 사람 눈에는 다소 엉뚱해 보일 수도 있다.“극중 ‘해성’이 보이는 기행은 너무 과장돼 있더라구요. 전 그렇게 이상하지 않아요.”‘천재’소리를 들을 만한 윤씨가 밝히는 지적 능력의 비결은 오히려 평범하다.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오면 서예가인 어머니는 항상 단정하게 앉아 글씨를 쓰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책을 읽게 됐어요.” 자라면서 독서량은 더욱 늘어났고 급기야 부모님들이 ‘책값을 감당못하겠다’고 해 휴일은 대형서점을 놀이터 삼아 보냈다.윤씨는 공학 분야에서는 박사이지만 경영 컨설턴트로는 경력 한 달의 풋내기. ‘연구실에서 읽었던 이론모델들이 실제로 작동되는 것을 볼 때 무척 신기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직업을 가졌다기보다는 학업의 연장으로 여기는 눈치다. 당찬 젊은이가 ‘사람과 기술’을 두루 이해하고 난 이후의 행보가 기대된다.